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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이 되라 -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
강신장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새해를 맞이한답시고 다이어이를 구비해도, 출납을 적겠다고 조그만 수첩을 마련해도 도무지 3일 이상을 관리하지 못한다. 귀찮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도통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게 몸에 배지 않아 늘 집에 팽개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얼 메모하는 것을 포기한 나에게 최근에 들인 습관이 하나있다. 머리맡에 수첩 하나를 두고, 기록하고 싶은 것 중 아무거나 끼적이는 것이다. 책을 읽다 간단한 느낌을 남길 때도 있고, 순간 스쳐가는 생각이나, 내일 할 일 등 자잘한 것투성이지만 그런 메모가 조금씩 쌓여 갈 때마다 괜히 뿌듯해지곤 한다. 그 메모들이 언젠간 '영감'의 근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영감'에 대한 구체적인 것도 세부사항도 잡힌 것이 없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이런 막연한 생각에 틀을 좀 잡아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서도 이런 종류의 책을 즐겨보지 않은 나의 성향이 생각나 금세 기운이 빠졌다. 차라리 어떠한 기대도 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자 싶어 책을 꺼내들었는데 역시나 나를 확 사로잡는 무언가는 드러나지 않았다. 저자는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실장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또 SERI CEO를 운영하면서 내가 보고 느낀 것'과 얻은 것을 돌려 드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세계부터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멀찌감치 떨어진 채 책을 읽어 나갔지만,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여부와 기대하지 않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끝내 떨쳐버리진 못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무언가가 남겨질 것인가에 대한 것은 제쳐둔 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재미'였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책의 특성상 구성이나 문체가 다른 책들과 비슷할 수밖에 없는데 초반에는 저자의 문체가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틀도 다른 책과 다르지 않았고, 이 책의 키워드인 '창조'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지나왔으며 어떠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지 알리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영감의 열쇠'와 '창조'에 관한 이야기이고, 누구든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으니 안락함에 푹 젖어있는 내게 시큰둥한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몰랐다.
그런 나를 사로잡은 것은 생뚱맞게도 꼭지의 시작에 자리한 시였다. 2장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란 시에 마음을 홀딱 뺏긴 후, 이 책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란 구절 앞에 어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으며, 빤한 구성으로 점철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 책에서 시를 만났으니 어찌 신선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제야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게 되었고, 저자가 앞부분에서 언급한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세계를 두루 여행하자는 컨셉'이 떠올랐다. 그래서 저자는 첫 꼭지에 시를 집어넣었던 것이고, 미술과 사진, 영화, 광고 등 다양한 소재를 들먹여가며 창조의 발상에 대해 독자에게 알려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창조의 발상법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의 구절만큼이나 2장의 주제 또한 흥미로웠다. 저자는 '아픔을 들여다보는 힘', '기쁨을 보태는 힘'이야말로 창조를 만드는 원천이라고 했는데, 타인이 불편하고 아픈 마음, 그런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쁨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야말로 창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인드라고 했다. 아픔과 기쁨의 힘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드러내고 있었다. ' '삑사리'의 아픔과 소심함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발견한 전동 마스카라, '돈이 없으면 차로 갚으라'는 현대자동차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괜히 아픔이라고 하기에 인간의 감정만 떠올리고 있던 내게 뒤통수를 치는 예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가는 접근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바이다.
'뒤집고 섞어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내가 먼저 주면, 그가 내 것이 된다', '예상을 깨는 이야기를 만들어라' 등 앞에서 나의 생각을 깨트리는 소제목 안에 여전히 나의 뒤통수를 치는 기발한 생각과 실천들은 넘쳐났다. 너무나 유명해 이미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자극이 되지 못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저자는 흡인력 있게 이끌어 나갔다. 다양한 계층을 사로잡는 쉬운 글과 묵직할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한 시선에서 보는 관점으로 독자를 끌어당기고 있어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있는 글이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창조'라는 개념을 틀어 가두지 않고 넓혀주는 작업만으로도 충분한 읽을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좀 엉뚱한 시선에서 책을 읽다보니 정작 '창조'의 발상법이나 내가 '창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재미나게 읽은 과정에서 이미 '창조'의 틀은 넓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무디고 느려터진 독자에게는 이런 과정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초 작업을 해두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든 것이다. 허허벌판에 발을 디뎌놓고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바라는 공짜 심리가 내제되어 있을지라도, 무언가 꽉 차는 느낌은 없을지언정 무언가 빠져나간 느낌도 들지 않은 것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이다. '창조'라는 것이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란 자괴감만 밀려오지만, 창의력은 키우는 게 아닌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우리 안에 있어도 우리가 '있다'고 믿지 않는' 시선에 대한 수그러듦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과정이 이미 나의 잠재력으로 승화되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노릇이므로, 끊임없이 생각을 회전하는 열린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창조'는 거창한 것이 아닌 이미 내게 와 있는 친숙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