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제 140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애도하는 사람> 속에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랑자가 등장한다. 그만의 독특한 애도의 요점은 죽음이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주인공이 좀 색달라 보이긴 했지만 하루 동안에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인의 죽음을 목도하고 아무런 감흥 없이 지나쳐버리던가. 그러나 목도하던 죽음이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다가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제야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자신의 삶까지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잊히고 무덤덤해지는 모습 앞에 인생의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맛보기도 한다. 

 

  첫 머리부터 죽음에 대해 언급하게 된 것은 <고향 사진관>을 쓴 저자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친구인 서용준을 기리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조금은 지난한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죽음은 예견하지 못한 채, 친구의 기막힌 삶을 풀어놓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책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저자가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곁에 없더라도 가슴 속에 묻어두고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죽음은 너무나 쉽게 잊히기에 <애도하는 사람>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고, 그 책 덕에 저자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타인의 죽음을 멀뚱멀뚱 쳐다보면 구경하는 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마음이 메말랐다며 스스로를 타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제대를 앞두고 복학을 목전에 두고 25의 나이에 가장이 되어야 했던 청년 서용준. 자유롭고 자상하시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시자 그는 장남으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다. 고향 영주로 내려와 아버지가 벌여놓은 사진관과 예식 업을 이어 받았지만, 그 일은 용준이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생뚱맞은 아랍어과에 다니고 있었어도 완전히 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갑작스런 변화는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겉으로 표현을 잘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한 듯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수재란 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그였으니 주변의 시선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날이 많았고, 짜증이 늘기도 했으며, 사랑을 제대로 해 본적도 없으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선을 보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학업을 이어가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장남으로서의 책임감과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떠올리며 그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 곁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곳에서 결혼도 했고 고향을 떠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기울어가는 예식 업을 접고 3층은 주거 공간, 2층과 1층의 절반은 세를 주고 1층의 남은 공간에다 사진관을 열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간판도 <고향 사진관>으로 하고, 아버지가 쓰던 기계며 다른 소모품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시류와 맞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려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희망이라곤 엿볼 수 없는 삶을 살던 그가 그런 행동까지 하자 내 마음까지도 답답해졌다.

 

  책의 중반까지 통 마음을 잡지 못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 때문에 진부함을 이겨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주인공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그를 쉽게 이해한다고 못하면서도,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용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떤 벽이 가로막고 있어 무언가 덧입힌 내면이 솔직하게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았다. 문체가 좀 더 깊이 있었다면, 더 세밀하게 묘사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내내 일었다. 그런 글 속에서 벌컥 화를 내고, 고집을 피우며, 마지못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은 여전히 그의 내면에 채워진 방황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는 부담감이 서려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친구들의 시선을 통해서였다. 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타지에 있는 친구들이나 같은 고향에 있는 친구들일지라도 늘 <고향 사진관>에 들락거렸다. 당구를 치기도 했고, 소주 한 잔 걸치며 소소하게 보내더라도 용준이 편하고 좋았기 때문에 친구들은 몰려들었다. 속이 깊고 흉보는 걸 싫어하며, 좋은 얘기만 전해주는 친구이다 보니 고향의 푸근함처럼 용준이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두 동생과 누나도 결혼시키고 자신도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음에도 아버지가 여전히 병석에 누워 계시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가 왜 너는 늙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버지가 못 알아 보실까봐 라고 대답하는 그 앞에 세월의 무색함이 섭섭할 정도였다.

 

  그는 병석의 아버지 곁을 지키면서, 가족의 삶을 꾸려가면서 인생을 배워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노라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렇게라도 계신 것에 감사해하며 아버지의 자리가 자신과 대체되는 것에서 많은 것을 느껴가고 있었다. 하지만 25살의 청년이 마흔이 넘도록 병석에 계신 아버지도 힘에 부치는 듯 했다. 가족들의 예견 가운데 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한 것 같았고, 막상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오자 허무함과 동시에 알듯 말듯 한 감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으로 소설은 끝이라고, 조금은 힘겨운 삶을 살아온 친구의 삶은 이제 빛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끝도 전부도 아니었다.

 

  청춘의 꿈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 곁을 지켰던 용준에게 암이 찾아왔다. 세상을 타박하는 친구들이나 자신을 걱정해주는 가족들 앞에서도 오히려 태연했던 그였다. 그의 병은 제대로 펴보지 못한 꿈이 있었기에 안타까웠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은 남겨진 가족에게 한이 될까 염려되었다. 그래도 가족의 행복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라면 위로였을까? 그런 시간마저 허용되지 않는다면 세상은 너무 야박하다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를 기억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쓸쓸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박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그를 기억할 친구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꼭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평범하게 가족을 잘 아우르며 사는 것이 더 큰 성공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 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한 사람의 인생 앞에 눈물도, 회한도, 깊은 안타까움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무던한 사람이었던가 생각하다가도 그가 살아왔고 남겨놓은 삶이 불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타인의 삶이고 죽음이기에 메마른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부모와 가족밖에 모른 채 살아왔던 한 사람.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융통성도 없고 오로지 올곧게 살다간 그 앞에서 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떠나 어떻게 살아가야 보람된 인생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 저자의 친구인 서용준이 살다간 삶 속에는 그가 자주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늘 잠재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런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저자는 이 소설을 썼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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