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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생존 게임 -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마르쿠스 베네만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을 보면서도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물들의 생존 게임'보다 '지능적이고 매혹적인'에 더 의아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물들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고 해도,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을 떠올리기엔 나의 지식이 부족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나의 무지가 채워질 거라 생각하고, 어떠한 동물들이 등장하고 생존권을 펼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채워주듯 낯선 동물들의 생존 게임은 그야말로 놀랍고, 지혜롭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그런 사실들을 마주할 때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동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상세히 알아가자 인간보다 더 지능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됨은 물론 동물들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질서와 생존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물들을 묶어 서식 방식이나 각자의 특징을 설명해 주어도, 이 책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종종 먹이를 구하는 일 외에도 쾌락을 즐기는 동물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먹기 위해 하루를 살아가는 동물들에겐 그야말로 최대의 관심사이자 중요한 과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먹이를 구하는 지혜도 나올 수 있었고, 폭력성과 잔인함을 갖춘 면도 드러나게 되었다. 동물들이 처음부터 그랬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끊임없이 진화해가고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구를 사용하거나, 때로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방법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더 이상 동물들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독수리는 등껍질이 딱딱한 거북을 먹기 위해 공중에서 바위로 던지고, 흑곰은 사슴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굴려 눈사태를 만들어낸다. 해오라기는 빵 쪼가리를 연못에 던져 잉어를 유인하고, 물총고기는 물줄기를 쏘아 나뭇잎에 매달린 곤충들을 사냥한다. 큰돌고래는 음파사격을 해서 물고기를 잡는 등 동물들이 먹이사냥을 하는 방법을 관찰하면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자신만의 필살기나 오랫동안 갈고닦은 숙련된 기술과 지혜로 사냥하는 동물들이 있는 반면, 잔인함을 내세워 사냥을 하는 동물들도 있었다. 리더의 연륜으로 원숭이를 사냥하는 침팬지, 곤충들의 뇌 속에 파고들어 좀비로 변화시키는 간충, 자신들의 몸으로 비바크를 지어 모조리 쓸어버리는 군대개미, 귀여운 이미지와는 달리 새끼 새들을 잡아먹는 청솔모까지 우리의 인식을 벗어나는 동물과 간사함까지 드러내는 동물들도 무척 많았다.
동물들의 세계만큼이나 독특한 것이 있다면 저자의 문체였다. 아무래도 수집된 자료를 기록하다보니 지루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동물들의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무조건 기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저자의 시선에서 재정립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직접 동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들 세계에서 어려움을 피력하기도 하며, 주변 동물의 시선에서 등장동물을 평가하기도 했다. 거기다 다른 사례를 대입하면서 유머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외국 유머라서 그런지 한참 지나서 웃는 뒷북이 존재했지만). 종종 동물들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저자가 동물들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편의 스릴러나 소설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세계 곳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이어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사진이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일러스트가 전부라 책에 소개된 동물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상세하게 묘사된 글로 인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했고, 조금이나마 딴 생각을 하면 펼쳤던 상상을 다시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반면 사진이 없어 확 와 닿지 못한 동물들의 모습이나 묘사의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서려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동물들을 관찰하고, 실험하고, 때로는 평생을 바쳐 연구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해서 한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는 불평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낯선 동물들을 어떤 식으로 그려가며 정립시켜야 할지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게다가 동물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게 느낄 수 있겠지만, 나만의 생존 비법 같은 것을 캐낼 엄두도 못 내고 오로지 관찰자의 입장을 취해야 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지난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동물들의 생존 비법을 지켜보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간다는 것에 나름의 충족감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더라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동물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져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 새롭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오로지 동물들의 생존 비법만 관찰하느라 이 책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많이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동물세계에 어느 정도 경외감이 생기고 생명을 가진 존재의식이 자리 잡기도 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자연이 심히 파괴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동물과 인간이 적절히 어울리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물학자들에게 놀라움으로 비춰졌을 동물들이, 그들의 세계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나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의미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