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꼬마 니콜라 세트 - 전5권 ㅣ 꼬마 니콜라
장 자끄 상뻬 그림, 르네 고시니 글 / 문학동네 / 2000년 2월
평점 :
아이로니컬하게도 니콜라 시리즈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꼬마 니콜라>를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읽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을 읽고, 니콜라 시리즈를 구하려는 찰나 해적판 <꼬마 니콜라>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 그 책을 읽은 탓이었다. 순서로 따지자면 <꼬마 니콜라>를 두 번째로 읽은 셈인데, 정식 판본이 아닌 오래된 책이어서 그런지 많은 부분이 엉성해 꼭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니콜라 시리즈는 뒤죽박죽이 되어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 <돌아온 꼬마 니콜라>, <앙코르 꼬마 니콜라>, <꼬마 니콜라> 순서대로 읽게 되었다. 나조차도 읽는 내내 순서가 헷갈려 애를 먹었지만, <꼬마 니콜라>를 읽고 나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아 이제야 제대로 읽은 기분이 든다. 오히려 그 사이에 니콜라와 친구들,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고 친해져서 <꼬마 니콜라>를 만났을 때는 생경함 없이 아주 느긋하게 읽을 정도였다. 니콜라 시리즈의 순서가 꼭 중요하지 않지만 엄연히 따지면 시리즈의 첫 작품인데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 들어온 <꼬마 니콜라> 해적판과 비교해 봤다. 상페의 삽화도 많이 달랐고, 색감이 입혀진 것 하며 번역도 상당부분 달랐다. 거기다 주석이 달려있어 프랑스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나름 즐겁게 읽었던 해적판의 어지러움이 정식 판본에서는 말끔하게 정리된 기분이었다. 그런 느낌 때문에 <꼬마 니콜라>를 꼭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새롭게 부응하고자 다가온 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매끄러운 번역과 깔끔한 삽화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고, 오래된 친구들을 만난 양 그들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게 되었다.
처음 니콜라 시리즈를 읽을 때는 니콜라 외에 친구들의 이름이 너무 헷갈려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었는데, 여러 권을 읽다보니 그들의 특징을 거의 다 외우게 되었다. 우등생이지만 얌체인 아냥, 먹보 알세스트, 힘이 센 외드, 부자 아빠를 둔 조프루아, 아빠가 경찰인 뤼퓌스 등 오히려 더 친근하고 재미나게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아이들이 있는 곳에 늘 사고가 터지고, 엉뚱한 발상이 일어나며, 어른들의 골칫거리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건 어른인 나의 시각일 것이고,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어른들은 늘 잔소리만 해대고 재미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나는 어른도 아이들도 어느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어른들의 행동과 사고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어린 시절을 거쳐 왔기 때문에 아이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 니콜라 시리즈를 읽었을 때는 문화의 차이가 얼마나 낯설었는지 모른다. 인물들의 이름은 마구 헷갈리고(저자가 친절히 반복해서 설명해 줌에도), 학교 선생님들은 툭하면 감옥에 간다는 말을 하는 거나, 부모님이 아이들의 뺨을 아무렇지 않게 때리는 것, 남자 아이들이라도 코피를 터트리고 뒤엉켜 싸우는 것이 일상화 된 모습이 너무 삭막했다. 거기다 목요일이면 학교를 가지 않는 거나(잘못을 했을 땐 목요일이라도 학교에 나와야 하지만), 점심은 대부분 집에 가서 먹고 오는 거 하며, 어린 아이들이라도 자주 영화를 보러 가고, 디저트에 목숨을 거는 것이 너무나 생경했다. 지금의 프랑스 아이들의 모습이 어떨지, 생활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지 못하지만 온전히 저자가 그려낸 프랑스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에 무조건 적응해야 했다.
나의 어려움은 개의치 않고 아이들은 늘 말썽만 피웠다. 아이의 시선을 능글맞게 표현해 내면서도, 은근한 풍자와 익살이 들어간 에피소드를 읽고 있노라면 많은 감정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아이들만의 순수함을 잃었다가 찾아주고, 천진난만함을 어이상실과 함께 던져주며, 결론을 해피엔딩(?)을 만들어 주지 않고, 엉뚱한 결말을 맞이하는 에피소드 앞에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늘 피곤하면서 무관심한 아빠, 살림 하랴 니콜라와 아빠 뒷바라지 하랴 바쁜 엄마가 있는 니콜라의 집에서도 많은 에피소드가 일어났다. 집에서는 그나마 부모님의 감시 때문에 니콜라가 아주 조금은 얌전해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니콜라의 눈에는 부모님은 늘 귀찮아하고, 잘 싸우며, 때로는 철없어 보이기도 했으니 진면목은 친구들과 만날 때 드러난다.
그야말로 니콜라와 친구들이 모인 곳에는 메뚜기 때가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이 초토화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늘 제대로 된 처리되는 일은 없었으며 엉키고, 싸우고, 깨지고, 부서지고, 어른들이 늘 뒤처리를 못해 애 먹는 일들만 일어난다. 그러면서 말은 어찌나 잘 하는지. 그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해도 이 아이들은 말썽꾸러기 중에 말썽꾸러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학교에서 있는 행사나 자잘한 일상도 도무지 선생님들의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늘 선생님들이 먼저 나가떨어지곤 했다. 그 아이들이 밖에만 나갔다하면 사고를 치니 다른 어른들이 선생님의 노고를 칭찬하는 것조차 이해가 될 판국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니콜라와 친구들은 학교의 룰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도 적당히 어긋나며, 말썽을 피우고 실컷 뛰어 놀았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 어른들이 온전히 비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제어하려 했다가 제풀에 꺾이고, 모든 것에 심드렁하고, 때로는 더 유치한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이 무언가로 언쟁을 벌일 때는 부이옹 선생님이 말려야 감칠맛이 났고, 니콜라가 떼를 쓰고 울 때면 서로의 탓으로 돌리는 부모님이 등장해야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 보였다. 다음에 그 아이들이 커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보다, 늘 말썽꾸러기인 아이들과 그들의 수준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어른들의 세상과 구별되길 바랐다. 한편으로는 내 기억 속에 영원한 꼬마들로 남아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했던 <꼬마 니콜라>의 대장정이 마무리 되었다. 언제든지 생각날 때면 책을 꺼내 다시 읽으면 되지만, 첫 만남의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책장에 꽂혀있는 니콜라 시리즈만 봐도 그냥 흐뭇한 미소가 먼저 묻어난다. 너무나 많은 에피소드를 읽어서 어쩔 때는 내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앞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 발간되어 나를 헷갈리게 해도 투덜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꼬박꼬박 읽어 주었을 것이다. 단지 오래전 르네 고시니가 우리 곁을 떠났기에 다음 시리즈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르네 고시니와 장 자끄 상페는 환상적인 콤비로 꼬마 니콜라 시리즈를 탄생시켜 많은 이들에게 추억과 재미, 골칫거리를 안겨다 주었다. 많은 독자들은 책 속의 주인공들을 각자의 취향대로 인식시켰을 것이며, 수많은 에피소드를 자신의 추억과 버무려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상페의 삽화로 주인공들이 더 친근해졌고, 글을 이해하기 쉬웠으며, 반대로 글을 통해 상페의 삽화가 돋보이기도 했다. 이 둘의 만남은 늘 입이 아프게 칭찬하고 반복해도 환상적이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니콜라 시리즈를 너무 유쾌하게 펼쳐 놓았고 덕분에 많은 독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