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알베르 카뮈 전집 1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책장에 고이 잠들어 있던 카뮈 책 중 <태양의 후예>를 꺼낸 것은 카뮈 전집이 완성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20권의 책이 세트로 판매가 되는 것도 모자라 특별 양장본으로 제작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갖고 싶은 욕망에 몸부림이 쳐졌다. 이미 카뮈 전집 중 11권이 있기 때문에 입맛만 다시고, 그 여세를 몰아 전집이나 읽어보자며 꺼낸 것이었다. 소설이나 산문을 꺼내들었더니 너무 묵직해서, 사진과 짤막한 글이 들어 있는 <태양의 후예>를 골랐다. 카뮈 전집을 번역한 김화영님은 이 책을 1992년 파리에서 지인에 의해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진행 중이던 '카뮈 전집' 번역 계획 속에 이 책을 포함시켜 현재 독자인 우리가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앙리에트 그렝다의 사진에 카뮈의 짤막한 글이 담겨 있어, 카뮈의 흔적을 엿보려고 했던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온전히 카뮈의 흔적을 느끼기 보다는 글과 사진이 같이 어우러져있는 공동작업의 결과이기 때문에 어쩌면 내면의 깊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카뮈 전집 중에서 이제 한 권밖에 읽지 않은 나도 그 점을 염려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이 책으로 인해 휴식을 취한 기분이었고 형언할 수 없는 신선함을 안은 것 같았다. 

 

  보통 사진이 실려 있는 책들은 책 따로 글 따로 인 경우가 흔하다. 찍는 이와 글쓴이가 같아도 동일시되는 느낌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극히 드물게 공동작업의 경우에 일치되는 느낌을 책들을 만나게 된다. <태양의 후예>는 일치되다 못해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책이었다. 사진에 짧은 텍스트를 붙인 책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 이면을 보게 할까 걱정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이어지는 사진을 보며 어떤 텍스트를 써냈을지 기대하며 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총 30장의 사진과 카뮈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책이 탄생한 배경에는 카뮈와 각별한 우정을 자아냈던 시인 르네 샤르의 발문이 참고가 되었다.

 

"젊은 사진작가 앙리에트 그렝다와 카뮈가 이 고장을 샅샅이 누비고 돌아다니면서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된 기쁨과, 앙리에트 그렝다의 초기 사진 작품들을 보았을 때, 본의 아닌 기교 때문에 그만 본질을 훼손하게 된 그림 엽서의 사진들이나 순수한 연구 자료들과는 다른, 보클뤼즈 지방의 영상, 초상, 풍경들을 가져봤으면 하고 느꼈던 나의 욕심이 만나서 태어난 것이다".(142~143쪽)

 

  처음에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헷갈렸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앙리에트 그렝다와 카뮈가 프로방스를 '샅샅이 누비고 돌아다니면서' 만들어 낸 작업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앙리에트 그렝다와 카뮈가 아닌, 르네 샤르와 카뮈였고 르네 샤르가 앙리에트 그렝다의 초기작을 보고 이 책을 만들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아리송하긴 해도 어찌 되었든 같은 장소를 누비고 다닌 사람들의 공감대로 한 권의 책이 탄생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렝다의 사진과 카뮈가 본 고장이 어느 정도의 시기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굳이 그 시간을 따지기보다 혼연일치되는 사진과 글의 매력을 느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혼연일치'라는 표현을 과감하게 쓸 정도로 사진과 카뮈의 글을 극찬하는 것은 사실감 때문이었다. 나 또한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는 사진에 짤막한 글을 붙여본 경험이 있는데, 영감이 떠오를 때는 쉽게 글이 나오지만 반대일 때는 허구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일치되지 못한 글을 붙일 때도 있다. 카뮈는 내가 경험한 허구적인 느낌을 배제시키고 사실적인 묘사와 사진 밖의 풍경은 물론 시적인 느낌과 함께 삶을 뛰어넘는 시선을 그릴 줄 알았다. 왼쪽 면에는 카뮈의 글이, 오른쪽에는 그렝다의 사진이 실려 있음에도 한 사람의 작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한 사람의 작업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조화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버드나무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사진을 보며 '늙은 버드나무 둥치에서 신선한 가지들 다발로 뿜어 나온다. 이 세상 최초의 정원이다. 새로운 새벽마다 최초의 인간.' 이라고 텍스트를 붙인 것이나, 늘어지는 갈대 사진을 보며 '여기 눈 앞 가까이엔 사랑의 침상. 벌써 잠자리는 따뜻하다. 멀리서, 그이들 웃는 소리 들린다.' 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완벽의 의미를 뛰어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아한 표현하며, 흑백사진임에도 사진이 생생하게 살아있게 만들어 주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다. 옮긴이는 '비약과 생략법으로 인하여 더욱 아름다운 것이 카뮈의 시적 텍스트다.'라고 말했는데, 어렵게 들리는 의미를 직접 보고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옮긴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독자들의 몽상을 도와주려는 의도에서(과연 이런 것이 가능할까?) (중략) 일종의 주석을 사진 뒷면에 붙여놓았다.'고 했는데 그 주석이 별 도움이 안 될 때가 더 많았다.

 

  주석은 옮긴이의 개인적인 느낌이 드러나기도 했고, 카뮈가 남긴 텍스트를 좀 더 풍부하게 해 줄 요량으로 카뮈의 작품에서 세세하게 발췌한 것들이었다. 사진과 짤막한 글에서 이미 풍부함을 느껴서인지 그것들을 읽을 때면 오히려 흐름이 끊겨 술렁술렁 읽고 넘길 때도 많았다. 그렇더라도 묻힐 뻔 했던 독특한 책을 카뮈 전집에 포함 시켜 준 옮긴이의 공로에 힘입어 여러 사람의 조화로 탄생된(주석을 붙인 옮긴이의 노고도 포함해) <태양의 후예>는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의미도 잘 떠올려 보지 않는 나인데도 책을 보고, 읽고 나자 이렇게 기막힌 제목을 붙일 수 없다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올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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