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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2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평점 :
성장소설이어서 덥석 집었는데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덮어 버렸다. 말을 못하는 여주인공 순지와 바보인 오빠, 그런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남동생, 세 자녀를 홀로 키워온 엄마가 등장하는 초반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사투리까지 섞인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발랄함을 기대했던 마음이 순간 사라져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책을 방치하다 겨우 다시 읽게 되었는데, 묵혀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버렸고 안타까움에 마음이 싸해지고 말았다.
현재와 과거를 나눠 훑어가는 구성은 읽기를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말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현재의 순지가 그렇게 된 과정을 알아가는 것이 괴롭다면 괴로웠을 것이다.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농사를 지어야하는 순지의 처지가 안타까웠고, 그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나, 서울에서 일하는 동네 친구들을 향한 부러운 시선 모두가 나를 괴롭혔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디선가 저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때문에 괜히 마음이 가라 앉아 버렸다. 꿋꿋하고 순박한 순지였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즐거울 리 없었다. 명절 때 만나는 동네 친구 은영과 정애는 서울 물에 푹 절어 순지를 유혹하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던 순지는 엄마에게 서울로 보내달라고 조르게 된다.
자신의 고집대로 서울에 가게 되었지만 그곳 생활은 꿈에 그리던 생활이 아니었다. 비좁은 자취방과 고단한 공장생활은 순지에게 공부는커녕 도시의 호락하지 않음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다. 은영과 정애가 있었지만 오히려 정애 때문에 공장에서 난처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순지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한 사물에 불과했다. 그런 서울생활과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순지의 이야기는 어지럽게 흩어져 어떤 모습을 더 지켜봐야 할지 몰라 겁이 나기도 했다. 말 못하고 병약한 현재의 순지의 모습이 처음에는 답답했으나, 조금씩 서울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지면 오히려 시골속의 순지가 평안했다. 반대로 서울에서의 경험이 이어지면 힘겨워도 무언가 희망이 보이기도 하다가, 심상치 않은 결말로 좁혀 들어갈 때면 마주하기 싫어 피하고만 싶었다. 저렇게 발랄했는데 순지는 왜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자꾸 은영과 정애만 찾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순지를 비롯한 친구들과 공장에 모여든 수많은 여공들은 십대가 많았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을 앞둔 시기였지만 당시의 팍팍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순지가 공부를 한다는 꿈은 꿀 수도 없었다. 시골만 벗어나면 대학도 다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꿈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현실만 깨달아갈 뿐이었다. 집에도 가고 싶고, 가족들도 보고 싶고, 자신이 좋아하는 정태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하루하루가 고역 같은 나날이었다. 그런 일상도 감당하기 힘든데, 급기야 공장에서 싸우다 잘리고 만다. 그런 상황에 내던져진 순지가 너무나 막연해 두려움이 일었다. 열일곱이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데, 그런 쓰디쓴 세상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방직공작으로 일자리를 옮긴 순지를 따라 친구 정애와 은영도 같은 공장에 다니게 되었고, 지하 기숙사일망정 생활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치와 구박 속에서도 무료로 야학을 해주는 곳에서 공부를 하며 희망을 부여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공장 생활에서 힘들어도 공부가 활력이 되어 주었으며, 현재를 견디면 보다 나은 미래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고 불행의 그림자는 서서히 아이들을 덮치고 있었다. 순지가 그런 상태로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이유에는 정애와 은영의 죽음이 있었다. 순지는 분명 그 기억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고, 고통 받고 있었음에도 엄마는 정애와 은영의 귀신이 순지를 괴롭힌다 생각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말에 순지 엄마는 질겁을 하고, 굿을 해 귀신을 쫓으려 하고 그런 순지를 도와주려 정태가 나타난다.
정애와 은영의 목숨을 비롯한 다른 소녀들의 삶을 모조리 뺏어간 사건은 불이었다. 셔터가 내려진 지하 기숙사에서 잠든 사이 불이 났고, 아이들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빠져 나가려 했지만 창살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어갔다. 22명의 사망자를 낸 그 사건은 실화였으며 순지만이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난 사람이었다. 그 사건을 향해 순지의 과거가 펼쳐졌고, 아이들의 생은 끝을 달리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천진하게 읽어나가고 있었다. 순지가 저런 모습으로 고향에 내려온 진실의 이면에 이런 내막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오만이었다. 순지의 내면에는 그날의 고통과 친구들에 대한 죄책감이 맞물려 말문을 막고 있었고, 치료가 없이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없었다.
동생을 잃은 정태나 은영과 정애의 엄마는 순지를 보는 것이 괴로웠고, 그들 간의 벽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나마 순지에게는 자신을 생각하는 가족이 있었고, 마음의 치료가 아닌 엉뚱한 굿을 벌이다 다시 화해하는 사건이 만들어졌으며, 정태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다. 순지의 고통을 알아주는 의사와 정태의 도움으로 순지는 그간의 고통을 조금씩 털어내며 말문을 여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나지만, 그것으로 순지를 안심하고 바라볼 수는 없었다. 물론 힘든 시간을 거쳐 왔으니 좀 더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미 지나온 시간도 고통으로 얼룩져있어 무조건적인 희망을 던져주기가 미안했다.
1988년에 일어난 사건을 소설화 시키는 사실을 모르고 읽어서인지, 열일곱의 시선으로 시시콜콜 늘어놓는 감정의 나열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억지로 들어가려는 경향으로 보이기도 했고, 고리타분한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타박을 했다. 순지가 겪은 일이 드러나고 저자의 말을 읽고 나니 그제야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또한 내가 그들의 삶을 짓밟은 것 같아 죄책감에 마음은 얼룩져갔다. 1988년 당시 그들보다 어렸지만 어른이 된 현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삶을 짓밟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줄 수 없다면 최소한 짓밟지는 말아야 한다. 지켜줄 수 없다면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고 그 아이들이 '어쩌자고 우린' 하며 현실과 나이를 탓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을 통해 어른의 욕심으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면 더 이상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