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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7 - 양장본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꺼낸 <아리랑>의 읽기가 더뎌져 흐름이 끊길 때면 이번만은 절대 방치하지 말자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4년 만의 해후이기도 하고, 다시 손을 놔버리면 해후를 안한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리랑>을 한권씩 읽을 때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권 당 묵직한 페이지수도 한 몫 하겠지만, 분량으로 따질 수 없는 한(恨)이 서려있기에 한 호흡에 읽는다는 것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자꾸 도망치고 싶어 책을 덮어버리고픈 마음을 끌어당겨 7권을 읽었다. 마음을 새롭게 먹어서인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려있는 한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버렸다.
6권에서 3·1 만세운동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7권에서는 일본인들의 악랄함이 더 심해졌다. 그에 상응하듯 독립군들의 활동도 거세졌지만, 보복은 힘없는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두만강 건너에서 독립군들에 의해 일본군이 당했다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죽어간 조선인들이 너무 많았고 여러 조직으로 나뉜 독립군들 사이에서도 파장이 일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함께 새로운 사상과 맞물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내외향적인 사상이 구식으로 점철된 이들 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속박을 피해 만주와 이남으로 길을 떠났고, 그곳이라고 해서 조선인들을 편하게 만들어 줄 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해봤자 입성만 남루해졌고 일본인들의 배만 채워줬기 때문이다.
일본이 발표한 산미증식계획으로 더 많은 쌀을 거둬들이기 위해 간척 사업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농부들이 불리한 조건임을 알면서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입에 풀칠하기 힘든 형편과 간척사업이 끝난 뒤 소작땅을 분배해 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고, 힘없고 나약한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조선인 감독들과 일본의 음모가 맞물려 살기가 팍팍해질 뿐이었다. 바다를 메워 논을 만들어 놓자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게 되었고, 북향의 땅을 나눠주고 그곳에 판잣집만도 못한 집을 짓게 했으며, 약속과 다른 양의 소작땅을 나눠준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분노해 보았자 그들의 억울함과 나라를 뺏긴 설움을 달래 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빌어먹지 못한 세상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부여잡다 책을 놓고 싶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저자가 흩뿌려놓은 인물들의 삶은 파란만장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세키야에게 쫓겨난 보름이는 수국이를 범한 죄로 한쪽 눈을 잃은 백남일에게 보복을 당했지만, 서무룡의 덫으로 인해 백남일은 더 난처해지고 말았다. 세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보름이에게 장사밑천을 대어주는가 하면 서무룡은 보름이를 그런 식으로 옥죄어 들었다. 한편 양치성의 계획대로 엄마를 잃은 수국이는 그와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차렸는데, 경찰 끄나풀이라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된 수국이는 양치성을 칼로 찌르고 남동생과 송수익 선생, 필녀가 있는 곳으로 간다. 송수익 선생이 중심이 된 조직은 일본군들을 피해 북쪽으로 터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허 스님은 여전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고, 기차에서 만난 장칠문으로 인해 잡힐 뻔 했지만 무사히 빠져 나온다. 옥녀는 어렸을 때 헤어졌던 꿈에 그리던 오빠를 찾아 나서게 되고,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과 미처 기억하지 못한 자잘한 인물들의 행보까지 저자는 촘촘하게 엮어갔다.
그런 와중에 만주나 연해주, 러시아,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 사이에 은밀하게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고 있었다. 일본군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고, 공산주의를 퍼트리는 조선인들에게 더 핍박이 가해졌지만 인력으로 막을 수 없었다.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조선인들에게는 공산주의사상이 너무도 적합했다. 먼저 지식인들에게 퍼져나갔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서서히 민중에게 퍼져나갔다. 그 시작이 정도규가 결성한 소작회였고, 그 일을 시발점으로 해서 나라도 되찾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많은 사람이 꿈꿔갔다. 세계정세와 맞물리는 공산주의의 이념의 개입은 앞으로 독립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일본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세세함에 귀를 기울에 만들었다.
나라 안은 이미 일본인들의 차지라 독립군들이 활동하기 힘들었기에, 더 위쪽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는데 두만강 건너에서 2500리 떨어진 하바로프스크까지 건너온 조선인들도 허다했다. 낯선 땅에서의 성과라면 조선 독립군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합심해 일본군을 쫓아낸 것이었다. 협약까지 어겨가며 러시아 땅까지 넘보던 일본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농민들의 반란과 독립군들의 투쟁을 빌미로 더 완악하게 조여들 것을 예감하게 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가 끝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겪어보지도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럴진대, 당시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도 감당하기 힘들다는 투정조차 미안해진다.
불편한 역사를 재생하고 있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다고 할 수 없다. 분위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단면이기에 수긍하면서도 자잘한 삶의 단상에 위로를 받곤 했다. '그래도 삶을 이어간다.'는 체념에서 우러나온 모습을 지켜보며 도리어 위로를 받았고, 그 가운데 발생하는 위트와 농거리, 걸쭉한 입담이 여과 없이 드러나 역사소설로 단락 짓게 되는 섣부름을 이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과 일본의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견했다. "조선땅이 빌수록 왜놈덜만 좋아지는 것잉게. 거그서 고상덜 험서 사는 것도 조선땅얼 지키는 것이고 왜놈덜하고 싸우는 것이란 말이시." 자꾸 조선땅을 비워가는 조선 사람들을 향해 독립군들이 했던 대화가 내 마음을 찌른다. 비단 독립군들만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