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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평점 :
모자를 둘러쓰고, 편안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꿰어 신고 집을 나섰다. 잔잔하면서도 밝은 분위기의 피아노 음악이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고, 오랜만에 산책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 들떴다. 바람이 좀 차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내가 집 근처일지언정 산책을 나가게 된 것은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때문이었다. 책 가운데서도 '가까운 교외를 도보로 걸으며 청량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나는 현재를 살아가노라." 라고 읊조릴 수 있는 지혜는 어떨까?' 란 구절을 읽고 나서였다. 안 그래도 몸도 마음도 답답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것이다. 장소는 얕은 바다가 보이는 집 근처로 정하고, 그곳에서 한 시간 가량 앉아서 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가 좀 아파오긴 했어도, 잔디밭에 앉아 햇볕을 쬐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으니 평온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앉아 있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을 꺼내 메모지를 붙여놓은 곳만 훑어보았다. 이미 읽은 뒤라 수십 장의 메모지가 붙어 있어 그곳만 읽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급할 것은 없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산책도 할 겸 책 내용을 정리도 할 겸, 또 내 마음의 어지러움을 털어 버릴 겸 옮긴 걸음이라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나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부분을 펼쳐놓고 여러 번 반복해 읽기도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기도 했다. 나를 가장 오랫동안 붙들었던 구절은 팡세가 <파스칼>에서 언급 한 "진정한 만족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란 부분이었다. 그 구절을 수도 없이 보면서 원하는 것을 비워내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서러워 눈물을 조금 흘리기도 했다.
그 구절을 벗어나지 못해 한참이 지나서야 다른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내게 와 닿는 구절들은 죄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이별의 아픔이 가시질 않아서인지 사랑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통곡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스무 살의 사랑'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었지만, 그 부분을 읽으면서 서른 살의 나는 얼마나 잘못 된 사랑의 과오를 저질렀는지를 알려 주는 것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나를 아프게 찌르는 구절들을 보며 내 자신과의 대면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큰 맘 먹고 산책을 나온 이유였고, 읽은 책을 들고 나온 이유였으며, 다시 새롭게 나를 다듬어가고 싶은 욕망이었다. 나와 대면해야 하는 순간은 무척 두려웠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고, 더 이상 나와의 대면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권의 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다. 읽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런 스타일의 책들은 비교적 빠르게 읽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중심 메시지만 잊어먹지 않으면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인데, 아무런 기대 없이 펼친 이 책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얻고 문제제기를 할 줄은 몰랐다. 정독하며 읽은 것은 물론이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메모지를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구절들을 보며 나를 대입하며 오랜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읽기는 자꾸 더뎌졌다. 샅샅이 읽었다는 후련함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발견된 나의 고민과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하던 차에 책 구절이 떠올라 산책을 나간 것이다. 저자의 충고대로 따라해 보니 확실히 기분 전환이 되었고, 아직도 이 책을 들여다보며 실천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음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이 책 내용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발견된 내 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동떨어진 얘기일지라도, 이 기회를 통해 갇혀 있던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면 책 내용을 전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책 속에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내가 느낀 대로 드러내기만 해도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 비친 셈이 될 터였다. 그러나 스무 살을 겨냥해 철학과 접목시켜 자신과 만나기를 권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책 제목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쉬웠다. 서른 살의 내가 읽어도 뒤통수를 치는 듯한 격렬함이 많았는데, 스무 살에 국한시켜 그들의 시선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부분 때문이었다. '나를 만나는 젊음의 철학'이나 '나를 만나는 철학'이라고 지었다면, 좀 더 포괄적인 독자들을 끌어 들일 수 있겠다란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저자가 스무 살을 겨냥한 것은 방황하고 불안한 청춘인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의 방황과 서른 살의 방황은 가능성부터 다르기 때문에(서른 살의 방황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스무살 때의 방황에 가능성의 농도가 더 짙다는 것이다.) 저자만의 깨달음으로 충고를 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여러 책들의 문구를 언급하면서도 가볍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흡인력 있는 글을 써 내려갔다. 무엇보다 저자의 독서가 밑바탕이 되어 주는 다양한 책들의 삽입이 자연스러운 것이 인상 깊었고, 그에 따르는 현실의 적절함을 드러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드러내면서도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었으며, 인생을 전반적으로 두고 봤을 때 한번쯤 돌아봐야 할 것들에 대한 격려와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스무살 뿐만이 아닌 다양한 연령층을 포섭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고, 수많은 지혜와 경험들이 넘쳐 남을 볼 수 있었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섞었기에 교통정리를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인용과 경험을 통한 문제제기를 해주었지만 그에 따른 이면의 세계를 펼쳐 보여 양면성의 해결방안 안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내 상황에 맞고 옳으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내가 가진 고민들을 대입하며 읽다가 '이런 것이 문제였구나!'하고 뒷장을 넘기면, 반대의 상황을 말하고 있어 어떤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섣불리 가를 수 없었다. 책 제목에 '철학'이 들어간 만큼, 독자들이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으면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해 소요학파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하니, 현재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철학적 사유라고 해서 나와 동떨어진 세계를 놓고 생각에 생각만을 거듭한 것이 아니라, 내게 당면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어김없이 건드려 주었다. 드러남에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닌, 진지하게 나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하긴 힘들지만, 이 책을 통해 내 몸 구석구석이 뒤집어지고 엎어져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한 준비과정이 된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혼란스럽다.
내게 들어온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싶은 욕망만 앞서 두서없이 풀어놓긴 했으나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응어리는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책 내용을 정리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기에, 얼마 동안은 혼란스러움을 간직한 채 책의 도움을 받아보려 한다. 책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책의 도움은 받되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 지으며, 현실에 적절히 대입해 보는 것이 최선책일 것이다. 더 이상 방에만 갇혀 은둔하지 않을 생각이고, 책 속으로 도피하지 않을 것이다.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오더라도 산책을 자주하며, 날이 더 따뜻해지면 달리기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열려진 바깥세상이 얼마나 넓고 무한한지를 깨달았다. 이제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이다. 이 발걸음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내 자신에게 당당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