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12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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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홍루몽 12권을 읽어 3년 동안 끊겨버린 이야기를 완성 시켰다. 9권부터 줄기차게 읽어내던 책이 12권에서는 좀 주춤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왠지 모를 서운함과 장편을 마감 짓는 서사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며칠을 노닥거리다 책 읽기를 마쳤다. 3년만에 책을 다시 잡았을 때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있었다. 결말을 대충 알고 있다고 해도 과정이 중요한 작품이므로 저자가 인도하는 길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에 대해 저자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교훈을 줄 수 있는 결말로,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며 희망을 엿볼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결말을 향해 가면서 그런 저자의 뜻을 간파해서 그런지 어떠한 일에도 놀라지 않았으며, 그것이 삶의 흐름이라는 순종적인 태도로 홍루몽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보옥이 현세에서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완벽한 세대교체가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가세는 기울어가고,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많은 사고가 일어나며 가족들의 죽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보옥에게 기대를 걸 수 없으니, 앞으로 가씨 집안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씨 집안의 분위기는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다. 대부인을 따라 원앙도 따라 죽고, 어른들이 집을 비우고 있는 사이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 물건만 훔친 것이 아닌 묘옥스님을 납치해 못된 짓을 하고, 왕희봉도 병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묘옥스님이 납치 되어 소식도 없자 석춘은 출가의 뜻을 비친다. 그런 가운데 보옥은 정신을 놓았다 차렸다 하는데, 보옥 또한 현세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통옥령을 얻어 태허환경을 경험한 뒤였다. 보옥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생사를 오락가락 할 때에 웬 스님이 찾아와 구슬을 전해주며, 구슬 값으로 만 냥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 사이에 보옥은 태허환경에 이르러 죽은 가족들을 만난다. 다시 목숨이 살아난 보옥은 그 일로 인해 현세의 물욕이 다 쓸데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가정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을 봐야 했기에 잠시 정신을 차린 듯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한다.

 

  가정은 대부인을 비롯한 대옥의 시신을 가지고 강남으로 가는 길이라 집안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식구들에게 집안일을 맡겼는데, 욕심에 눈이 멀어 희봉의 딸 교저에게 잘못된 혼사를 이어주려는가 하며, 놀음과 주색잡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큰 댁 식구들에 의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 이상 일이 잘못되려야 잘못 될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보옥과 가란은 나란히 과거에 급제한다. 좋은 성적으로 급제한 보옥은 그 길로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사라진다. 다행히도 보옥과 가란이 나란히 합격한 것을 황제가 원춘 귀비의 식구임을 알아보고 갸륵히 여겨 가사의 죄를 용서함과 동시에 몰수 되었던 재산까지 돌려준다. 안 좋은 일만 일어나 흉흉하던 가씨 집안에 조금씩 화기가 돌고 제자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가정은 어머님의 시신을 안치하고 돌아오던 중에 구 소식을 들도, 보옥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보옥이 하계로 내려온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식구들에게도 보옥의 존재를 단념시키지만, 이미 보옥의 아이를 가진 보채와 왕부인, 습인은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보옥 자신이 그렇게 될 줄 알고, 식구들에게 여러 말은 해 준 것이 현실이 되면서 보옥이 빠진 가씨 집안은 예전의 부귀영화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고, 사랑하는 식구들과 헤어지는 일도 있었지만 남겨진 식구들이 앞으로의 생을 잘 이어갈 거라 생각한다. 세상의 인연은 억지로 된 것이 아니고, 이미 정해진 이치에 따라간다고 하니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흐뭇하면 흐뭇한 대로 순리에 따라야 할 것 같다.

 

  조설근이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를 고악이 이어 썼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책의 말미에는 가우촌을 통해 조설근 선생을 등장시켜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익살을 남긴다. '부질없는 이야기'라는 것과 '인생의 허무를 찔러 놓았다.'며 소설을 마무리 하고 있기에, 나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마치 한 편의 긴 꿈을 꾼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홍루몽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방대하고 거대한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이 중심이었고, 그네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것이 빠졌다면 이 책을 읽는데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끝까지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쩔 때는 너무 깊숙이 내 안으로 들어와 그들의 희로애락이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 잘 마무리를 하게 되어 나름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호흡에 읽었다면 전체적인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장편을 한 호흡에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앞으로 읽게 될 또 다른 장편들은 이렇게 끊어서 읽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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