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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졸업식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3
요코사와 아키라 지음, 이경옥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우연히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시리즈를 중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난 뒤 성장소설에 대한 애정이 급격히 상승했고,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어도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시리즈는 못 읽고 있었는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책을 발견하곤 지인을 졸라 구입했다. 책을 묵혀둘 겨를도 없이 집에 오자마자 책을 펼쳐 밤이 늦도록 읽고는 따뜻해지는 마음을 한참동안 부여잡고 있었다. 이래서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거라며 책장에 꽂힌 다른 성장소설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성장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같은 10대로서 공감할 수 있을 때 이런 책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정작 내 마음을 울리는 책보다 어려운 세계문학과 국내문학을 주로 읽은 터라, 기억에 남는 성장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제야 성장소설을 열심히 읽는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동경도 어느 정도 자리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손사래를 치고 거절하겠지만 10대의 고뇌와 풋풋함이 종종 그리울 때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유코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과 존재감 때문에 힘겨워 하고 있었다. 학교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고,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강박증이 심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나가는 것이 두려워 집에서만 보내게 되었다. 그런 유코를 이해해 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 같아도 학교에 가기 싫다고 가지 않는 유코를 보며 겁쟁이라고 놀렸을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은 지금도 실컷 피하면서 유코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지만, 그런 힘겨운 시간을 모두가 다 거쳐 왔다는 자부심이라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유코의 고민을 진정으로 이해한 후에 학교를 나가지 않는 것도 나가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을 통해 나도 학교를 나가는 동안 힘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온통 유코의 내면으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는 동안 마치 유코가 나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민의 색깔이 다를 뿐 유코와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펼쳐진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코가 학교에 나가지 않자 주변에서는 걱정스런 시선으로 인생을 망치고 말거라는 말만 해댔다. 유코의 진심은 묻지도 않은 채(말할 생각도 없었지만) 집에서 은둔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는 유코에게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말들이 들려와도 유코는 도저히 학교에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두려움을 오랫동안 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단지 자신의 말을 누군가 귀 기울여 주고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은 유코에게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유코가 결석할 때도 유코를 회유하려 선생님이 찾아오긴 했으나 유코는 선생님과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온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좀 달랐다. 독특한 웃음 때문에 크큿 선생님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유코에게 왜 학교를 나오지 않느냐, 무엇이 고민이냐는 질문 같은 건 전혀 하지 않고, 교과서를 던져주면서 필요 없으면 재활용 하라는 둥, 배탈이 났다며 화장실을 이용하겠다고 불쑥 찾아오는 둥, 선생님이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행동만 하고 있었다.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유코는 조금씩 호기심이 일었다. 학교와 공부 얘기는 일체 꺼내지 않은 채 매주 화요일에 찾아와 엄마와 잠깐 이야기 하고 가는 선생님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분이라는 기대까지 한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유코는 크큿 선생님의 작은 배려로 인해 하나씩 자신을 깨치고 나온다. 어느새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같이 밤바다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된다. 온통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크큿 선생님은 유코가 마음을 열게 만들어 주었고, 유코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아픔을 공감할 줄 알았다.
유코는 여전히 학교에 나가지 않았지만, 크큿 선생님으로 인해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내 디딜 수 있었다. 유코 혼자 졸업식을 하던 날,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크큿 선생님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 간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단출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조금씩 건강해지려는 유코를 보면서, 변화를 이끌어준 크큿 선생님과 묵묵히 기다려준 엄마, 또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한 발짝씩 내미는 유코가 보기 좋았다. 학교를 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코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유코가 세상을 향해 건강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보면서 유코의 내면을 낱낱이 봐와서인지 괜히 내가 다 뿌듯해졌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겁낼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한편으론 유코처럼 등교거부를 하며 내면과 싸우고 있는 상처받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들을 모두 보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틀에 박힌 교육제도로 아이들을 가두지 않으며, 학교가 생존을 위한 전쟁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아이들이 출발선에서 조금 늦었다고 해서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진정 사랑할 때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유코처럼, 아이들에겐 어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