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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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창한 봄 날씨에 따스한 바람까지 살랑거리니 마음이 싱숭생숭 해졌다. 발길 닿는 데로 조금이라도 걸어볼까 하는 마음도 잠시, 집이 가까워지니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봄바람이고 뭐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데,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방 구조 때문에 책 읽는 것 이외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마침 읽으려고 빼 놓은 <고령화 가족>이 눈에 띄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대로 책을 읽었다. 옷을 갈아입었을 때는 책을 다 읽은 뒤였고, 하릴없이 밖을 돌아다닌 것보다 소설 한 편을 읽은 것이 더 나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소설의 시작은 궁지에 몰린 48살의 오인모란 사내로부터 시작되었다. 10년 전에 찍은 영화 한편 때문에 빈털터리가 된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일흔이 넘은 엄마네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 집에는 이미 50이 넘은 문제아 형이 얹혀살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학생 딸을 데리고 온 여동생 미연까지 합세해 24평 좁은 아파트에 다섯 식구가 살게 되었다. 모두 성공해서 돌아와도 시원찮을 판에, 전과자인 큰 아들과 영화를 말아먹고 신용 불량자가 된 둘째 아들, 바람피우다 이혼당한 막내딸까지 동네 창피할 정도로 가족력이 화려했다. 그런데도 노모는 세 남매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힘들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매 끼니마다 고기반찬을 내놓는다.

 

  그런 살풍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감독(영화 한편 때문에 붙은 별명)과 오함마(문제아 형)는 매일매일 집에서 빈둥거렸고, 먹을 것 가지고 다툼질하고 가족애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조카인 민경도 제멋대로였고, 미연은 카페를 꾸려 나가느라 얼굴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그들의 엄마만이 화장품을 팔며 꼬박꼬박 자식들의 끼니를 챙겨줄 뿐이었다. 이 우울한 가족의 평균연령은 49세. 서로에게 애정을 가질 수 없다면 최소한 피해는 입히지 말아야 할 텐데, 그들이 일으킨 사건 또한 가관이었다. 오감독은 민경이 담배 핀다는 것을 빌미로 용돈을 뜯어내질 않나, 오함마는 조카의 속옷을 보며 자위를 하다 창피를 당하고, 미연은 카섹스를 하다 오함마에게 들킨다. 구성원 제각각이 만들어 낸 모습은 그야말로 암울하고 우울했으며, 이런 가족 이야기를 읽어 무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저자가 만들어 낸 언어의 유희와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 그런 와중에서도 등장하는 헤밍웨이 때문이었다. 저자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얼굴 표정으로 그 사람을 파악했는데, 가령 형사의 얼굴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못 봤다' 라든가 민경의 친구 얼굴엔 '죄송하지만 저도 성질 좀 있거든요'라며 특징을 표현해 냈다. 또한 수거함에서 주워온 헤밍웨이 전집을 읽는 오감독을 통해,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문학세계를 인도하면서도 우리네 삶과 결부시키는 것에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런 막장가족일지라도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 하나 반듯하지 못했기에, 그들이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도저히 이 소설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습이 좀 구질구질할 뿐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들이 정말 별 볼일 없이 살아간다면, 꽁꽁 숨겨놓은 내면의 절망감이 뭉텅뭉텅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 꿈꾸면서' 살아간다는 오감독의 말처럼, 그 꿈을 놓고 싶지 않은 나의 기대감으로 소설의 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감독을 비롯한 가족들은 최악의 상태에서 재회해 어쩔 수 없이 부대끼며 살고 있었고, 점차적으로 밝혀진 가족력은 웬수 같은 형제일지라도 그나마 핏줄이라고 믿고 있던 삼남매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감독과 오함마는 이복형제였고 미연은 이부남매였다. 오감독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친형도 아니고 친동생도 아닌 사람들과 살아왔으며, 들춰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로맨스까지 알게 되었다. 보는 것만도 답답한 이들의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마무리되어질지 궁금하면서도, 가능한 해피엔딩을 꿈꾸었던 기대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 가족의 분위기는 민경의 가출로 인해 급물살을 타게 된다. 달랑 쪽지 한 장 써놓고 집을 나간 민경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방법이 없어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런 민경을 엄마 미연도 아닌, 밥만 축내는 뚱땡이 오함마가 데리고 들어왔다. 식구들에게 별말 하지 않은 채, 오감독에게만 민경을 찾아 온 대가로 바지사장을 해주다 감옥에 한 번 들어갔다 오면 된다고 했다. 오함마가 그런 행동을 할 거라 생각지 못한 오감독은 무언가 찌르르 하면서도 그것이 가족의 흩어짐과 동시에 애정이 드러나는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했던가. 변할 것 같지 않은 오함마가 변화를 주자 복닥거리던 집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지고 말았다. 미연이 결혼을 해 민경을 데리고 나가자, 민경의 친부가 엄마와 살림을 합쳐 들어왔고, 급기야 오함마는 한 편의 첩보영화 스토리를 들려주더니 해외로 떠나버렸다.

 

  오감독은 형제가 떠난 집에서 평소와 같은 일상을 지내다 오함마가 뒤통수를 치고 간 폭력배에게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았다. 그 일로 더 이상 오감독에게 남은 것은 없다고 생각할 찰나, 이민 갔던 대학 후배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그는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또한 오함마에 대해, 콩가루 같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알 수 없는 감정이 샘솟았다.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던 50을 앞둔 사내에게 연인이 찾아오고, 포르노일지언정 일거리가 생겼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가능한 해피엔딩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이리라. 오감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식구들 나름대로 각자의 행복을 찾아 떠났으니,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실패한 인생을 살아왔더라도 남겨진 삶은 똑같지 않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의지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 와버린 자신의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오감독이 진짜 삶은 지금부터라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꼈던 것처럼, 막장가족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삶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막장가족보다 덜 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라면 말해 무엇하리. 진짜 삶은 지금부터다. 그러니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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