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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러 시외로 나갔다. 지인이 한 시간 가량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고 근처에 있는 서점으로 갔다. 지방 소도시에 살다보니 대형서점을 만나기도 힘들어 오히려 책 볼 시간이 생겨 잘됐다 싶었다. 세계문학을 먼저 둘러보고, 자연스레 국내문학을 둘러보다 <눈물상자>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이 얇아서 눈길이 갔고(서점에서 읽기 좋기에), 저자가 한강이어서 관심이 갔다. 그 자리에 서서 책을 읽고 있노라니, 곧 지인이 도착했는데 도리어 덜 읽었다며 핀잔을 주고 책을 마저 읽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해서 더 끌렸고 끝까지 읽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어른을 위한 동화 타이틀만 달고 있어도 질색을 했는데, 요즘엔 세속에 찌든 나를 발견해서 그런지 종종 직접 찾아 읽곤 한다. 동화를 읽는다고 해서 순수한 마음이 생길 리 만무하지만 무언가 내가 잊고 있던 감정을 끌어내주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점에서 마주친 <눈물상자>가 적절한 시기에 다가와준 책 같았다. 제목을 보고 나에게 눈물이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기보다, 눈물이 적은 편은 아니라며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을지에 대해 더 초점을 맞췄다. 아니나 다를까 책 속에는 눈물이 너무 많은 사람과 눈물이 없는 사람들이 대조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어떤 마을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눈물이 많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한 아이는 늘 혼자였다. 아이는 갓 돋아난 새싹을 보면서도, 언덕 너머에서 흘러든 피리 소리를 듣고,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흘린 눈물 때문에 혼자인 아이는 늘 외로웠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눈물을 사들이는 아저씨가 아이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 아저씨는 오랜 세월동안 여러 종류의 눈물을 모으고 있었는데, 아이의 순수한 눈물을 받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눈물이 나지 않았고 아저씨와 함께 온 '파란 새벽의 새'를 보자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저씨는 아이의 눈물 받기를 포기하고 눈물을 팔러 간다며 떠나려 하자 아이도 그 아저씨를 따라가게 되고, 거기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눈물을 사려는 할아버지는 눈물이 나지 않아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한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소원이어서 눈물 파는 아저씨를 불러들인 것이다. 눈물 파는 아저씨에게는 여러 종류의 눈물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눈물을 모두 사서 마신 후 오랜 세월동안 응어리졌던 마음을 눈물로 쏟아낸다. 이내 마음이 후련해진 할아버지는 눈물 파는 아저씨가 보여준 눈물 그림자를 통해 어릴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눈물이 말라버린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떠나게 되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아이는 눈물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사람 각자마다 눈물 그림자가 있다는 것과 눈물 흘리는 것에 강요를 당한 사람들은 그림자가 흘리는 눈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그랬고, 눈물을 파는 아저씨도 보이는 눈물이 없는 축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아이는 그림자를 통해 자신이 흘리는 눈물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강인한 빛깔을 지닌 눈물이 필요하며 단련된 시간이 필요하다는 아저씨의 충고로 인해 아이는 용기를 얻었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에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고, 눈물에 숨겨진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경험에 감사했다. 또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는 눈물을 많이 흘린다는 이유로 외로움을 느끼고, 존재감을 상실했지만 눈물을 파는 아저씨를 만나고, 눈물을 못 흘리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눈물의 종류는 너무나 많지만 나약함의 상징이라고 못 흘리게 된 눈물과 상처로 인해 숨겨진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감정이 메말랐다고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 눈물을 염두에 두며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흘릴 눈물에 슬픔과 고통의 눈물보다 기쁨의 눈물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일지만, 그것 또한 살아가다 보면 우리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떠한 눈물이든지 자연스레 나오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 동화를 통해 나에게는 어떠한 눈물이 숨겨져 있으며, 그림자가 흘리는 눈물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슬픔의 눈물을 좀 많이 흘렸는데, 좀 더 건강한 눈물로 채워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감정에 더 자유로울 필요성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