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이별>은 오래 전 지인에게 받은 책이었다. 이 책을 받을 당시만 해도 이별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책장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리고 이 책을 꺼내야 할 일이 닥쳤음에도 마주하기가 겁났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이별을 잘 견디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고,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언가 위로가 필요했다. 그제야 이 책을 꺼내면서 나의 마음이 달래지 길 바랐고, 한 구절 한 구절 소중하게 읽으면서 이별의 아픔을 견디고자 했다. 실로 많은 도움이 되었고,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이별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서정주 시인의 <신부>에 나오는 신부처럼, 이별을 맞닥뜨리면 '모든 감정을 조용히 내려놓은 채, 날마다 낡아가는 것. 그것 말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나 역시 이별을 한 후에 내가 낡아가기를 기다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 될 거라 생각했다. 그 과정이 힘겹다는 것은 알았지만 견디는 것 외엔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별은 삶에서 익숙한 감정에 속함에도, 우리 정서에 투영된 이별은 늘 의젓해야 한다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애도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고, ''애도 작업'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뿐 아니라 슬픔과 관련된 감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틀어 이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에겐 이 책을 읽는 것이 애도 작업의 한 과정이었다.

 

  이별을 잘 하지 못하고 묵혀 둘 때, '새롭게 만나는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하며', '애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모든 감정이 일시에 솟구쳐 오르는 것에 대해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별을 외면하고 지나간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래왔고, 또 다시 그 일을 반복하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책과의 만남은 숨통을 조금이나마 트이게 했다. 내가 닥친 이별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면 얼마의 시간동안 절망해야 하며, 내 자신을 방치해야 하는지 두려웠다. 저자가 말한 이별은 여러 가지여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에 초점을 맞춰 읽어나갔다. 저자의 경험과 많은 책들의 인용, 심리학자들의 연구 등 많은 사례로 이별과 애도 작업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저자도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애도 작업에 대해 깨달아가고, 치유해 가는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이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고 나자 나를 엄습하는 슬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안도가 밀려왔다.

 

  저자는 경험과 많은 사례들로 좋은 이별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한 편, 꼭지의 마무리에는 이별 레시피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그 모든 방법이 나에게 맞는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방법들이었기에 도움이 되는 것들도 많았다.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해주는 방법과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 각자의 상황에 맞게 골라서 대입하면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독서와 음악듣기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서 어느 정도 이별을 받아들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별'이라는 포괄적인 의미 안에서 내게 맞는 상황만 찾으려고 해서인지, 아니면 너무 광범위한 이별에 관한 나열 때문인지 이 책이 온전히 내게 들어왔다고 할 수 없었다. 무언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분명 위로가 되고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큰 울림은 없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의 실패나 슬픔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경험을 살렸기 때문에 더 와 닿는 것이 있었음에도, 오히려 내면의 어둠을 더 많이 봐버려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독서는 도피하기 위한 방책의 의미가 더 짙은데, 피하고자 하는 마음과 맞닥뜨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많은 부분 극복하고, 많은 독자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었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아쉬워하는 것일까. 아마도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이 온전히 위로되고, 슬픔이 싹 가시길 바라는 넘치는 기대 때문이었나 보다. 고통을 맞이하고 이겨내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고, 저자 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이별의 고통을 너무 가볍게 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의 모서리를 보면 메모지가 수십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움이 되겠다 싶은 부분과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체크해 두다 보니, 책을 덮었을 때는 온통 메모지 투성이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이 책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이별과 순리적인 이별에 당면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꺼내서 도움을 받는다면 지금과 다른 울림이 다가 올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별한 후에도 충분한 애도 작업을 통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발견만으로도 내가 겪고 있는 이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제대로 애도하지 않고 억지로 꿰어 맞추듯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 책에 나왔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오랜 시간 슬픔을 담고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애도 작업 중에 있다. 저자가 알려 준 방법들도 시도해 보고,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생각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결코 혼자가 아니며 이런 감정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과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내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마음을 많이 울리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푸념이 뒤섞여도, 이 책을 통해 애도 과정에 대한 개념을 깨닫지 못했다면 나의 일상은 더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애도 작업이 여전히 필요한 시점이므로 건강한 방법으로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좋은 이별일 것이고, 그 과정 뒤에는 좋은 날들이 올 거라 믿기 때문에 오늘도 억지로라도 용기를 쥐어 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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