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테르 브뢰헬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47
로제 마리 하겐 지음, 김영선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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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직 아트 시리즈를 한 권씩 읽다보니 내용이 알차서 전 권을 다 모으고 싶었다. 만만치 않은 가격에 언제 다 모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미술책을 구입하게 되면 꼭 이 시리즈를 중점으로 구입한다. 그래봤자 이제 네 권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그 안에 포진되어 있는 많은 화가들 중에서 선택되는 경우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기보다, 대부분 책을 읽다 언급되면 구입하는 식이다. 피테르 브뢰헬도 마찬가지였다. 브뢰겔로 익숙한 화가인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해보거나 그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다른 책을 읽다가 심심찮게 언급되는 것을 보고 먼저 구입하게 되었다.

 

  베이직 아트 시리즈의 책들은 무척 얇지만 두께에 비해 풍부한 견해와 그림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어 갈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책이다. 똑같은 화가에 대한 책이라도 새로움을 발견하게 해준다고나 할까.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소개된 화가들을 모두 만나보겠노라는 포부를 가진 채, 피테르 브뢰헬을 만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이름만 들어본 화가였기에 그가 어느 나라 화가인지도 몰랐다. 출생연도도 분명하지 않아 1525년에서 1530년 사이로 추정하는 네덜란드 화가였고, 말년에는 종교전쟁을 겪기도 했다. 그 싸움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중 어느 쪽을 지지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자신의 시대를 배경으로 성서의 사건을 그리는 것이 흔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종교그림을 보고 있으면 종교적, 정치적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어 자신의 의중을 그림으로 표현해 낸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브뢰헬의 성서 사건을 그린 그림을 살펴보면 사건의 중심 메시지 외에도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주로 배경인물들을 통해 어떠한 사건이 중심이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새로운 통치자를 빗댄 '검은 알바'라는 느낌을 살려 그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성서의 사건이지만 브뢰헬이 살았던 브뤼셀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성서의 인물들은 다른 그림과는 좀 다른 면이 있었다. 보통 종교그림이라고 하면 인물들을 신성화 시키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묘사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브뢰헬의 그림에서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도 특별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렸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했기에 종교검열에서 분명 걸렸을 거라는 추측까지 하고 있었다. 설명이 깃들지 않으면 이 그림이 종교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평범함 때문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브뢰헬이 어떠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화풍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알 수 있었다.

 

  거기다 16세기의 네덜란드와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나 브뢰헬의 그림이 가치가 있는 것은 네덜란드의 풍습을 그대로 드러난 그림 때문이었다. 특히나 재미있게 들여다 본 그림은 <네덜란드의 속담>이었다.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림이어서 처음에는 정신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가가 자주 언급하는 '뒤죽박죽인 세상'에 걸맞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않고 간과하려는 찰나, 그림에 번호를 붙여 속담을 일일이 설명하고 있는 것에 놀라고 말았다. 그림 안에 100개가 넘는 속담이 들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속담을 표현하고자 섬세하게 그린 브뢰헬의 인내와 표현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림을 보면서 속담을 유추하니 그제야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간단히 그릴 수 없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라는 설명에 부합되는 것을 경험했다.

 

  또한 계절을 생생히 재연해 내는 그림도 그렸는데, 풍경 속에 녹아든 평범한 사람들이 푸근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나 농부의 등장이 두드러졌고, 당시에 농부는 대접받지 못한 존재였기에 그의 그림에 등장한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익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브뢰헬에게 자연의 변화를 이렇게 설득력 있게 표현해 낸 화가가 없다고 말하면서, '세계에 대한 철학적 개념에 영향을 받고 자연사 및 하나의 전체로서의 지구에 대한 당대의 관심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 새로운 세계관이 드러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화라는 느낌 때문에 별 특징을 잡아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브뢰헬이 활동했던 시대를 감안한다면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 시대를 표현하는 그림,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으로까지 확대 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브뢰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오래 된 그림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 이외에 독자적인 메시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브뢰헬의 그림과 당시의 배경을 해석해주는 설명을 통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브뢰헬의 생애보다는 그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당시의 생활 풍습이나 중요 사건들을 중점으로 책이 엮어져 있었다. 그림을 통해서 브뢰헬을 내면을 어느 정도 이해해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의 개인적인 생애가 결여되어 있어 조금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의 화가라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면, 브뢰헬이 활동했던 당시의 생생함과 그림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달랑 그림만 보는 것에 부족함을 느낀다면 이런 책들을 통해서 열심히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드는 경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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