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열화당미술문고 213
장소현 지음 / 열화당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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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날씨 탓인지 몸도 쑤시는 것 같고 괜히 눕고만 싶었다. 기분까지 쳐지니 무엇으로 감정을 다스려야 할지 난감했다. 감미로운 음악이 듣고 싶어 뮤직 쿠폰이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피아노 연주곡을 들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곡들이 많아 핸드폰에 몽땅 담고, 그 음악을 다시 들으며 책을 읽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소설책이 오히려 더 감정을 깎아내릴 수 있으므로, 최대한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책을 찾다 모딜리아니 책을 꺼내 들었다. 저자가 쓴 미술문고 시리즈 중에서 마지막 책이라서 그런지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펼쳐들게 되었다.  
 

  수많은 화가들 가운데서도 취향에 맞는 화가들의 그림만을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터라 비슷한 화풍만 좇다, 다른 그림도 보게 되면서 시각의 좁음을 조금씩 넓혀갔다. 그러다보니 이름만 들어본 화가나 그림만 익숙한 작품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한 번쯤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든 화가도 많았지만, 늘 그렇듯 기회가 닿을 때까지 기다리다 마주하고 난 뒤에는 나의 무지를 탓하곤 하다. 모딜리아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의 그림을 좋아할 수 없어서 알기를 거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무관심이 얼마나 이 화가를 오해하고 있었는지 책장을 열자마자 드러나는 사실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저자는 내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너무나 적확히 알려 주었다. '인상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모딜리아니라는 화가는 빛에 대한 무관심, 데생의 명료함, 의도적인 형태의 왜곡 등의 점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거기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인물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 무관심 할 수밖에 없었다. 빈약한 지식으로 모딜리아니라는 화가를 맘대로 판단하기 급급했고, 그의 화풍을 보며 남미 쪽의 화가가 아닐까, 나이가 지극했을 때 그린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36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흔히 모딜리아니라고 하면 술과 마약에 찌든 화가로 판단하고 그의 불행한 삶을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에 대해 무지한 나로써도 그런 얘기를 듣고부터 그의 삶이 방탕한 생활 때문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모딜리아니가 방탕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영위하긴 했지만, 올곧은 성품과 미술에 대한 열정을 내세워 제대로 알아가길 바랐다. 그는 무엇보다 '끈질기게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을 그리고 조각한 작가이다.' '그저 시대적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고집스럽게 지킨 독창적인 작가일 뿐이다.' '그의 목표는 '아름다움과 진실을 통합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상을 확립하는 것'이었다'는 표현을 통해 방탕한 생활상으로 그를 판단하기엔 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술과 마약의 영향을 받고 말고를 따질 수 없다고 했듯이 편견으로 점철된 한 화가를 재조명하거나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알아간 모딜리아니라는 화가는 내가 멋대로 생각했던 화가를 뛰어넘어 순수한 내면을 발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딜리아니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는 이탈리아 고전에 바탕을 두고 했다고 했는데, 스피노자의 후손인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철학적 토론에 익숙한 것이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모딜리아니를 시인 혹은 철학자라고 불렀는데, 어릴 적의 가정환경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미술에 몸담기로 다짐하고 파리로 건너왔을 때는 그런 면모가 많이 소실되어 버렸다. 가난과 타향살이의 외로움, 내적 갈등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이 한 몫 했다.

 

  그의 생활태도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야수파나 표현주의를 그릴 것 같은데, 명확한 선과 형태, 우아한 아름다움 등 지극히 대조적인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란다. 거기다 눈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은 초상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반드시 알고 난 뒤 감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길쭉한 얼굴과 흐리멍덩한 눈이 그려진 그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독창성으로 탄생한 인물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그 무엇'을 명상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그의 그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선명하게 그리는 것과 길쭉한 인물들에 대해서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었다. 치열한 내면의 갈등을 이겨내고 그가 만들어낸 인간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중에서 초상화를 짚고 넘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모딜리아니아의 초상화는 철저하게 인물이 중심이 된(그것도 얼굴) 작품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배우 한 사람만이 달랑 등장하여 펼치는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팽팽함 긴장감'과 '모델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 그것은 마치 '전쟁' 처럼 긴장되는 일이다'라고 했다. 별 특징을 잡아내지 못했던 그의 그림을 생애의 앎과 설명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되어 보이는 것이 느껴져 무척 신비한 기분에 빠져들곤 했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기도 했고,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을 표면화하려 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에 온 열정을 바쳐도 모자를 판에, 그는 여의치 않는 주변 환경에 의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술과 마약, 조각에 대한 열망(실제로 조각에 한 동안 몸담기도 했었다.), 불같은 사랑과 생활고 등 보헤미안의 삶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그에게 죽음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고, 반복되는 생활의 패턴으로 인해 그도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현실을 극복하고 결혼한 잔느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을 때 그는 이탈리아를 그리워하며 삶을 마감한다. 잔느는 그가 죽은 다음 날 만삭의 몸으로 투신자살을 한다. 그의 죽음도 안타까웠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투신해버린 잔느의 죽음도 충격이었다. 그들의 딸 잔느 모딜리아니가 나중에 미술사가가 되어 아버지의 평전을 썼다고 하니 괜히 마음이 찡해진다.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하루 종일 드로잉을 했다던 모딜리아니. 철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그의 짧은 생애가 안타깝지만, 미술에 몸담은 기간 동안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두 했다는 것이 인간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모딜리아니라는 화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그의 그림을 인상파 화가들과 비교하며 보지 않게 되었고(비교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가 남긴 수많은 초상화를 통해서 그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는 국내에서 모딜리아니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 없음에 많이 안타까워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화가에 대해서 많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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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11-03-1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짱이네여!!!!!!!!!!!!!!!!!!!!!!!!!!!!!!!!!!!!!!!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