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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평점 :
철학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정작 아는 것은 없고, 막상 철학에 관한 책이라도 볼라치면 이해가 되지 않아 금방 책을 덮어 버리곤 한다. 문학에 편중되어 있는 독서에 조금이나마 윤활유 역할을 하고자 종종 인문서적을 펼치는데, 마주할 때마다 지식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지식의 한계를 대학 공부를 통해서 조금 채워 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해 그 시도는 실패했지만,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며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요즘에서야 스스로 지식이 채워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단순한 정의임에도 이제야 깨닫는 나는 배움에 있어서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느낀다.
<메두사의 시선>을 마주할 때만 해도 약간의 희망이 있었다. 내가 자신 없어 하는 인문에 관한 책이었지만, 책도 그다지 두껍지 않아 읽어볼만 하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런 마음으로 초반을 읽어 나갈 때는 알듯 말듯 한 난해함 때문에 이 책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한 페이지를 읽을 때도 평소의 독서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오랜시간 정독하며 책을 읽었음에도 여전히 숨이 가파 오른다. 신화와 철학과 과학이 버무려진 이 책은 웬만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완전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지식이 없었을 뿐더러, 철학과 과학에 관해서는 말해 무엇 하리. 한마디로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책임에도 묘한 매력으로 책을 끝까지 놓을 수도 없었다.
인문서적에 관해서는 개인적인 분류가 뒤따른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정독하며 생각하며 읽으면 이해가 되는 책,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책으로 분류한다. <메두사의 시선>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중간에 속한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루에 조금씩 정독하면서 읽어 나갔고, 어떤 날은 저자의 글이 흥미롭게 다가오다가도 어떤 날은 언어의 흩어짐을 경험하기도 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 책을 이해하거나,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읽기였다. 그러나 신화를 바탕으로 철학과 과학을 적절하게 요리할 줄 아는 저자의 역량을 느꼈고, 그 세계가 무한히 뻗어 방대한 범위를 아우르고 있는 것을 깨닫고 놀라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라면 제대로 아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이번 기회를 통해 안다는 의미로 재미있게 접했다. 신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된 메시지를 끄집어 내 다른 학문과 연결 짓는 포용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재미나게 읽던 그리스 신화마저 엉켜들어갔고, 신화에서 뻗어나간 철학과 과학에 대한 저자 나름의 사유까지 이해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먼저 그리스 신화라도 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저자는 신화를 읽으면서 동식물 기록이 담긴 자연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면 재미와 의미가 배가될 것이라고 했다. 둘 모두 변화와 변신의 파노라마를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도 왠지 신화 읽기가 식상하게 느껴질 것 같았는데, 아이들에게는 복잡하게 얽힌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변주곡처럼 들리는 반면, 삶에 틀에 습관화된 의식 때문에 어른들은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어쩌면 나의 내면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원. 결국 신화도, 철학과 과학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건져낸 것이 없다는 허망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이야기가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케케묵은 이야기도 아니고, 밀접하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끌어내는 많은 예시들과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식견은 광활한 우주 가운데 미미한 존재로 자리 잡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내 자신의 존재가치부터, 존재 안에 내포된 수없이 뻗어나가는 의미와 가능성을 조명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 글의 특징상 많은 인용문이 들어가고 주석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인용문을 그렇다 치더라도 주석을 배제한 채, 부록으로 설명을 덧붙여서 읽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책에 주석까지 주르륵 달려 있었다면, 안 그래도 글이 어려워 쭉쭉 읽지 못하는데 주석을 읽느라 지쳐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철학 에세이라고 말하면서 지식으로 쓰는 글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지식이 없는 내가 읽는데 힘이 들었는지 몰라도, '사건의 역사'의 서술을 하지 않고 저자가 의도한 글쓰기로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그것을 '역사'를 쓰는 한 방법일 수 있다고 했고, 세계에 대한 관심, 개념, 분석, 유비, 은유 등으로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성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었고 핵심 메시지다. 통째로 아우르지 못하고, 글쓰기의 방법에서 헤매버려 저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통감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난 덕에 아주 미미하게나마 이런 책을 소화해 나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인문학의 매력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게 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언젠가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넣어 리뷰를 쓸 날을 기대해보며, 힘겨웠지만 흥미로웠던 <메두사의 시선>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