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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인형의 집 - 마법 같은 작은 세상
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제이 폴 사진 / 윌북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집에 오자마자 청소, 빨래,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 등등 대대적인 집 청소를 했다. 몸이 휘청거릴 만큼 힘들었음에도 되돌아보니 깨끗해진 집 때문에 마음이 뿌듯해졌다(곧 조카 네 명이 집안을 휩쓸고 돌아다녔지만.). 내 방으로 돌아와 책 정리를 간단하게 한 후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을 켜봤자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밖에 둘러 볼 곳이 없기에 바로 컴퓨터를 끄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내 블로그 음악이 나를 이끌었다. 잔잔한 피아노곡들로 이루어진 배경음악을 듣고 있자니 그제야 쌓였던 피로가 풀어진 듯 했다. 내친김에 이런 분위기에서 책이나 읽자 해서 꺼낸 책이 오늘 도착한 <타샤 튜더, 인형의 집>이었다. 출간 소식을 좀 늦게 알아 이제야 내 책장으로 들인 책인데, 지금 분위기에서 펼치면 제격일 것 같았다.
나의 예감을 꿰뚫듯, 오랜만에 찾아온 타샤 할머니의 책은 고적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귀에 감기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차분해지는 마음을 향해 타샤 할머니의 손길이 묻어 있는 인형들의 세상이 들어왔다. 타샤 할머니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에 관해 조금만 관심 있는 독자라면, 타샤 할머니가 만든 인형의 세계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워낙 다방면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재주가 있는 타샤 할머니라서, 이렇게 분권으로 책이 나올 정도다. 타샤 할머니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거니와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상상하지 못한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음에 놀랄 것이다.
타샤 할머니는 어릴 때 엄마로부터 선물 받은 인형을 통해 작고 오밀조밀한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타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인형을 통해 자녀들과 함께 많은 추억을 쌓았음은 물론,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도 교감이 되었다. 타샤 할머니는 정교하기 짝이 없는 인형들의 세계를 즐겁기 때문에 만들어 갔다고 했는데,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예술적인 가치가 충분해 보였다. 남자 인형 새디어스를 만들고, 여자 인형 멜리사를 만든 후 결혼을 시키면서 또 다른 세계의 포문을 열었다. 인형들의 결혼식은 <라이프>지에 실릴 만큼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인형의 집 안주인은 엠마다. 엠마라는 인형을 만들고 나서 돌하우스의 안주인이 바뀐 것이다. 타샤 할머니의 분신이라고 해도 될 만큼 쏙 빼닮은 엠마는, 타샤 할머니의 결혼생활에 대한 안타까움과 소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이 찡해지기도 했다.
타샤 할머니는 네 자녀를 두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진 못했다. 사랑 없는 결혼을 했고, 이혼을 한 뒤 혼자서 네 자녀를 훌륭하게 길러냈다. 그래서인지 멜리사가 안주인에서 물러난 것도 타샤 할머니의 분신인 엠마가 새디어스와 행복하게 지내는 것에서 타샤 할머니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타샤 할머니에게 남편의 빈자리가 흠으로 보일 정도로 자신의 독특한 삶에 매료되어 살아왔다. 엠마와 새디어스를 통해서 결혼생활의 행복을 갈망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인형들의 세계임에도 타샤 할머니는 현실을 반영한 또 다른 세계의 이면을 보여준 셈이었다.
인형들의 집을 보고 있노라면 저것이 실재인지, 미니어처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그만큼 타샤 할머니의 손길이 묻어난 작은 세계는 철저히 타샤 할머니의 집과 취향을 반영한 것이었고, 타샤 할머니의 손길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간 결과였다. 엠마와 새디어스가 생활하고 있는 집은 코기 코티지를 축소해 놓은 것이었다. 부엌, 침실, 서재, 염소 헛간 등 코기 코티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의 집은 타샤 할머니의 단순한 취미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애정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을 것이고, 완벽한 인형의 집이 탄생하기까지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인형의 집의 살림살이 하나하나를 꼼꼼히 둘러보면서 감탄밖에 터트릴 것이 없었다. 또 인형들의 세계지만 무척 행복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에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엠마와 새디어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기자기 하면서도 장인들의 정성이 빚어낸 분위기는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타샤 할머니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인형의 집으로 새로 태어난 또 다른 세계는 그렇게 깊은 감동을 자아냈다. 타샤 할머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넘쳤기에 이런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샤 튜더, 인형의 집>을 다 둘러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평소의 속도라면 더 빨리 읽어버릴 수 있었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타샤 할머니의 흔적을 대충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책을 읽어 나갔고, 인형의 집을 구경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했다. 그 세계에서 엠마와 새디어스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길 진심으로 바랐다. 타샤 할머니는 더 이상 뵐 수 없지만, 할머니의 흔적이 배어있는 인형의 집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색다른 세계를 열어주었으면 했다. 늘 그렇듯, 타샤 할머니의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그래도 타샤 할머니가 남겨준 흔적을 이렇게나마 조우할 수 있으니 그것에 감사하면서, 오늘 밤에는 인형의 세계의 행복감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