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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할 말이 많아진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거의 등산과 다름없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도대체 도서관을 이용하라는 건지, 올 테면 와보라는 심산인지 한 번 오를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곤 한다. 최근 들어 도서관 옆에 18층 아파트가 들어섰는데도 3층인 도서관이 더 높은 것을 보고, 또한번 도서관의 위치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리적인 위치와 접근성에 있어서는 많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게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에 대한 평가다. 지방 소도시의 도서관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세워질 도서관에 대해서는 도서관과 시민이 친해지게 만들어주는 노력이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늘 간절하게 일곤 한다.
도서관의 지리적인 위치와 내 방에 소장된 책들 때문에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새삼스레 다시 도서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세계 도서관 기행>이란 책 때문이었다. 책을 펼쳐들기 전까지 세계의 멋진 도서관의 경관을 중점으로 다룬 책이라 생각했었다. 각 나라의 도서관의 독특한 풍경들을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한 오산이었다. 현재 국회도서관 관장직을 맡고 있는 저자는 세계의 도서관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을 최선을 다해 전해주었다. 세계의 도서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명 깊게 다가온 적이 없을 정도로, 각 나라의 역사가 들어있는 도서관을 둘러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 마주한 도서관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 이 도서관의 탄생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었다. 건물부터 보관하고 있는 장서의 양까지 방대하기 그지없는 이 도서관은 역사의 한 토막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성경을 통해 배웠던 인물들의 등장과 에피소드를 도서관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인지 첫 만남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 저자가 여행한 도서관의 순서는 책의 순서와 좀 다르지만, 이집트를 거쳐 유럽의 도서관을 향해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거치는 여정이었다. 대륙별로 구분을 해 놓아서인지 동선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졌고, 각 나라별의 도서관의 특징을 비교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집트,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중국 등 대표적인 도서관을 보면서 느낀 점은 크기부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었다. 열람실 위주의 국내의 도서관과는 달리, 희귀본부터 각 나라의 중요 문헌까지 훑어볼 수 있는 자료의 양은 숫자로 표기 해줘도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만큼 도서관이라는 장소는 단순하게 지식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책을 빌리고, 공부하러 간다는 개념을 떠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혀 있는 도서관이라는 위치가 생각보다 큰 것에 놀랐다. 각 나라의 유명 인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인생을 배우고, 현재의 위치를 만들어 준 곳이 도서관이었다는 자랑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도서관이 단순히 책이 소장 되어 있는 곳의 의미로만 생각되어 지지 않았다.
또 다른 특징은 나라의 고위 지도자들이 도서관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 도서관의 질이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과연 저런 곳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포근한 분위기의 건축물들이 많았다. 물론 그 나라의 도서관이 다 그렇게 생겼다는 것도 아니고, 대표적인 도서관을 소개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서관에 대해 그런 애정을 쏟는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수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며, 세계에 펼쳐진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겉과 속이 모두 꽉 찬 도서관들을 보면서 직접 가서 구경하고 싶어 괜히 몸부림이 쳐졌다.
저자는 서문에 국내 최초로 러시아 도서관을 조명했다는 것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동안 러시아 도서관에 관한 소개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의 도서관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설렜다. 이 책에서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는 러시아 도서관은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위용을 자랑하는 도서관이 여럿 되었다. 19세기 세계 문학을 이끌었던 쟁쟁한 작가들이 대거 배출된 나라인 만큼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에 관한 애정이 남달랐다. 예술도서관이 있는 것이 독특했고, 모스크바 대학과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이 도서관을 비롯해 유명인사 배출과 대학의 우수함을 자랑하며 경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좋아해서인지 러시아 도서관에 관한 소개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 같다. 도스또예프스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고, 톨스토이의 문학이 나와 잘 맞지 않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예술적인 면모와 정치사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도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도서관 기행이라고 해서 단순하게 건물을 둘러보고, 장서를 파악하며, 어떤 희귀본이 있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에 도서관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애정을 쏟고, 지식을 채워가는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마치 세계사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듯, 도서관에서는 지나온 역사가 저장되어 있었고, 앞으로 다가올 역사에 대해서도 차곡차곡 정보를 쌓아가고 있었다.
이렇듯 도서관을 둘러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고, 국내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으며 어떠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비교할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국내에도 조금씩 움트고 있는 도서관에 관한 관심이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게 했고, 소외된 자들에게도 지식을 나눌 수 있는 도서관이 많아지길 진정으로 바랐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여러 나라에 퍼져 있는 우리의 귀중한 고서들이었다. 약탈과 빼돌림 등 여러 경유로 흩어진 귀중한 서적들은 세계 각국에 퍼져 있었고, 그것들을 다시 되찾아 오기란 무척 힘들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본과 프랑스에 흘러들어간 서적들이 가장 안타까웠고, 국보급의 책들이 그런 과정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씁쓸했다.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은 나라가 없듯이, 어느 나라나 그런 고충은 잠재해 있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 그 나라의 책들과 문자와 언어를 가장 먼저 없애려는 것처럼, 그런 노력까지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는 저런 도서관이 없다는 것과 내 주변에 훌륭한 도서관이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하지만 도서관 구경에서 끝나지 않고 그 나라의 흔적을 둘러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흥미롭고 뿌듯한 경험이었다. 도서관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고 지식을 갈구한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장서 수는 1.18권이라고 한다. 내 방에 쌓여 있는 책들이 1인당 장서수를 늘려주길 바랐고,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라고 더 이상 한숨짓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지식을 탐하는 순간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이고 있다. 작은 행위로 인해 보이지 않는 지식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