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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 - 박수현 교육소설
박수현 지음 / 다산에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세 친구>가 도착하자 책장에 꽂을 겨를도 없이 바로 펼쳐 들었다. 성장소설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겉표지와 제목을 보고 있자니, 괜히 흐뭇하면서도 '교육소설'이라는 문구에 경계태세를 갖췄다. 내 맘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인데, 거기다 교육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니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재미는 재미대로 못 느끼고, 교훈은 교훈대로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앞선 걱정이었다. 그래도 소설이 주는 매력을 거부할 수 없어 '교육소설'이라는 문구를 배제하고 책을 펼쳐 들었고, 한 호흡에 책을 읽어 버렸다.
책을 읽고 나서 주인공인 인서, 창희, 정우와 같은 학년인 조카에게 책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 중 2가 된 조카에게 거창한 말을 건네며 책을 주기보다 책을 읽고 스스로 느껴가도록 유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성장 중인 조카에게 분명 유익한 소설이 될 거라는 생각과 함께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을 건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 친구>를 읽고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고, 책을 덮은 후에도 책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자잘한 사건들, 그 안에서 오고간 대화, 조금씩 느껴가고 실천해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애 어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갑작스런 시련이 닥치면 누구나 마음의 방어벽을 치게 마련이고 방황하고 된다. 특히나 성장 중인 아이들에게 어른조차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치면 평생 마음의 상처를 갖게 된다는 것을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중학교 2학년인 인서에게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과 엄마와의 헤어짐, 이모와 함께 살게 된 환경들이 기꺼울 리 없었다. 이 상처가 풀리지 않는다면, 인서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란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 사랑했던 아빠를 잃었다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엄마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버렸고, 친하지도 않은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러웠고, 자신에게 닥친 변화가 너무나 버거웠다.
이모 집으로 옮기던 날, 이모는 인서에게 자잘한 규칙들을 알려주면서 아무리 곤란한 이야기라도 털어놓으면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다. 이모에게 손만 뻗으면 인서의 마음을 풀어 놓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인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더 감추고 움츠러들고 싶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조차 그렇게 허망하게 외국으로 떠나 버린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인서의 곁에는 모범생인 정우와 뚱뚱하고 잠만 자는 창희가 있었다. 그 친구들에게 조금 기대면 좋으련만. 인서의 틀어져 버린 마음은 그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기 급급했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정우에게 오토바이를 훔쳐서 타자는 제안을 하고, 인서를 생각해서 정우는 실행에 옮긴다. 그러다 오토바이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되자 정우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가출을 해 버린다.
잠만 자고 먹을 것만 밝히는 창희는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음에도, 인서는 그런 창희를 자신의 짜증으로 상처를 준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꼬이고 얽혀 들어갈 때,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협박 문자를 보내 자신을 찾아온 정우를 데리고 이모에게 자초지종을 말한다. 이모는 인서와 정우가 일주일동안 고민한 일을 몇 시간 만에 해결해줬고, 그때부터 조금씩 인서의 마음에는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을 내미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 현재가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며 알아가려는 기미가 보였다.
인서에게 이모의 존재는 그때부터 새롭게 두각을 드러낸다. 인서가 삶에 대해, 고통에 대해 질문을 할 때도 차분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인서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면 언제든지 도움을 주었다. 인서는 그동안 이모가 자신을 방치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모는 인서가 스스로 느끼고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었다. 엉망인 자신의 방을 이모와 함께 치우며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인도에 있는 아빠가 후원했다는 아이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습관에 대해 중요한 이치를 깨달은 것도, 엄마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고 이해하게 된 것도 이모 덕분이었다. 정우와 창희를 통해서 사회의 따뜻함과 팍팍함도 경험하게 된다. 창희한테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상처를 주고 제대로 사과조차 못했는데도, 창희는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할머니와 손자를 돕게 된다.
그 일에 동참하게 하게 되면서 알바도 해보고,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돕고, 꼭 돈이 아니더라도 도울 수 있다는 방법을 알게 되며, 사이가 나빴던 창희와 정우도 사이가 좋아진다. 세 아이는 사건을 통해 경험하게 되고, 경험을 통한 깨달음으로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을 메워가기 시작한다. 모범생인 정우는 즐겁게 공부하는 방법을 인서에게 배우고, 창희는 정우를 통해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인서는 두 친구들과 이모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고통에 찬 현실을 극복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모가 정말 힘들었을 때, 자신을 사랑하기로 한 다음에 다시 일어섰다고 했던 것처럼, 인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높여 가면서 서서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간 되었다고 한다. <습관>도 중요한 교훈이 되어 주었지만, 한정된 제목으로 가두기에는 너무 많은 교훈이 들어 있어 <세 친구>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아이들이 깨달은 것을 실천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 스스로 내딛는 모습을 보며 어른이면서도 많이 부끄러웠다. 하나의 습관을 들이지도 못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며,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모습이 현재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것도, 교육소설이라는 타이틀도 나를 들여다보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나아가는 것처럼, 내가 가진 꿈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용기를 안겨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