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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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제목에 마음이 끌렸으면서도 몇 장 떠들러 보고는 책을 도로 덮어 버렸다. 도무지 저자의 문체에 적응할 수가 없어서였다. 쉰을 넘긴 저자는 고등학교 때 독일로 이주한 건축가로 대전 엑스포 때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가정주부로써 독특한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소개가 독일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는 독일인 남편과 아들과 딸을 간략한 소개와 함께 책의 포문을 열었는데, 평범하지만 비범한 무언가가 엿보였다. 그런 엿보임에 응하듯 가족의 생활방식을 풀어냈는데, 순수한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문체가 낯설어 책을 덮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책을 방치하다 이 책에 관심을 보인 지인을 만나면서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다. 내가 문체가 낯설고 젠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했더니, 교포라서 그런 것 같다고 적응하면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독일로 건너간 지 30년이 넘었는데, 내 입맛에 맞는 문체를 기대했던 것이 욕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하고 지인이 충고를 받아들여 문체에 대한 곤두섬을 자제시켰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책이 술술 잘 익혔고, 문체에 감춰졌던 글의 본질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 첫 단락을 읽으면서, 이 책의 내용이 끝까지 그런 형식으로 이어질 거라는 섣부른 판단이 본질을 흐리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독특한 가족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젠체한다고, 너무 드러낸다고 괜히 트집을 잡았다. 책의 끝까지 그 문체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사소한 것을 무시하니 책의 진가가 드러났다. 저자는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고, 독특한 시선으로 보자면 정말 독특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 기준이 모호하기에 각자가 느끼는 느낌대로 판단해 나가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될 것 같았다.

 

  첫 단락에서는 저자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 각각의 삶과 한데 어우어지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살기도 하는구나!'란 감탄이 아닌, 트집을 잡다 책을 덮어 버린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 가족을 바라보면 이해 못할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성격은 달라도 이상(理想)이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이 어떠한 지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보여주었다. 최대한 자원을 아끼기 위해 집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궁상을 떤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딱히 나빠 보이지도 않고 스스로가 만족해하는 일상을 보며 관찰자의 입장을 지키기로 했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아이의 교육에 대한 글들이 나온다.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어떤 사례가 있었으며, 어떠한 결과를 나았는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살고 있으니 독일의 교육과 우리나라의 교육을 비교하면서 차이점을 밝히고, 한계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자식자랑 하면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저자 또한 자랑을 안 하는 척 하면서 은근히 자랑을 하는 것을 보며 또 트집을 잡고 싶었다. 자기가 격은 것을 드러내려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자랑 이면에는 부모의 노력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내가 참견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다음에 내게 아이가 생기면 참고하고 싶은 교육법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둘 정도였다.

 

  세 번째 단락을 읽고서야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잘했노라고(더 이상 문체에 거슬려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독일이라고 하면 히틀러의 집권당시의 나치 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독일 내에서는 '나치'라는 단어가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점에서, 독일에 상주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나치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개인의 의견일 수밖에 없고,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독일인들의 많은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태인 학살에 대한 늘어뜨림보다 그 이후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어떠했는지,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는 역사의 과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학살에 대한 기억만으로 독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과오를 딛고 일어서려는 독일을 지켜볼 수 있어 약간의 편견을 벗을 수 있었다. 저자가 독일에 살고 있어 좀 더 의식이 편중된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국민들의 의식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독일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거기에서 사유를 그치는 것이 아닌, 일본과 우리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부분도 경각심을 깨쳐 주었다. 독일과 비교하면서 일본은 역사 청산을 하지 않는다고 늘 목소리를 높이지만, 독일에서 만난 일본기자와의 에피소드로 인해 한 역사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느끼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비교적 차분하게 독일의 일례를 들어가며 일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우호적인 해결책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내 놓기도 했다.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면서 그동안 시사에 너무 무관심 했다는 생각과 함께 저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다양한 시선을 가진 한 인간의 모습으로, 너무 솔직한 그녀의 생각을 듣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쩌면 오래도록 책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한 권의 책은 지인의 관심으로 인해 깨어나게 되었고, 첫 이미지와는 다른 우호적인 만남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다행이며, 첫 느낌으로 한 권의 책을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삶을 무척이나 사랑하며, 가족의 안위와 행복 또한 끔찍히 여기는 저자를 통해 너무나 다양한 인생을 맛본 기분이다. 가족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만큼,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안에도 주제가 많이 갈리기에 가족 안에서만 의의를 두며 틀에 가두지 않으려 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나의 시각이 한껏 넓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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