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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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라는 조직이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대도,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의미로 다가오면 괜히 멀게 느껴진다. 처음 <괴짜 사회학>의 책 제목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괴짜라는 단어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긴장을 늦출 수 있었지만, 사회학의 전체적인 느낌은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아마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한다는 생각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겨우 책 소개를 보고 나서 긴장감을 풀 수 있었고, 저자의 독특한 연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회학이라고 해서 연구실에서 행해지고 그 안에서 발견 된 것들을 읊어 댈 거라 생각했는데, 저자는 그 모든 것을 과감히 떨친 후 최악의 빈민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인연은 이후로 10년 동안 계속 된다.

 

  저자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사회학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 만큼, 사회의 현상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며 고전적인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한 개인의 선택은 어떻게 발전되는가?','인간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저자는 호기심이 꿈틀거렸다고 한다. 실제로도 사회학 분야는 '양적·통계학적 기법을 이용하는 입장과 흔히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삶을 연구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저자는 후자를 선택하고 연구에 임했다. 대학원 1년 차에 도시 빈곤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평소에 관심 있었던 대학부근의, 시카고에 있는 미국 최악의 빈민가인 로버트 테일러 홈스로 들어간다.

 

  거기서 저자는 대학원생 초보티를 팍팍 내는 질문을 쏟아내 비웃음을 샀고, 농축 코카인을 파는 블랙 킹스 보스인 제이티를 만나게 된다. 그들의 만남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이 서로에게 깊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대학에서 공부까지 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회활동의 한계에 맛본 후 빈민가에서 마약을 파는 제이티와 사회학을 공부하는 저자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그 만남으로 인해 저자가 연구하는 학문과 제이티가 속한 조직이 무언가를 새롭게 이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가 10년 동안의 경험을 기록한 이 책을 읽어가면서 무엇을 정의하려 하거나 결론을 내리기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말 그대로 '기록'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딱딱한 용어들의 나열과 사람들을 관찰하며 발견된 것들을 지지부진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 한 편의 소설처럼 모험담처럼 펼쳐지는 기록은 걸러지지 않은 채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었다.

 

  저자가 처음 과제를 위해 조사를 나갔을 당시에 그렇게 오랫동안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제이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생활이 지속될 수 있었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이티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고, 저자 또한 제이티의 삶과 그곳의 일상이 궁금했기에 일련의 묵인 하에 만남이 지속될 수 있었다. 제이티는 저자가 사회학도의 입장에서 자신의 삶이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전기문을 쓰는 것으로 착각했다. 저자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차마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고 대신 그곳에서 경험한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해 나간다.

 

  로버트 테일러 홈스는 그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구급차와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는 곳, 사회적인 혜택은커녕 오히려 갱단이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며 생활을 영위해 가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그곳의 사람들이 정의감으로 불타올라 서로를 돕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위계질서가 있었다. 그곳의 보스는 제이티였고, 그 아래 수많은 갱단 조직원들에 의해서 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 관리 되며 어느 정도의 상납이 이루어졌다. 그 안에서는 마약 거래, 매춘, 도박, 장물 매매 등 불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든 것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런 불법행위들이 경찰과 국가에 의해 제어 된다는 것은 꿈꿀 수도 없었고, 불법 행위로 인한 자본이 형성되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보통의 상식이 통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은 꿈꿀 수도 없는 곳이 바로 로버트 테일러 홈즈였다.

 

  저자는 그곳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많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제이티 대신 일일 보스가 되어 보기도 하고, 보스들의 모임에도 가보며, 총격전의 현장에도 있었고, 제이티의 영역 안에 있지만 또 다른 권력이 행해지고 있는 베일리 부인의 동네에서도 생활하게 된다. 그곳의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중립적인 입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모두 기록해야 했기에 저자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지만 공유되지 않는 사적인 정보들이 저자에 의해 제이티에게 알려지면서, 다른 사람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그 경험을 통해 약자에 속한 자들과 그 위에 군림한 권력자들의 생활이 어떻게 엉켜 가는지를 철저히 지켜보게 되었다. 저자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들과 함께했지만, 그 상황을 어찌할 수 없었고, 그곳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요 관찰자일 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의 연구가 끝이 보일수록 처음 시작과는 다르게 조금씩 시들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담담하게 기록해 갔지만, 그곳의 생활을 알아 가면 갈수록 처참한 환경만 드러난다는 사실 때문에 무언가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저자가 이제는 그곳을 떠나야하며, 그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카코 주택공사에 의해 그곳이 철거되는 것으로 저자의 연구도, 그들의 만남도 끝이 났다. 오랫동안 그곳이 삶의 터전인 냥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고, 교수직을 얻은 저자도 그곳을 떠났다. 종종 제이티를 만나긴 하지만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조금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자신의 인생에 제이티가 큰 의미로 다가온 만큼 제이티도 그렇게 느낄 것이라는 말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제이티도 언제까지 갱단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을 것이고, 저자도 새롭게 주어진 삶에 충실할 것이므로 예정된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저자가 전통과 관습을 깨고 과감히 빈민가에 들어가 10년 동안 경험한 것은 단순한 자료의 의미만으로는 남지 않을 것이다. 이 기록을 통해서 현장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음은 물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소외 받는 사람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가 나름대로 일궈놓은 이 자료를 통해서 사회학자뿐만이 아니라 정부와 같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관심을 보여야 하는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 사람들에게 순간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삶의 방향을 전환시켜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들을 방치하는 순간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은 균형을 잃어갈 것이며,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상은 앞으로도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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