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입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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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되뇐다. 괜찮다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최면을 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친 마음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이 조금만 멀리 물러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말 그대로 소망일뿐이기에, 시간마다 나 자신을 다독여본다. 이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사람이 힘이 들면 그것을 펼치기보다 더 안으로 들어가기 마련인데 현재의 나도 그렇다. 평소에 즐겨하던 자질구레한 소일거리도 흥미를 잃었고, 어떤 것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활자를 읽기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무조건 시간만 때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독서도 시들해질 무렵, 리뷰를 남기기 위해 이미 읽은 <축복>을 꺼내 들었다. 책을 들춰봐야 기억을 더듬을 수 있기에, 다시 읽는 다기 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메모지를 붙여 놓은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게 되었고, 아무 방어도 하지 않은 채 내 마음을 툭 건드려 버리는 시들을 만나고 말았다. 이미 읽은 책이기에 별 생각 없이 펼쳤을 뿐인데, 무심코 펼친 책에서 위로를 얻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이 다친 뒤라서 그런지 읽을 당시에는 큰 감흥 없이 만났던 시들이 나를 한없이 파고들었다. 마치 나의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어루만져주고 힘을 주는 시들에 한없이 무너져 내렸을 뿐이다.

 

  저자는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던 중, 몸이 아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영미시 연재를 중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희망적인 시들을 많이 고르게 된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떠오르면서, 비로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당장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데,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혹은 타인을 위로하고자 희망적인 메시지를 고른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도 녹록치 않다. 저자 또한 목전에 둔 치료의 고통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를 계속 해 나갔다는 사실이 대단했다. 그렇게 연재한 시들이 위로가 될 거라는 희망이, 타인을 거쳐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내게도 닿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생일>에 이어 그동안 이름만 들어온 시인들의 시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반가웠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아 시의 내용은 전혀 모른 채, 시인과 제목만 기억하고 있던 시들을 직접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유명세에 비해 나에게 감흥을 일으키지 않은 시들도 있었고, 명성답게 마음을 움직이는 시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희망의 다양함이 고루 퍼져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준비를 마친 시들 같았다. <축복>의 제목의 이면에는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희망입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단순하게 희망만 잔뜩 노래하는 시들로 채워졌다면, 아마 금세 시들해졌을 지도 모른다. 삶의 다양한 굴레를 드러내는 시들을 보며, 왜 희망이 축복일 수밖에 없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생일>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부분에만 원문을 참고했고, 번역된 시와 저자의 짤막한 해설, 김점선 화백의 그림을 만끽했다. 그 어울림만으로도 시는 충분히 내게 와 닿았고, 희망이라는 싹이 이렇게 곳곳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희망을 토로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좋은 구절은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 책상머리에 써 붙여 놓고 싶은 시들을 만날 때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시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두려움도, 특히나 영미시에 대한 이질감 때문에 가까이 하지 못했다는 낯섦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문학의 한 가운데 존재했던 사람들이 써 내려간 '희망'으로 결속된 시는 앞으로 내가 살아내야 할 삶에 대한 감사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나의 다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던 시는 에드거 A. 게스트의 <끝까지 해보라>란 시였다. 특히나 '네가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을 때/희망조차 소용없어 보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다른 이들도 모두 겪은 일일 뿐이다.' 라는 부분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왈칵 눈물이 나게 하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시였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마주한 시가 현재의 내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읽을 당시보다 지금이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그렇게 메모지를 붙여 놓은 시들을 다시 훑어보며, 복잡한 나의 마음을 잠시 잊은 채 시가 주는 위로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문학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조금만 손을 뻗으면 나를 다독여 줄 거리가 많다는 것 또한 깨닫는 경험이었다. 마음이 다쳤을 때는 모든 것이 민감하게 작용한다. 그럴 때 시를 만났고, 시로 위로받고 희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없는 감사가 인다.

 

 

오탈자

 

5쪽 12째 줄

 

골랐나 봐요. - 문장부호 ”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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