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뭉크 - 미술문고 208
장소현 / 열화당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이 도착했다. 저자의 이름은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의 작품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했던 내가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뭉크 때문이었다. 불현듯 책장을 뒤적거리다 꺼내들었는데, 2년 전 한 온라인 서점에서 창고 대방출 할 때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한 책이었다. 먼지를 탈탈 털고 읽고 보니,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뿌듯함보다 내용의 충실함에 만족하게 된 책이었다. 같은 시리즈의 <툴루즈-로트렉>을 읽고 나서, 저자와 시리즈의 구성에 반했는데 더 많은 시리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뭉크에 관해서 별반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화가여서 그런지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유명한 몇몇 작품만 보고 암울할거라는 생각으로 더 알기를 거부했던 화가에 속했다. 겉표지의 <절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나 또한 이 그림의 분위기만 보고 '암울함'으로 그를 덧입혔다. 화풍을 보고 뭉크의 작품을 추측할 뿐, 더 이상 그의 작품도 그의 삶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책으로 뭉크를 알기를 원했고, 그의 그림에 녹아든 삶의 이면을 알고 싶었다. 책이 작아 많은 내용이 들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펼친 책이었는데 기대이상의 결과를 만났다.

 

  뭉크의 대표작을 살펴보더라도, 어둡고 음산하고 죽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뭉크의 그림속의 색감이 무조건 어둡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첫인상은 밝거나 쾌활한 이미지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어두운 감정이 가득 들어찬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저자는 '뭉크의 예술에 있어서 색채가 갖는 의미는 '색채의 서정시인' 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면세계의 핵심은 극명하게 표현하는 데에서는 색채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며, 색채가 있는 그대로의 현상세계이기 때문에 사물을 흑백으로 환원시키면 단숨에 사물의 의미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예로 뭉크의 판화를 들었는데, 지금껏 색채로 인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생각했던 뭉크의 그림들이 '사물의 의미에 도달하는 경험'을 나 또한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에 죽음과 슬픔, 고통이 들어찬 작품들이 많은 것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한 그에게는 죽음이 주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삶에서나 예술 세계에서나 죽음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죽음을 통해 생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뭉크의 삶의 방식이요 예술의 원천이었다.' 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죽음이 주는 이미지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나, 뭉크 안에 내재된 죽음의 무게와 의미를 이해하고 나니 그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이미지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 안에 잠식해 있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것, 그것으로 인해 인생을 차지하고 있는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뭉크가 가진 사명이었다.

 

  지금은 뭉크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뭉크가 활동할 당시만 해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전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을 알렸으나, 그에 따른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그의 작품에 찬사를 던지는 사람은 적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의 작품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베를린을(베를린에서 보낸 기간 동안 그의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다.) 비롯해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 전시회를 갖으면서 그는 더 유명해졌으나, 유명세는 꼭 긍정적인 결과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낯 뜨거운 비판이 늘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지만, 뭉크는 꿋꿋하게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그림을 그리고자 했는지 내면과 함께 어우러지는 그림을 대조해서 볼 수 있어, 그를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느낌이다.

 

  <불안의 개념>을 구입하게 된 것은 뭉크가 키에르케고르의 작품 가운데서 여러 번 읽은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다고 해서였다. 그의 삶을 돌아볼 때, 죽음이 늘 그의 내면에 잠식해 있듯 불안도 어둠 속에서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키에르케고르의 저서를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영감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내면에 동참하고자 구입하긴 했으나,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뭉크를 알고, 그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작품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본 시간은 무척 소중했다.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새롭게 알았던 사실들이 산산이 흩어지더라도, 뭉크라는 화가는 더 이상 음산하며 암울한 화가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얻은 셈이다. 어느 작가가 뭉크의 그림을 보며 "평소에 집에 걸어 놓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일상을 떠나 내적으로 의식을 집중시키려 할 때 살며시 꺼내 음미하게 되는 그림" 이라고 했다. 뭉크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서 알고 나니, 종종 그의 작품을 꺼내 음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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