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새벽 2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각, 당신이 있어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한없이 벅차오르는 가슴을 가눌 길이 없어, 지금 당장 이 문자를 보지 못할 것임을 앎에도 전송 버튼을 눌렀다. 눈가를 훔치며 보낸 문자라서 그런지 괜히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 존재에 대해 한없는 애정이 샘솟았다. 청승맞다고 해도 좋을 행동을 하게 된 것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독특한 제목의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이라는 책을 읽은 뒤였다.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데서 오는 거리감을 충분히 좁혀주었고, 어디선가 대필을 하며 하루를 일으키고 있을 한 남자가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한 남자의 일생과 슬픔을 느껴버려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단조롭고 덤덤하게 이어지는 남자의 일상과 추억의 추켜올려짐은 여기저기 얽혀 있었다. 중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와 추억 속에 존재하는 남자는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도 같은 인물로 보기 힘들었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른들에게도 유년시절이 있고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듯, 중년에 머무른 한 남자의 현재와 과거의 회상의 연결을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시작에 등장한 남자의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는,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대필을 하며, 자잘한 원고를 쓰는 주인공은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과 일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심심하게 다가왔으면서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어, 시작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그를 바라보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분주하게 마음을 놀리면서도 일상을 덤덤하게 이겨내고 있는 주인공의 독백이 길어지면 그의 실체를 모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실체를 가뿐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도시의 구석에 웅크리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평범함을 엿보고 싶었다.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겠다 싶은 조짐이 보였던 것은 독특한 의뢰인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기억하지 못하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써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찾아온 노인이 있었다. 범상치 않은 노인의 등장에 주인공이 그의 이야기를 소설화함으로써 무언가 이변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노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도 한 남자의 흔적을 좇아 소설을 써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인물과 인물이 좀 더 또렷한 양상을 띠지 못하고 사그라진 것이 아쉬웠다.

 

  그의 일상을 좇으면서도 의뢰인들에 의해 그의 지난한 삶이 뒤바뀔 거라며 무작정 기대를 걸었다. 소설이므로 그 정도의 기대를 해도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각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필을 업으로 삼고 있긴 하나, 도리어 직업을 빌미로 자신의 인생을 대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중언부언 털어놓고 있었지만, 글이 아닌 생각의 언저리에 머무는 것들이라 대필 업의 주인이자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혼자서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며,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쓰는지, 살아온 날들을 불쑥 떠오른 회상들로 대체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남의 인생의 글만 써주면서 느끼는 자괴감이 느껴져서가 아니라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충분히 자신의 삶을 말했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빈자리, 유년시절의 추억, 가족의 이야기, 시골에서 살았던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온 힘을 다해 그리움을 말하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생활과 위치에서 서서히 아래로 훑고 지나가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향해 추억을 반추하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물큰하게 전해지고 있어, 새벽 2시가 가까워져 가는 시각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조금씩 드러내는가 싶더니, 아내와 함께 한 세월을 모두 곱씹었다. 주인공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아내를 잃은 슬픔은 더 진해졌고, 그 기억과 맞물리거나 연관 없는 주인공만의 기억들도 함께 들추어졌다. 기억의 근본바탕은 슬픔과 그리움이었다. 유년시절의 추억들을 드러낼 때도 마찬가지였고, 아내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아내와의 추억이 묻어난 곳에서 아내를 떠올리는 남자, 원래 아내가 없었던 듯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그 남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슬픔이 전이되어 전혀 다른 성격의 눈물을 훔치곤 했다.

 

  남자의 직업이 대필하는 것이어서인지 글에 관한 내용도 자주 언급되어 또 다른 흥미를 일으켰다. 소설 안에 쓰인 대필할 때의 방법들이 드러나 있어 글쓰기에 참고해도 될 듯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 그냥 한 남자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한 그 남자의 앞날이 지금과는 다르게 평이하게 흘러간다는 보장이 있었으면 얼마나 다행스러웠을까. 남자가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동네에 아내와의 추억이 많이 묻어 있었고, 조금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내에 부응하듯 남자의 눈에는 죽은 사람들이 보였다. 죽은 사람의 모습은 그 동네에서만 보였고, 소설의 끝자락에서는 죽은 이들과의 조우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시 속에 머무르고 있는 고독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려도 되는 걸까? 그렇게 지나쳐버리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 우리의 내면에도 그런 아픔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함에도 제대로 된 교류를 가져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울면서 걸어가는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던 저자의 말마따나 이 소설이 "교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움과 슬픔이 더 진해지더라도 한 편의 소설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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