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2
리처드 바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0년 11월
평점 :
절판



  타인의 집에 가면 통과의례처럼 책장을 꼭 둘러보고 온다. 아무리 빈약한 책장이라도 목록을 훑어봐야 그 집을 구경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몸이 아픈 지인의 집에 병문안을 가면서도 당연하단 듯 책장을 구경했다. 책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겹치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다 <갈매기의 꿈>을 보게 되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책을 달라고 졸라서 거의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1999년에 책을 읽었지만, 리뷰가 남겨져 있지 않아서인지 내게는 새로운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어나갈 때마다 무(無 )로 남아있는 기억의 언저리를 차곡차곡 쌓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책이나 영화나 너무 유명하면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정작 책을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행동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수집된 다양한 정보들로 그런 착각을 하기 쉬운데, 나 또한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기 전까지 갈매기 조나단의 고뇌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짧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얼마나 많이 책장을 덮고 심호흡을 했으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메모지를 붙였는지 모른다.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책의 두께도, 발행된 시간도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약 20년 전에 발행된 책이어서 지금 읽기에 어감이 조금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처럼 강렬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갈매기 조나단이 하게 되는 고민들이 격정적으로 나를 훑고 지나갈 때의 그 익숙함. 10대와 20대 초반에 내가 겪었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했다. 나의 존재감부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답 없는 고뇌의 나날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그런 시간에 과연 나는 어떠했는가가 떠오르는 순간, 조나단을 향해 경이로운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포기해 버리는 것이 더 빠르고, 내가 속한 세계에 있는 듯 마는 듯 두루뭉술하게 존재해 갔던 나와는 달리 조나단은 자신의 열망을 찾아 나섰다. 오로지 먹이에 구하는 것에 바빠 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동료 갈매기들을 보면서, 조나단이 가진 안타까움이 나를 향한 시선인 것 같아 낯이 뜨거워졌다.

 

  조나단은 먹이만 구하며 살아가는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기 위해 나는 연습을 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급기야 무리에서 쫓겨난 조나단은 남겨진 그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갈매기 떼 전체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조나단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노력했고, 그에 따른 대가에도 개의치 않았다. 조나단은 한 마리의 갈매기에 불과하지만, 얼마나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가며 하강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기술이 필요한지를 연마해 나갔다. 그것은 혼자 가야하는 고독한 길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면서 한계를 시험하고, 나날이 발전해 가고 깨달아가는 일상이 조나단은 만족스러웠다.

 

  그런 비행을 하고 있던 중, 조다난은 자신과 비슷한 일행을 만나게 된다. 조나단이 갈매기 떼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갖게 된 고민을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조나단이 연마한 비행기술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 무리에 합류한 조나단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되었음은 물론,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겨진 갈매기 떼 무리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오로지 먹이다툼만 하고, 고귀한 삶이 있다는 것은 모른 채 사그라져 가는 생명들. 비단 갈매기 떼를 향해서 던지는 안타까움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도 그런 모습이 비일비재했고, 조금만 다른 색깔을 내면 배척하기 바빴다. 조나단은 자신이 당한 처사를 감수하면서도, 같은 동족에 대한 안타까움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들과, 특히 원로 갈매기 치앙과 일행과 함께한 날들은 꿈만 같았다. 인간으로 치자면 경지에 닿을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고, 그 세계에 머문 치앙을 직접 보기도 했다. 조나단이 완전한 속도를 꿈꿀 때,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음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야." 라며 충고를 해주었다. 조나단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떠날 때, 치앙은 '끊임없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남긴 말들과 행동으로 인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결국은 어떠한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시키며 자신의 삶의 깨달음을 나누어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나단은 자신의 내면에 일렁이는 안타까움과 신념이 치앙의 말로 인해 확신이 서는 듯 했다. 그래서 치앙이 말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아 자신을 배척한 갈매기 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것 자체가 파장을 일으켰듯이 그곳에서 평탄할 리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몇몇 갈매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치앙의 뜻을 실현시킨다는 것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앎에도 '사랑을 베푼다.'는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조나단이 가진 생각과 나는 법을 보고 마치 신격화 시키려는 무리들도 있었다. 조나단은 평범한 갈매기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이해를 시키려고 한다. 남들과 다르게 난다고 해서 그것을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자아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스스로 움직여서 찾아내야 하며, 그럴 때 스스로 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서서히 조나단의 뜻을 이해하는 갈매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조나단이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한계를 시험하며, 깨달음을 다른 갈매기에게 나눠주는 과정은 그 세계에서만 속한 것이 아니었다. 내 자신에게, 수많은 무리들에게 쉼 없이 하는 말로 들렸고, 한 단계씩 밟고 올라갈 때마다 내 몸을 관통하는 짜릿함이 느껴졌다. 조나단이 경험한 것들을 내가 똑같이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삶에서 나를 대입시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해하려 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설 때 날 수 있다고 했으니, 나의 길이 어떤 것인지는 나에게 남겨져 있다. 여전히 무거운 질문이지만, 꿈을 품고 잃지만 알아도 조나단처럼 비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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