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터스 세트 - 전3권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박주영.정지현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하루 24시간이 짧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30시간 정도라고 하면 왠지 좀 피곤할 것 같고, 24시간에서 2~3시간 늘여지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때에 따라 이런 생각은 변죽을 일삼지만, 요즘 들어서는 1년의 12달도 너무 짧아서 15달, 20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어떠한 것들이 바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그냥 스쳐가는 일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뒤집고, 환상을 덧입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책을 만났다. 12시가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고, 선택된 몇 명만이 그 시간에 움직인다는 소재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였는데 영 낯설었다. 판타지 소설을 열렬히 좋아하지 않은 이유도 있거니와, 기존의 시간에서 한 시간을 늘려 그 세계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지에 대한 신뢰가 생성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1권은 무척 힘들게 읽혔다. 이야기의 진도가 팍팍 나가지 않았고, 정각이 되면 세상이 모두 굳은 상태로 몇몇 사람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에 큰 흥미가 일지 않았다. 25시를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나의 시각의 문제는 초반부터 괴롭혔고, 그것이 책의 진도를 빼지 못하는 원인을 만들고 있었다. 엄마의 새 직장으로 인해 빅스비 고등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 제시카는 얼어버리는 자정을 경험하게 되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했다. 그리고 빅스비에서 자정을 맞이하는 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그런 이야기를 갑작스레 진행시킬 수 없기에, 어떠한 연유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지, 제시카가 만나는 25시의 상황과 새로 전학한 학교의 이미지 등 모든 것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거라 짐작한 탓에 그런 차분함이 오히려 감질 맛나게 느껴졌다. 자정이 되면 제시카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좀 다를 뿐,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을 끌어내는 걸로 보였다.

 

  그러나 제시카가 만나는 비밀의 시간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세계에서 제시카는 혼자였다. 제시카가 비밀의 시간이 얼마나 위험한 공간인지를 깨닫기 시작했을 때, 제시카보다 먼저 빅스비에 자리 잡고 있는 '미드나이터'라는 이름을 가진 네 명의 친구가 있었다. 이미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기도 했지만, 제시카의 목숨을 노리고 다가오는 비밀의 시간에 살고 있는 괴물인 슬리더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제시카 앞에 나타났다. 그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이 미드나이터들 이었고, 그들은 제각각 특징을 가지고 그 시간을 누비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조너선, 상대의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는 마인더 캐스터 멜리사, 수학 천재 데스, 비밀의 시간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다클링의 전승을 읽는 렉스는 그 일로 인해 제시카가 미드나이터스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시카는 그들로부터 비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와 빅스비 마을의 특징, 자신을 공격했던 괴물에 관한 이야기를 낱낱이 듣게 된다. 또한 자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미드나이터가 되었지만,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비밀의 시간이 왜 존재하고, 다클링의 음모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1권에서는 제시카가 미드나이터라는 사실, 비밀의 시간을 누비는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 빅스비가 다클링이 싫어하는 13이라는 숫자와 합금, 수학의 패턴으로 치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제시카 자신과 나머지 미드나이터들이 궁금해 하는 제시카의 능력이 1권의 마지막에 밝혀진다. 비밀의 시간은 다클링과 슬리더들의 세계이고, 미드나이터들은 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에 절대 안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늘 깨끗한 합금으로 만든 무기를 들고 다녀야 하고, 13성어를 외우며, 다클링이 많이 있는 곳은 피해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공격해 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제시카가 '불을 가져오는 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자정이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므로, 세상의 모든 첨단기술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제시카가 우연히 가져온 손전등으로 인해 불을 가져오는 자의 능력이 밝혀지고, 다클링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제시카였음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제시카의 능력이 밝혀지긴 했지만 단순히 능력을 알고자 미드나이터가 된 그들의 삶을 비춘 것은 아니었다. 비밀의 시간에 그들 다섯이 움직일 수 있고, 괴물이 사는 시간 안에서 나름대로 시도를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취약했다. 어둠의 시간 자체에 관한 것, 빅스비 마을에 관한 역사, 미드나이터가 그들뿐이라는 사실 등 모든 정보를 그들이 스스로 알아가고 있대도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그러다 마인터 캐스터인 멜리사의 꿈을 통해 자신에게로 이끈 자가 있었으니, 50년 전 모조리 사라져버린 미드나이터중의 한 사람인 매들린이었다. 매들린도 멜리사와 같은 마인드 캐스터였고, 그녀가 그 아이들이 미드나이터가 되도록 조정했으며 불러 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면에는 인간과 다클링이 얽힌 복잡한 역사가 있었고, 50년 전에 빅스비에서 왜 미드나이터들이 사라졌는지에 대한 비밀, 그리고 현재 아이들에게 닥친 위기와 다클링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실마리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나 매들린이 그동안 숨어 지낸 이유와 아이들이 16년 만에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한 이유는 위험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매들린이 아이들을 다듬어서 각각의 능력을 정교하게, 존재감을 상실하기 않게 만들었다 해도, 다가오는 위험은 훨씬 더 묵직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빅스비가 위험에 빠지고, 미드나이터들이 사라진 이유가운데 하나는 다클링의 하수인인 인간무리가 있었다. 그레이풋 가문이 지금껏 다클링의 하수인 노릇을 했고, 그 대가로 부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미드나이터인 아이를 납치해 다클링과 인간의 양면을 가진 하플링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하플링으로 인하여 다클링은 그레이풋 가문에 메시지를 전했고, 하플링이 된 희생자는 50년 전 사라진 매들린과 같은 미드나이터였다. 납치 당시 하플링이 된 12살 소녀 애너시아는 그동안 다클링의 노예로 살고 있었고, 끔찍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다클링들은 애너시아를 실컷 이용한 뒤, 그녀의 생명이 다해가는 걸 느끼자 새로운 노예를 삼고자 전승을 읽는 렉스를 납치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하플링이 되진 않았지만, 다클링의 기질을 어느 정도 가진 모습으로 변모하고 만다. 결국 애너시아는 목숨을 잃고, 렉스를 하플링으로 만들려는 계획과 제시카를 비롯한 미드나이터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다클링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거기서 순순히 물러날 다클링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을 먹이삼지 못해 오래 굶주려 있었고,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더 이상 빅스비에서 그들만 생뚱맞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다섯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정보와 사건들로 인해 비밀의 시간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정에만 찾아오던 비밀의 시간은 한 낮에 찾아와 짧은 주기를 보인 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서 보통 인간들이 어둠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기가 엇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비밀의 시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였고, 다클링이 활개를 칠 기회가 주어지며, 수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져 있다는 전조였다. 아이들은 그 패턴을 이해하고, 다클링들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노력하다 할로윈 데이의 자정에 다클링이 빅스비를 비롯한 주변의 도시를 공략해 굶주림을 해소하고, 자신들의 세계로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미드나이터인 다섯 명의 아이들뿐이었고, 그들이 힘을 모두 합친다고 해도 다클링의 무리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도 순간순간 맞이하게 되는 위기와 비밀이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결전의 날이 되고 가장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 제시카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을 가져오는 자가 제시카였기 때문에 자정에 멈춰버린 번개를 통해 다클링을 물리치지만, 제시카는 그 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이 되고 만다. 25시간을 살아가던 제시카는 1시간 밖에 존재하지 못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던져주지 않은 채 책은 결말을 맞이한다.

 

  줄거리를 모조리 써 낸 다는 것이 무리일 정도로, 3권의 책에 담긴 이야기는 복잡하면서도 꽤 촘촘히 짜여 있었다. 성장소설과 판타지를 가미한 <미드나이터스>는 1권에서의 지루함을 느껴 별 기대를 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권에서부터 상세하게 밝혀지는 비밀의 시간과 다클링과 빅스비의 역사가 하나씩 풀리면서 점점 흥미로워졌다. 아이들이 다클링과 슬리더들과 싸우는 장면들도 아슬아슬했고, 같은 능력을 가진 아이들 틈에서 커플을 이루는 모습, 어린 나이임에도 비밀의 시간이라는 엄청난 위험을 안고 각자의 고뇌를 지켜 가야 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비밀의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해도, 1시간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맘껏 펼쳐낸 저자의 역량에도 감탄했다. 이런 장르일수록 허투루 얼개를 짠다면 비난이 여지없이 들려올 것이 뻔 한데도, 나조차 얕봤던 판타지 장르에 대한 기대를 단박에 깨트려 주었다.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독자들이 닿지 못한 세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 것이 그랬다. 저자의 독자적인 영역을 드러내, 독자들과 함께 공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3권의 책을 읽는 동안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존재할 것 같은 비밀의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깨어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내면을 파고든다. 아무래도 제시카가 인간의 시간에 돌아오지 못한 것과 다섯 명의 아이들이 흩어질 상황에 몰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말을 이끌어 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을 내 맘대로 살아갈 수 없듯이 책 속의 인물을 작가가 만들어내는 것에 동조해도, 그렇게 갇혀버린 아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후속편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결말에 석연치 않아 하는 것은, 제시카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이 빅스비에서 좀 더 편히 지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비밀의 시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다클링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기에 편해질 법도 한데 그들에게는 또 다른 멍에가 지워졌다. 그 멍에를 풀어 줄 수 없어 안타깝고, 그들 식대로라면 계속 태어나는 새로운 미드나이터들에게 도움이 손길이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는 멍에이리라. 그것이 그 아이들의 운명이라고 해도, 이 순간 만큼은 그동안 잘 이겨왔노라고 힘껏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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