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
장 자크 상뻬 글 그림 / 미메시스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방 소도시에 살다 보니, 대도시를 갈 때면 으레 들르는 곳이 대형서점이다. 오랜만에 서울 갈 일이 생겨 간 김에 서점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문학코너 책을 살펴보고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상뻬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기작가 작품을 모아놓은 곳이었는데, 상뻬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서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를 보고 흥분하게 된 것은, 온라인 서점은 이미 절판이 되었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보기 힘든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뻬의 데생을 좋아하는 터라 모두 모으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는데, 절판된 책을 서점에서 발견 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달랑 한 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이 있어서 그 가운데 가장 깨끗한 책을 골라왔다. 이 책을 구한 것만으로도 조금은 힘들었던 서울 여정의 피곤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상뻬의 데생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글이 별로 없는 그림임에도,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이 없어도, 설명이 없어도 데생이 보여주는 의미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상뻬의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본다고 말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감정들이 독자들 사이에 물결치는 의미 때문일 것이다. 책을 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더라도 자꾸 상뻬의 책을 찾게 되는 것은 그런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권씩 모아온 상뻬의 책이 쌓여 갈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지만, 볼 책이 떨어질까 아쉬운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언제든지 꺼내서 볼 수 있고, 볼 때마다 달라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끽하는 것이 무척 기쁠 뿐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상뻬의 데생을 마주할 때의 기분은, 설렘으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책을 펼치면 순식간에 상뻬의 데생이 스쳐갈 것을 알기에, 아껴두다 고요함이 흐르는 깊은 밤에 꺼내 들었다. 차근차근 본다고 해도 순식간에 상뻬의 데생은 흩어져갔고, 책을 덮었을 때는 흐뭇한 미소만이 내 안에 맴돌고 있었다. 상뻬의 데생은 익살맞고, 사실적이면서 과장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대충 그린 것 같은 손길 속에도 모든 것이 들어있다. 특히나 이 책에서 그 부분이 더 돋보였던 것은 같은 주제로 그려진 데생 때문일 것이다. '균형'이라는 것이 어떠한 균형을 말하는 것인지 몰랐을 뿐더러, '인생'과 '단순함'이 곁든 '균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 책을 펼치고 나서야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균형'이 자전거 위의 균형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자전거 위에 펼쳐진 '단순함'이라는 것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한 권의 책 속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만 등장하니(혹은 자전거 곁에 있거나), 자전거가 사람들의 몸에 떨어져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였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거나, 안타고 있으면 불안함을 느낄 정도로 자연스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대한 자연의 한가운데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어린 아이들이 균형을 잡는 모습, 자전거 위에서 다양하게 비춰지는 연인들의 모습은 자전거가 삶의 일부분으로 들어오게 했다. 아이들은 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자전거 위에서 삶을 펼쳤고, 자전거와 관련된 인생의 일부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뻬의 데생들은 대부분 색(色)이 없게 드러난 것들이 많은데, 이 책에서는 우표 모양으로 채색된 자전거와 관련된 데생들이 있었다. 한 편의 사진처럼 추억이 담긴 자전거와의 다양한 모습은 색다른 묘미를 안겨 주었다. 과거에는 자전거와 어떻게 단순한 균형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 같았다.

 

  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멋지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모두들 자연스레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밑바탕으로 깔고 그들이 갖춘 옷매무새나 행동으로 인생과 연관 지을 수 있었다. 익살스런 연인들부터, 자전거를 타는 여러 부인들의 모습으로 자전거 위에서 펼쳐지는 그네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꿈꾸고, 무슨 생각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있을까란 상상까지, 한 줄의 설명도 없는 곳에서 나름대로 추측하는 재미가 있었다. 단순한 데생임에도 움직임이 힘차고, 페달을 밟고 박차고 나갈 것 같은 역동감이 느껴져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상에도 자전거를 끌어당기고 싶었고,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친숙하게 만들어 자전거와 함께인 나날을 보내고 싶었다. 그 위에서 어떠한 인생이 펼쳐지든 지간에, 자전거가 밑바탕이 되었을 뿐이지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무언가가 크게 달라질 거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차게 페달을 밟고, 상뻬의 그려낸 데생처럼 그네들의 경험을 만끽하고 싶은 욕망은 스멀스멀 자꾸만 올라왔다.

 

  자전거가 밑바탕이 되고 공통된 주제로 드러나긴 하지만, 이 책에서도 상뻬의 다양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채색의 변화, 시점의 변화, 장소의 변화에 따라 펼쳐지는 인생의 균형과 단순함은 맘껏 펼쳐졌다. 데생만으로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거리를 던져주며, 삶의 다양함을 만끽하게 해주어서 상뻬의 책은 마냥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상뻬가 삽화만 그렸다고 해도 그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상뻬의 책들이 꾸준히 발간되어 그를 통해 이런 흐뭇함과 유머를 만끽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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