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을 뜨니 새벽 두 시, 또 깨고 말았다. 요즘 들어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 몇 번씩 눈을 뜨게 된다. 조금 뒤척이다 잠이 들겠지 하는 무심함도 잠시,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이렇게 어정쩡한 시간에 잠이 깨어 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오늘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내일 무척 피곤할 것이고 일과가 엉망으로 꼬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만 밀려왔다.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난 상태였다. 결국 자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뒤로 한 채, 그 새벽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책을 꺼내들었다.

   새벽의 고요함 때문이지, 요 며칠 잠을 푹 못자는 뒤척임 때문인지 딱딱한 책은 읽고 싶지 않았다.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지금의 피곤함을 메워줄 책을 읽고 싶었다. 다행히 내 눈에 확 띄는 책이 있었으니, 책 사진을 찍는답시고 책장에 그대로 세워 둔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였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중년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 밖에 몰랐지만, 새벽의 생뚱맞음을 충분히 보완시켜 줄 것 같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새벽 4시가 넘도록 책을 읽게 만들었고 한없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내가 지금 왜 깨어 있나’란 물음과, 수면 부족으로 인한 미미한 두통까지 모두 덮어버릴 수 있는 극적인 만남이었다.
 

  한 여인이 있다. 50번 째 생일을 앞두고 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며, 같은 학교 교수인 남편과 세 자녀를 두고 있는 앨리스란 여인이었다. 막내 딸 리디아와 관계가 조금 소원하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총명 했으며, 대학에서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기억이 조금씩 감퇴하고 있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껏 쌓아온 지식과 기억력이 언제나 팽팽하게 견디어 주어야 했다. 처음엔 그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으나, 집 앞에서 조깅을 하다 길을 잃은 후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조발성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을 때 까지도 그녀의 삶이 그렇게까지 뒤틀리고 무너질 거라 상상할 수 없었다.
 

  어리석게도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진단을 받기 전 후로 기억에 관한 문제의 드러남을 여실히 보아왔으면서도, 그녀의 병이 어떠한 결과를 야기하는 지 연관시키려 들지 않았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에 그것이 ‘치매’라는 것을 알고, 먹먹해 진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고, 앨리스의 내면을 세세하게 알아가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해졌다. 철저히 앨리스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그녀의 내면을 통해서 자신에게 드리워진 기억이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봐서인지 미처 병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다만, 쉰이라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그녀의 상황이 안타깝고, 답답해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저자는 앨리스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다보니, 다른 인물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알츠하이머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고, 지나치게 세세하다 싶을 정도로 그녀가 퇴행적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은 처절했다. 그녀가 진단을 받으면서 받게 되는 각종 검사들과 기억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독자를 지치게 했다. 그러나 그 절망과 상실감은 결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경계의 고통이었고, 지켜보는 것조차 힘들다고 투덜대는 것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종신교수직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음에도, 학교에서 물러나고, 가정에서도 더 이상 부인과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알츠하이머 환자일 뿐이었다.
 

  앨리스는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고, 조만간 사랑하는 가족들을 알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각종 증상들이 그녀를 엄습할 때도, 그녀 안에 퍼지는 또 다른 존재감을 지켜내려 애썼다. 비교적 초기 증상이 그녀를 지배할 때,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위로를 받기로 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발병했기에,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만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힘이 든 앨리스는 가족들과의 충돌도 함께 감내해야 했다. 남편 존은 그녀를 사랑하고 이해해 주었지만, 그녀가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의 일을 놓지 못하고 있었고, 세 자녀들도 앨리스를 생각하기보다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사랑으로 이루어 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람 또한 앨리스였다. 앨리스가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은 빠르면서도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막내 딸 리디아와 화해를 이끌어 낸 것이 극적이었고, 자녀들이 엄마인 앨리스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려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사람을 옆에 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사람이 사랑하는 엄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총명하고 사랑스러웠던 아내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남편 존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다. 철저히 앨리스의 시선으로 쓰여 졌지만, 가족들의 마음과 앨리스의 또 다른 내면을 모두 알았다고 할 수도 없다. 2년 여 동안의 기록으로 한 사람의 인생과 그녀를 둘러싼 관계를 잃었다 다시 찾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부여안은 채, 앨리스는 가족들 틈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모습은 병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앨리스의 삶에 너무나 큰 변화였지만, 시작만큼 절망적인 것도 아니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환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그녀로 인해 그들이 겪는 고립과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 가늠할 수 있었다. 알츠하이머가 노인에게 오는 병이라 치부해 버리고, 극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시간들이 마냥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대상자가 내가 되지 말란 법도 없기에, 한 여인의 삶과 그녀가 속한 가족,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무엇을 소중히 해야 할지 깨달아 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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