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김훈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화장>을 읽고, 완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하다는 느낌은 단편소설의 완성도보다 문체에 관한 감탄이 더 짙었다. 문장과 문장을 아우르는 공백의 미를 여실히 드러내는 그의 글에서 군더더기를 느낄 수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글이 남긴 여운을 느끼다 그제야 저자의 프로필을 보았고, 내가 느낀 완벽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간결하면서도 충분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문장이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해 온 탓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경험을 빗대어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이었다. 단 번에 그의 문체에 빠져 문학선집을 섭렵했건만, 단시간에 너무 많은 작품을 소화시켜서인지 그의 문체에 질려 버리고 말았다.
틈틈이 발행되는 그의 작품을 만나면서도, 처음 느꼈던 그 열정을 끌어내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한동안 그의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언저리만 맴돌다, 본격적으로 만나고 싶어 꺼내든 책은 <공무도하>였다. 온라인 카페에서 인기리에 연재 될 때에도 꿋꿋이 종이 책으로 나오기를 기다려 사인 본까지 받고도, 한참을 책장에 묵혀둬야 했다. 책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 틈에서 길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나, 그의 작품이 스스로 내게 다가올 때를 기다린 것이다. 그 때에 맞춰 온 것이 <공무도하>이므로, 저자와의 오랜만의 조우를 성공리에 이끌고 싶었다. 그냥 책을 읽으면 읽는 것이지 성공적인 조우라는 거창함을 들출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것도 적절한 시기, 읽는 이의 마음 상태, 주변 환경이 밑받침 되어야 온전히 들어옴을 경험한 사람은, 저자와의 만남을 앞둔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책의 시작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자연의 재해가 한꺼번에 밀려오듯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깨지고 있었고, 사람들의 마음도 불안하고 절망적이 되어갔다. 뚝방이 무너져 마을이 휩쓸리고, 지하철이 잠기는 것을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재해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불안함이 그대로 밀려왔다.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 그것을 취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TV화면을 통해 지켜보는 사람들로 나뉘어졌다. 불안함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클지 모르겠으나, 글을 읽으며 현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독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불안감은 책을 읽는 내내 이어졌다. 불안과 절망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긴 했지만, 감정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은 저자의 위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많은 정보를 인터넷과 TV를 통해서 알아가는 것처럼, 책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곳곳의 소식을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등장시킨 인물들이 전해주는 세상 소식이나 삶의 표상들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 불안감이 내 안에 계속 포진해 있는 상태에서도 그들이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흐름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런 인물들은 신문기자 문정수, 에디터 겸 디자이너 노목희, 노목희의 고향 선배인 장철수였다. 그들로 인해 수없이 얽히고설키는 인연과 세상의 소식들은 때로는 평이하면서도 격정적이어서 이유 없는 한숨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사람 사는 모습일 수도 있고, 자연스런 삶일 수도 있는데 그 주변을 맴도는 나는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문정수는 기자생활을 한 저자를 생각나게 했고, 장철수는 격동의 시류를 갈아타지 못한 아류의 표본으로 비춰졌다. 문정수와 관계를 맺고 미술교사에서 출판사로 이직한 노목희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인물로, 결국 스르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정수의 직업이 기자인 만큼, 그가 일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독자에게 전해졌고, 신문기사로 쓰였으며, 노목희에게 전달자로 직접 전해졌다. 그 일들은 기사화시킨 것보다 훨씬 진하고 노골적으로 전해졌으며, 신문으로 접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이면이 드러나 있었다. 이면의 드러남을 문정수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켜보는 자들이 색다른 감흥을 느껴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실체를 바라보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나를 계속 엄습했던 불안감이 실체를 드러냈음에도 또렷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은 흩어져 버렸다. 곳곳에서 들려오던 정보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행보는 낱낱이 흩어져 아무 것도 쥐어지지 않은 빈손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바라봄은 어느 것이 주목할 만한 삶이라는 주됨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그렇게 끝이 났다. 굵은 줄기를 잡아낸다는 것이 무모할 정도로 흐름을 보여주었던 글이었기에, 흩어짐이 야속하지 않았다. 다만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악연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지 따져 물을 수 없는 허무함이 책의 끝에 잠재해 있었다. 흩어짐 가운데 조금이라고 후련함을 던져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덧없음을 한탄할 새도 없이 그들은 인생의 틈바구니로 잠식해 버렸다. 그 잠식이 더 이상 그들에게 허무함을 안겨주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살아갈 것 같은 그들을 어떤 식으로 위로해야 할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할지 여전이 내겐 의문으로 남아있다.
책을 읽을 때, 제목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공무도하>의 의미를 알고 난 후에도, 책 내용과 연관시키지 못할 정도로 지나쳐 버리기 일쑤인데 왜였을까.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라는 문구가 계속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이유는. 사랑을 느낄 여지도, 겨를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왜 자꾸 그 말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나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들은 결국 뭍으로 올라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강도 건너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들어 놓은 터전을 전전하는 사람들로 남겨지고 말았다. 그것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 흐름에 맡긴 것인지 따져 묻고 싶지 않다. 그들이 뭍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어 줄 밖에는.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강 너머를 바라보며 뭍 속으로 따라가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