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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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는 생경하지만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렇듯 무관심하면서도, 가족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 비로소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조카의 죽음이 그랬다. 10년 전 아버지의 죽음은 어느 정도 가슴에 묻을 수 있었지만, 25살에 삶이 단절 되어 버린 조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힘이 든다.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고, 손을 뻗어 잡아당기면 나를 향해 다가올 것 같은데,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애석하다. 가슴에 묻어도 묻어지지 않는 가족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잠재해 있어, 그 고통을 꺼내는 것조차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김려령의 신작 <우아한 거짓말> 속의 주인공 천지 때문이다. 내일을 준비하던 소녀 천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천지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도 속 시원히 무언가를 받아들일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달라지지 않는 것은 천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고, 남겨진 가족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천지의 죽음의 비밀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기 보다, 여러 장면을 통해서 스스로 알아가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을 한없이 놔버린 상태로 오로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어나간다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과 독자가 알아야 할 '진실'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천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떠한 진실이 숨겨져 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을까. 천지와 천지의 주변 이야기를 다 듣고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어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은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없었다. 천지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과연 천지가 선택한 죽음의 이면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파악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모두들 진실을 회피하며, 단절되어 버린 천지의 삶과는 무관하게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특히나 천지를 괴롭혔던 화연은 자신이 천지에게 한 행동에 대한 반성을 한다기보다, 천지의 빈자리에 아쉬움을 느낄 뿐이었다. 화연이 괴로워하는 모습, 자신이 한 행동 그대로 친구들에게 받는 모습이 있긴 했으나 그런 모습으로 천지의 죽음에 빗댄 동정심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천지는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성될 뿐이었다.

 

  천지에게는 언니 만지, 엄마가 있었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달랑 세 식구였지만 각자의 색깔을 가진 채 무난함을 가장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가족에게 천지의 죽음은 충격 이상의 것일 수밖에 없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내제된 고통의 드러남은, 가족이라는 끈끈함을 느끼기보다 핏줄의 절연을 더 느끼고 있었다. 화연을 비롯한 만지의 친구 미란, 천지의 친구이자 미란의 동생인 미라, 그들의 부모의 얽힘이 서서히 밝혀지지만 그 어느 곳에도 천지의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정확함은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가 그 진실을 비켜가게끔 '우아한 거짓말' 속에서 합리화를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나았다.

 

  천지의 죽음의 원인을 확연히 밝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을까. 천지가 살아온 과정, 거기다 천지의 내면까지 보았음에도 불편한 진실은 도무지 내게 와 닿지 않았다. 천지가 가족들, 친구들에게 남긴 네 개의 실뭉치 속의 편지를 보면서도 왜 그렇게밖에 행동을 할 수 없었는지, 안타까움을 동반한 비난조차 일지 않았다. 남겨진 엄마와 언니를 생각하면 한없이 안쓰러웠지만, 죽음을 맞이할 동안에도 희망의 꿈을 꾼 천지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런 천지에게 죽을 용기를 내어 살아라는 말이 얼마나 무색할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살아라고 한다면 그것만큼 잔인한 것이 어디 있을까. 무엇보다 세상과 단절시켜야 하는 천지 자신이 가장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 고통을 이해하기보다 원인만 밝혀지길 바랐으니, 나 또한 질실 거부, 책임 회피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저자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고' 말했다. 천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천지가 경험할 수 있는 삶 속에는 기쁨이 더 많을 거라고 나 또한 말해주고 싶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는 진부한 말보다 고통을 뛰어넘는 기쁨과 희망도 삶 속에 동시에 내제되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천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결국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며, 이 책을 읽어갈 독자들에게도 건네주고 싶은 말이다. 책 속에서 처절한 고통과 상처를 맛보더라도,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노라고 얕은 삶의 경험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것이다.

 

  천지의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내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조카의 죽음과 연결시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소설 속의 죽음과 현실의 죽음은 다른 거라고 말하고 싶었고, 그런 식으로 깊이 패인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기 싫었다. 그러나 자꾸만 조카의 죽음이 연상되고, 천지 가족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많은 과정이 필요치 않았다. 천지의 내면을 보면서도 내가 알 수 없는 고통이 조카의 내면에 그득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 질뿐이다. 그 먹먹함을 천지의 죽음으로 통해 드러내는 것이 너무 싫지만, 이렇게라도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천지에게도 조카에게도 더 이상 내세의 고통이 따라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떠한 진실의 이면이 있던 지간에 남아있는 자는 단서를 잡지 못할 것이며, 입 안으로 진실을 떠 먹여 줘도 흘려버릴 것이라는 데 오는 어리석은 확신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얼마나 많은 거짓된 진실을 뒤덮으며 살아가고 있는 지, 차마 그 이면을 들추어낼 용기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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