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
아모스 오즈 지음, 정영문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책을 읽다 중단하게 되면, 그 이야기는 완성 되지 못한 채 뇌리에 맴돌 때가 있다. 특히나 중간까지 읽다 만 책들보다,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 버린 책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를 완성시키지 못한 채 방치하다 완성시켰을 때의 후련함. 그것도 책을 읽는 매력중의 하나라면 하나지만, 강렬한 끌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책들도 만나게 된다. 내가 무척 좋아하고, 국내에 번역된 책을 거의 다 읽은 아모스 오즈의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가 그랬다. 아모스 오즈의 책이었기에 출간 당시 구입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초반의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포메란스라는 유대인 교사가 독일인들을 피해 숲으로 피신하는 시작은 흥미진진했으나, 몇 번을 시도해도 10페이지를 읽지도 못하고 덮고 말았다. 그러다 아모스 오즈의 새로 번역된 책을 읽으니, 안 읽은 책이 이것뿐이라 이번에는 꼭 완독하고 싶어 첫 장부터 다시 펼쳤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넘기기 힘들었던 책장이 비교적 잘 넘어가고 있었다. 국내에 번역된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책을 읽어나간다 생각하니, 무척 뿌듯하면서도 즐거웠다. 간간히 번역되었던 책들이 있긴 했지만, 온전한 소설을 만난 건 실로 오랜만이라 책장이 막힘없이 나가는 것에 약간 흥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애석하게도 오래 가지 않았다.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묘사와 흐름은 점점 미궁으로 나를 끌어당겼고, 급기야 줄거리를 놓쳐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꿈속을 헤매는 듯, 어디서부터 다시 읽어야 다시 갈피를 잡을 수 있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인 채로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도 석연치 않음이 계속 나를 지배했다.

 

  책의 시작이 포메란스가 전쟁을 피해 숲으로 피신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므로, 썩 좋은 배경은 아니었다. 김나지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사였고, 같은 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친 그의 부인 스테파는 남편과 같이 도망치지 않고 집에 남아 있었다.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입했을 때의 배경이라고 해도, 당시의 현실감을 일깨우는 글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긴 하지만,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인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그 사이에서 나의 혼란은 거듭될 수밖에 없었고, 중간쯤부터 포메란스와 스테파의 위치는 물론 그들의 내면을 파악한다는 것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보니 글이 던져주는 몽롱함에 취해 어딘지 모르는 곳의 이야기에 빠져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내가 경험한 몽롱함과 혼란스러움이 어쩌면 그들에게 닥친 현실의 흔들림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은, 포메란스가 양을 치며 시계를 수리하는 모습을 드러낼 때 부터였다. 당시의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그런 결정을 쉬운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포메란스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스테파를 향한 그리움인지, 삶이 뿌리째 흔들려 버린 상실감 때문인지 알 수 없더라도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양을 치며 시계를 수리하다 수학의 난제를 증명함으로써 명성을 얻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로인해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쟁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스테파를 다시 만날 수도 없었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척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스테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포메란스를 따라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다 결국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로 건너가 스파이가 된다. 그러나 그녀가 스파이로써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다, 그녀가 당하는 굴욕감, 눈에 보이지 않는 기이한 세계들은 복잡하게 얽혀 포메란스와 동떨어진 삶의 단상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녀가 러시아에서 어떠한 정보를 담당하는지, 또한 그녀 주변에 맴도는 사람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거기다 포메란스와 스테파가 과연 서로를 의식이나 하고 있는지, 서로를 갈구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함이 나의 내면을 가득 채웠다. 결국 그들의 재회가 어떠한 식으로 치닫게 됐는지 알 수 없어, 책을 덮으면서 몹시 민망했다. 그런 흐름 속에 정치적인 상황까지 맞물리다 보니, 나의 혼란은 극을 향해 치닫고 있으면서도 책을 읽는 그 묘한 매력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다 보니 더 혼란스러움이 가중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커피 향과 음악의 소란스러움, 글로 이루어지는 묘한 세계의 뒤엉킴은 내게 색다른 묘미를 안겨주었다. 책 내용이 혼란스러워질수록 내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세계와 뚜렷한 대조를 보이면서도 묘한 엉킴이 내재해 있어, 그 분위기를 느꼈던 시간도 내겐 소중하다. 책을 분위기로 읽었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 가졌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아모스 오즈의 책을 섭렵한다는 의미도, 오랫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책을 읽어간다는 후련함은 무의미했다. 몽롱함 속으로 나를 불러들였던 아모스 오즈의 세계에 온전히 안착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매력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한 작가를 작품을 하나씩 섭렵할 때마다 색다른 매력을 던져주는 것, 앞으로 쓰일 책이나, 번역될 책을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의 즐거움을 이 책이 배가시켜 준 것만은 분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10-1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이상했어요. 지나치게 길어진 문장도 보였고요.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특히 엘리샤가 무한의 신비에 집착하고, 음악의 힘을 강조하는 설정이 못마땅했어요.

안녕반짝 2015-12-15 22:22   좋아요 0 | URL
저는 번역을 생각할 틈도 없이(상세히 구별해 낼 능력도 없지만^^) 모호하고 몽롱해서 줄거리조차 잘 기억이 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