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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 230 Days of Diary in America
김동영 지음 / 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날씨를 만나도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20대 초반, 박준의 <on the road>를 읽고 열병처럼 앓았던 여행에 대한 갈망은 몇 년 사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졌다. 현실이 여의치 않고, 돈이 없고, 젊지 않다는 것이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나이는 생각하기에 따라 젊고 늙음이 달라진다.) 마음에 열정이 없다. 그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여행에 관한 책 한 권만 읽어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내 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로는 여행 책을 만나면 <on the road>를 읽었던 때처럼 열병을 앓을까봐 겁을 먹고 피했던 적이 있었으나, 그런 걱정마저 희미해 질 정도로 무언가 마음에서 쑥 빠져나간 기분이다.
이렇게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면서도 공교롭게 내가 꺼내 든 책은 여행 책이었다. 독자들 사이에서 괜찮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책이었고, 넉 달 전에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었다.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는 휴가철인 여름이었으나, 정작 그 때는 꺼내지도 못하고 쌀쌀한 바람이 이는 11월에 꺼내 든 것이 나조차도 의아했다. 밤마다 찾아오는 마음의 공허를 달랠 길이 없었고, 그러다 문득 이 책을 꺼내들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혀 늦은 밤까지 읽어버린 것이다. 책 읽기가 힘들었는지, 마음의 공허가 힘들었는지 아침에 깨어 거울을 보니 입이 지어있었다. 그 낯섦이 저자가 매일 밤 바라봐야 했던 낯선 천장만 하겠냐만,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피곤이 몰린 육체, 공허의 바람의 부는 마음, 자동으로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 사이에서 비로소 '나를 알게 될 거야' 라고 말한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저자가 230일 동안 미국을 횡단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쉽게 읽어버리고, 너무 쉽게 무시해 버린 만남이었다.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어떠한 상황에서 글을 쓰며, 사진을 찍고, 외로움을 달랬을 지 낱낱이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자가 이 여행을 하게 된 시발점이 썩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낯선 곳을 여행한 자의 고뇌를 같은 언어로 듣기가 싫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이입이 유용했고, 글로 드러낸 의미 이외의 것들을 추이해 갈수도 있었다.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은 읽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므로, 저자의 감정이 내게 전해져 오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여행을 통해 찾으려 했던 무언가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봄직한 것들, 거기다 여행을 통해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었기에 피하고 싶었노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도대체 왜? 타인의 여행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을까? 왜 나는 타인의 내면을 통해 내 자신에게 이토록 초라한 자신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차라리 부러움이었으면 좋겠다. 어떠한 이유가 됐든 자신이 꿈꾸던 곳을 여행하는 행함, 외로움이 가득한 시간이었더라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시간,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냈던 순간들이 부러웠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게는 그런 용기가 없는데 당신은 해냈다는 질투어린 시선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진부한 시선으로 저자의 여행기를 훑으면서 이런저런 푸념을 섞어가며 읽는 나를 보고 있자니 무척 한심했다. 공감할 수 없다면 가만이라도 있을 것이지, 여행을 하면서 저 시간을 견뎌내는 동안 얼마나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했냐는 위로는 못 던져줄 망정, 무모했다고 제 3자의 동조를 얻어내려 했다. 진부하지 않냐고, 가볍지 않냐고, 무언가 남는 게 없다며 타인을 설득해서라도 내 감정을 강요하고 싶었다. 왜 이런 편협한 생각들밖에 할 수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려움을 드러내기 싫어 못난 방어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몹시 두려웠다. 타인이 낯선 곳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다. 내 안에 꼭꼭 감추어두었던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만난 탓이었다.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것이 분명 녹록하진 않다. 거기다 저자의 여행기를 통해서 내가 만남 두려움만 내제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난 그것만 보고 있었다.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더 또렷하게 보게 되며, 여행을 통해서 무언가를 보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난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는 부분은 내게도 적지 않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내가 그곳에 던져졌다 하더라도 외로움과 두려움에 못 이겨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울었을 거라는 데에 확신하면서도, 저자에게 따뜻한 마음 한 번 비추질 못했다. 오로지 한 권의 책에 실린 전체적인 느낌을 두루뭉술하게 파악하길 원했고, 대리만족을 시켜주기만 바랐다. 그러나 여행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경험이 쌓아갈 때마다, 통장 잔고가 얄팍해 질 때마다 최선을 다해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라면 저런 평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거라고,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 한 풀 꺾인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저자가 여행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낯섦이 가득하다. 미국이란 나라를 가보지 못하고, 동경하지 않는다는 이유와는 좀 다른 것이었다. 아마도 나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과 내 안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못한 탓이리라. 그러나 저자를 따라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그가 드러낸 다양한 부르짖음에 마음이 많이 누그러든 것은 사실이다. 낯선 땅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좋은 사람을 만나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절망까지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저자의 여행이 끝나갈 때쯤, 그가 뱉어낸 수많은 의미들을 많은 부분 수용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 안에 온전히 녹아들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 주변을 겉도는 이 느낌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당신의 글 때문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노라고 이렇게 진부하게 늘어뜨려 놓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당신처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없더라도,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무수한 여행을 가르쳐 주었기에 꼭 낯선 곳을 향한 동경을 하지 않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