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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다는 것 ㅣ 창비시선 205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평점 :
국내외를 포함해 좋아하는 작가를 열손가락이 부족하도록 나열하면서도, 좋아하는 시인을 꼽을라치면 한 없이 손가락이 초라해진다. 도무지 생각나는 시인도 없을 뿐더러, 유명한 시인의 작품이라 해도 온전히 이해한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란 장르를 어려워하는 것이고, 느낌을 남기려고 해도 언어의 능력 부족에 개탄하는 것이리라. 그런 내게 드디어 좋아하는 시인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했다. 오래 전 <사라진 손바닥>을 읽고 염두에 두고 있던 시인이긴 했으나, 한 작품밖에 읽지 않아서 좋아하는 작가 반열에 올리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다 <사라진 손바닥>의 느낌이 그리워, 시인의 다른 작품을 구입했다. 그 작품은 <어두워진다는 것>이었고, 시를 읽으면서 한 없이 내 마음을 파고드는 언어의 유희에 어쩔 줄을 모를 정도였다.
학창시절, 시를 음미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음에도, 막상 시집을 마주하고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더군다나 시집을 펼쳐놓고 글자를 읽어나가기 바쁜 나에게 나희덕님의 시는 음미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해주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읽는 이에게 그대로 스며들어 버리는 흡착력 때문에, 시집을 덮고 난 후에 공중에 떠도는 시를 기억해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분명 속도를 늦추고, 두어 번씩 반복해서 읽었음에도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적어도 나의 마음을 건드렸던 시구에 메모지를 붙여 놓을 법도 하건만, 휑한 시집을 보니 내가 과연 시집을 읽은 것인지 의심이 되었다. 거기다 발문을 읽어도 나희덕님의 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나의 능력 밖이었기에, 나의 갸웃거림은 잦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시를 다시 읽다 어슴푸레 내가 가졌던 의문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좋은 시구에 메모지를 붙이지 못하고, 기억나는 시가 없다는 것에 당황했던 이유가 드러난 것이다. 자연스러움. 너무나 자연스러워 내가 표현해내지 못한 것들을 이질감 없이 드러냈기에 눈치 채지 못한 것이었다. 가령 <빗방울, 빗방울>이란 시에서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사선이다/세상에 대한 어긋남을/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이란 표현이 그랬다. 버스를 타고 가다 차창에 부딪히는 비를 보면서 시인처럼 느꼈음에도 이렇게 표현할 감각이 내게는 없었다. 거기다 그렇게 느꼈다는 동질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술렁술렁 읽고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렇게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해도, 읽는 이로 하여금 장애물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막힘없이 시가 흘러갔던 것이고, 내 안에 흡수된 시를 다시 꺼내는 것이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시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녀의 시에 대한 느낌이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질거림으로 남아있는데, 도무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발문을 쓴 이성호님의 표현을 빌려 '모든 사물을 향해 열려 있는 그의 감각과 사랑에 있다.' 란 말에 전적으로 동조할 수밖에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감각을 지닌 시인들의 시각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해도, 더 남다른 능력을 지닌 그녀를 추켜세울 뿐이다. 모든 사물을 향해 열려있는 감각뿐만 아니라, 막힘없는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 나처럼 시에 무지한 독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모른다. 종종 리듬을 타지 못해 답답한 마음만 안겨주는 시를 만날 때가 있다. 짧은 언어로 풍부한 의미를 내포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를 만날 때는 본질의 막힘을 경험하고 소통이 끊겨 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나희덕님의 시는 표현을 위한 단어의 나열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 그 너머를 보여주는 시를 써 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손가락 하나를 펼쳤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나열할 때 나희덕 시인을 가리키는 펼침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집을 만나게 될지, 과연 손가락을 더 펼칠 좋아하는 시인이 생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나희덕님의 작품이라도 전작하면서 시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보자고 다짐할 뿐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두루뭉술한 느낌을 이렇듯 명확하고 청명하게 밝혀주는 시인이 있는 한, 그녀의 능력을 빌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