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식구들이 모두 잠든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때쯤이면 노곤해지는 몸을 붙잡고 이대로 꿈나라로 직행하기엔 뭔가 아쉽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으레 한쪽 벽을 꽉 채운, 읽어야 할 책들을 보면서 마치 서점에 온 듯이 뒤적거리며 읽을 책을 찾아낸다. 그렇게 책 사냥에 걸려든 책들은 어떠한 규칙이 있다기보다, 그날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서 결정되므로 늘 어떠한 책이 손에 쥐어질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어제 밤의 책 사냥에서 내게 선택되어진 책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였다. 작년에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책인데, 저자의 두 번째 책이 나올 때까지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제야 읽고 싶어져 꺼내들었는데, 의외로 흡인력 있게 다가와 아쉬운 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졸려서 책을 읽을 수 없을 때까지 책을 읽고, 사무실에서 틈틈이 남은 부분을 읽어 나갔다. 두 편의 그림과 함께 실린 글의 단락이 읽기 쉽게 나뉘어 있어, 아무 때나 펼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과 일상이 뒤섞인 세계는 그렇게 내게 성큼 다가왔다.

 

  내가 타인과 대화 할 때 주로 책 이야기가 대부분인 것처럼(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무척 지루해 하지만), 저자는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그림과 결부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는 것만' 좋아한다고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저자처럼 통찰력을 발휘해서 그림을 해석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몇 줄 안 되는 느낌을 남길라치면, 그것이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기에 이렇듯 그림에 대한 느낌과 일상을 자유자재로 버무려 놓은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기간 공부하고 땀 흘려 온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봐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평소에 내게 부족했던 것들을 채워나가 듯, 저자의 글과 일상이 연결 된 그림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분명 똑같은 그림을 보고 있음에도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림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전혀 다른 해석을 드러내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 터라, 그림을 먼저 보고 글을 읽었음에도 저자의 시선에 많은 부분을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뭐든지 대충대충 보는 성격인지라, 그림의 두루뭉술한 느낌만 기억한 채 저자의 해석을 대입해보면 내가 놓쳐 버린 것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기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과 세상의 많은 것들을 연결시키고 있어, 그림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저자 주변의 소소한 일상, 타인을 통해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불러내는 그림과의 연결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저자는 그림을 놓고 대상을 풀어나가거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그림을 합쳐서 펼쳐놓기도 했다. 그런 서술방식은 평소에 그림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에 적합했다. '사랑, 타인, 나' 라는 주제로 분류해 그림을 흡수하고 있었으므로 특별한 거부감이 없지 않는 한, 누구든지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림에 중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림과 연결되는 삶의 잔상은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말들이 많았다. 어쩜 나의 마음을 저렇게 똑 같게 표현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내면의 드러냄은 그림 이상의 위로를 던져 주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이라는 길을 제각각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으로 끌어내는 힘, 그림에 흥미를 끌게 만드는 유도,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을 써내고 있는 것만도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좀 더 깊이 있는 사유를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심리 치유 에세이' 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부분이 그림에 할애되어 있어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해 보는 것이리라.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여러 권의 관련 서적을 읽어서인지 눈만 높아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대한 해석에 감탄하면서도 더 깊이 있는 글을 바라는 것은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더 저자의 두 번째 책이 궁금해진다. 내가 아쉬워하는 깊이의 사유가 두 번째 책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또한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독자의 시선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 싶다. 저자가 봤을 때 읽기만 하면서 요구하는 것이 많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으나, 언제나 게으른 독자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더 많이 채워주기를 바라는 욕심쟁이라는 것을 얼른 간파했으면 좋겠다. 그런 저자를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 독자라고 해도,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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