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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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을 끄고 몸을 뒤척여도 도무지 일어날 기력이 생기지 않는다. 왜 이렇게 몸이 무겁기만 한 건지, 어젯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무언가 거창한 꿈을 꾼 것 같은데, 몽롱함에 취해 현실의 나를 분간할 기운조차 얻을 수 없다. 10분쯤 이불 속에서 웅크리다 벌떡 일어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향했고, 반쯤 정신을 잃은 채 양치질을 하다 보니 그제야 어젯밤의 일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5시간이 넘도록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그것만도 피곤해 쓰러질 법 한데 다른 책을 꺼내 새벽 1시를 넘기며 읽었다. 그랬으니 이렇게 나른하고, 몽롱한 기운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잠들기 전에 읽은 하루키 소설이 피곤함과 마구 뒤섞이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을 읽은 것인지 한참을 떠올려도 공허만이 뇌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꿈에 아오마메와 덴고가 나온 것 같다. 그것이 소설의 내용인지 꿈의 내용인지 확실치 않아도, 그 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떻게 등장해 어떤 이야기를 흘리고 갔는지 기억이 날 리 만무하지만, 내 머릿속에 그 둘의 존재가 들어찬 것은 확실했다. 잠들기 직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꿈에 그대로 드러나는 나(我)여도, 이처럼 강렬하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야기는 실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지, 그 둘의 진전된 만남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망설여진다. 1권에 이어 2권을 읽고, 책 내용이 내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음에도 그 둘에 대해 할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몸을 들인 그들을 따라가느라 힘에 겨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1권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1Q84의 세계는 아오마메와 덴고에게 서슴없이 다가왔고, 그 세계를 알고 있는 인물의 등장과 기이한 현상들로 인해 독자인 나도 그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만나는 것에 좀 복잡한 사연이 깔려 있을 거라 짐작할 뿐이었는데, 의문의 1Q84 세계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둘의 공존은 이어질 수 없다고 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두 개의 달이 떠 1Q84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해도, 1984년과 넘나드는 상황에서 어느 선까지 현실로 인정하고 어디를 1Q84로 생각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후카에리가 쓴 <공기 번데기>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 사실을 후카에리와 덴고가 세상에 드러냈기 때문에 리틀 피플은 점점 그들을 좁혀오고 있었다.

 

  많은 궁금증이 '선구'의 리더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 되지만, 아오마메가 리더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리틀 피플의 조임을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주변 인물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복선을 감지한 것이다. 우연을 가장하고 있지만 누군가 보낸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인지, 또한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고, 덴고 곁의 후카에리는 애매모호한 말만 들려 줄 뿐이다. 아오마메도 마찬가지였다. '선구'의 리더를 살해하기 위해 주변 정리를 하면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잠시 우정을 나누었던 아유미가 죽자 번민을 느낀다. 겨우겨우 덴고의 존재만 남겨놓은 채 그 일(리더를 죽이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하며, 자신을 잊기 바빴다.

 

  분명 아오마메와 덴고가 만날 거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20년 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던 그들이 서로를 그렇게 갈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오마메는 덴고를 마음 깊숙이 사랑하고 있었지만 덴고는 띄엄띄엄 기억했을 뿐이었고, 2권에서 갑자기 아오마메에게 마음을 많이 내어주는 것에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내가 갖았던 의문과 많은 궁금증은 선구의 '리더'를 통해 설명 되었고, 왜 그들이 만나야 하고 이어져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오마메는 리더를 죽이러 간 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리더는 이미 자신을 죽이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오마메에게 조건을 내걸어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자신은 리틀 피플의 목소리를 듣는 자이며,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아오메마와 덴고는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되었으며 1Q84의 시간성 속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1984년에 살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두 사람이 1Q84의 세계에 들어 왔기 때문에 만나야 하지만, 자신이 살아있다면 덴고는 목숨을 잃는다고 말한다. 후카에리와 덴고가 <공기 번데기>에 리틀 피플의 이야기를 썼고, 그들은 리더가 여전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리더의 몸은 이미 죽음을 향하고 있었지만, 아오마메가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덴고를 살릴 수 있다면(더구나 리더도 죽음을 원하고 있었으니), 거래는 이미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놀라운 이야기를 모두 들려준 리더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연기(延期)하고 싶은 연민이 아니라, 그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삶이라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아오마메와 덴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1Q84년의 시간성 안에 들어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갈구하게 되었지만, 그 안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니.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공기 번데기의 모습이 그들에게 보이기 시작하고, 리틀 피플의 존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옴을 느낄 때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도). 그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떠 오른 이상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관심이 가면서도, 여전히 리틀 피플의 존재와 풀리지 않는 의미는 수두룩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아오마메와 덴고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 해도, 이미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1Q84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여전히 궁금증은 많이 남아있다.

 

  후카에리를 통해 아오마메가 덴고를 찾아 낼 것이라고 했고, 또 아오마메가 숨어 있는 빌라의 놀이터에서 두 개의 달을 보고 있는 덴고를 봤기 때문에 둘의 만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 같지 않고, 그들을 둘러싼 너무나 광활한 세계에 어떻게 손을 뻗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왜 그렇게밖에 만날 수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보다, 그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할 뿐이다. 둘의 존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해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 투성이고, 평이한 결말로 이끌어 가지 않을 거라는 느낌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그들과 또 다른 세계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켜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만 들 뿐이다. 하지만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고, 만나기를 갈망하고 있으니 그 이외의 복잡한 것은 잠시 접어두고 둘의 행보에 주목하려 한다. 3권이 내년에 나온다는 말에 기다리기 싫어 불만을 토로했건만. 그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안에서 아오마메와 덴고, 1Q84의 세계가 아주 오래 머무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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