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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어깨가 움츠러들면서, 동시에 마음도 더 휑해진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늘 그렇듯,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인가 보다. 거리를 걸으면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온통 쓸쓸함뿐이다. 꿈속에서조차 쓸쓸함을 이기지 못한 나를 보면서 나는 현재 어디로 향하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가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아마도 한 여인이 10살 때 사랑했다던 사람을 29살이 되도록(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내 나이다.)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신세한탄이 더 늘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오마메란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여인은, 상대방(덴고)이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에 개의치 않고, 언젠간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하는 것인지, 나에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에 한탄하는 것인지 헷갈리긴 하지만, 아오마메 덕분에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여지를 마련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아오마메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5년 만에 내 놓은 소설의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의 작품을 읽는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라 그의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나름대로의 평가가 있을 법도 하지만, 내가 읽은 작품은 7년 전에 만난 <상실의 시대>가 전부다. 무척 흡인력 있었으나 일본문학이 지금처럼 국내에 번성하지 않은 때라 이질적인 낯섦이 지배적이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마주하고도 편견 없이 읽어 낼 자신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그대로 드러내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기억으로 인한 편견은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기 마련이라 깨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 평정을 유지하면서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나가려고 했고, 막상 <1Q84> 1권을 읽고 나니 긴장의 터널을 차분하게 지나온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5년 만의 신작이라곤 하지만, 내게는 7년 만의 해후이기 때문에 소설 속의 모든 것이 나를 곤두서게 만들었다. 소설의 구성은 물론이고, 묘사와 어휘 하나에도 하루키란 작가의 내면을 느끼려 애를 썼다. 그러나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그의 문체, 소설 속의 인물과 흐름은 자연스레 내게 덧입혀 졌다. 꼼꼼히 읽다 보니, 신선한 어휘에 빙그레 웃음을 짓기도 하고(어떻게 번역체에 이런 어휘를 썼을까 싶을 정도로 상큼했다.), 쉼 없이 빨려 들어가는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었다. 단락을 나눠 처음부터 끝까지 아오마메와 덴고의 시선을 따라가는 구성도 무척 독특했다. 아오마메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단락이 끝나면 아쉬워했고, 덴고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오마메를 잊은 채 그를 따라가기 바빴다. 아오마메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덴고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오마메에 관한 아쉬움을 덴고가 채워주는 식이었다.
또한 둘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아오마메와 덴고가 소설의 중점에 있었으므로, 그들이 언젠가는 만나고 사랑을 할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을 읽어나가도 그들이 만날 가능성은 희박해져만 갔고, 아오마메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듯 조금씩 현실에서 비켜가고 있었다. 1984년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점차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사회의 흐름을 알게 되고, 자신의 또 다른 일(살인 청부)로 인해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이던 두 사람의 삶은 덴고의 기억의 펼쳐짐으로 인해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한 소녀를 보고 10살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속의 소녀가 아오마메였다는 것을 후에 그녀의 회상으로 알게 된다. 그들이 만나게 될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을 알아차리지만 그 만남은 여전히 더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으며(그럴 틈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만나게 될 것인가에 대해 아오마메 못지않은 기대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가능성을 미리 엿보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방향 때문이었다. 입시학원 수학교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는 덴고와, 스포츠클럽에서 일하면서 은밀한 살인 청부업자이기도 한 그녀에게서 공통점을 찾아내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다. 공통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닮은 점이나 그들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는 암시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들의 내면은 낱낱이 공개되어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두 개의 이야기를 읽는 듯 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이여서인지(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그런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조금씩 간격이 좁아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덴고는 자신이 쓴 소설로 신인상 응모를 하다 알게 된 편집자 고마쓰에게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된다. 신인상을 주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강렬한 끌림을 갖는 17세 소녀 후카에리가 쓴 <공기 번데기>란 작품을 고쳐 쓰라는 제안이었다. 덴고는 큰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소설을 고쳐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결국 덴고가 고쳐 쓴 소설은 신인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후카에리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후카에리의 삶과 그의 부모, 부모가 속한 코뮌 형태의 공동생활을 알아갈수록 후에 어떠한 파문을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반면 스포츠클럽에서 만난 노부인의 부탁으로 인간쓰레기 같은 남자들을 제거하던 아오마메는 처참한 몰골을 한 10살 소녀를 알게 된다. 노부인은 그 소녀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없애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그가 바로 후카에리의 부모가 중심이 된, 지금은 교단으로 탈바꿈을 '선구'의 리더였다. 그러나 덴고가 알아가는 '선구'와 아오마메가 알아가는 '선구'의 실체는 거의 드러난 것이 없었다(리더가 여전히 후카에리의 아버지인지도 조차). 단지 <공기 번데기>로 인해 그들이 만나게 되고,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짐작만 있을 뿐이다. <공기 번데기>에서 나오는 기이한 현상들이(이를테면 리틀 피플이 공기 번데기를 만들 때 달이 두개 떠오르는 장면. 그게 사실일까 싶지만 소설 속에 리틀 피플이 몸을 키우는 장면이 묘사된다.) 아오마메 눈에 보였다는 것이 바탕이 되어 주었다.
줄거리를 간추린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책의 배경이 된 1984년에서 현재와의 간격을 잊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얽혀 있었다. 비현실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냄새를 풍기는 종교와 과거의 정치적 혼란, 두 사람의 암울한 어린 시절은 결코 밝은 빛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둠의 나락으로도 데려가지 않으면서도 수긍할 수도 없고, 구경꾼의 위치에서 바라볼 뿐 존재의 이입이 되지 않는 소설이었다. 거기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연결고리로 '나'란 존재는 물론 현실 세계를 하찮게 만들기도 했다. 덴고가 연상 녀와 섹스를 즐기는 것, 아오마메가 종종 섹스 상대를 물색해 쾌락을 즐기는 것과 노골적인 묘사들이 언짢으면서도,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의 견고함에 깊은 푸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2권에서 그들의 행보가 어떻게 펼쳐질지, 또한 내년 여름으로 출간이 예정된 3권에 대한 기다림이 벌써부터 기대되고 걱정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이슈를 낳고, 인기를 끄는 작가와 작품이 아닌, 단 한 사람의 독자인 '나'에게 어떻게 뿌리를 내리는가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키란 작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이 고대되고, 책 속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거기다 편집자(고마쓰)와 작가 지망생(덴고)을 통해 일러주는 글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과 노하우가 내게 흡수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쏟아내고 쏟아내도, 그가 펼쳐놓은 세계의 발치에도 못 닿는 느낌을 어찌해야 하는지 나는 감당조차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