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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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절정을 향해가고 있는 요즘, 나는 아주 심하게 가을을 타고 있다. 식욕도 없고, 마음은 쓸쓸하고, 모든 것이 흥미가 없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있다. 밤마다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대책 없음에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무조건 가을 탓으로 돌리기엔 뭔가 미심쩍었지만, 구구절절이 원인을 따지기보다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기기로 했다. 가을에는 감정이 민감해져서인지, 그 감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책들을 찾게 된다. 그런 장르의 책들은 수필, 산문, 시, 미술책 등을 꼽을 수 있는데(나의 취향 상) 이번에는 시집이 가장 먼저 끌렸다. 작년 여름,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서점에서 구입한 문태준의 시집을 꺼내들면서, 이 가을에 어울리는 독서를 한다는 뿌듯함보다 드디어 이 시집을 읽게 된다는 후련함이 더 짙었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의 신간 시집보다 먼저 읽고 싶었다. 그래도 선뜻 읽기가 망설여졌는데, 김연수의 책을 읽다 지인이 문태준 시인과 동창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각자의 문학의 비교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동창이었다고 하니, 안 그래도 가던 관심이 증폭된 것이었다. 계기가 조금 엉뚱하다 싶었지만, 그렇게라도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이 허전하다고 펼친 시집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시를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어 현실세계의 낯섦에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에서 먼저 나의 시선을 찔렀던 것은 한자였다. 한자가 섞여 있을 거라 전혀 예측하지 못한 나는, 종종 드러난 한자 때문에 흐름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한자가 많이 섞여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읽을 수 있는 한자도 많았지만, 한글의 의미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벽을 만나버린 기분이었다. 모르는 한자를 찾아 읽을 바지런함도 발휘할 수 없어, 내 멋대로 읽다보니 저자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망쳐버린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큰 문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기에, 한자를 모르는 나의 무지를 탓하며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비교적 수월하게 읽어 나갔다.

 

  문태준의 시집을 읽었지만, 어떠한 느낌이 드는지 나 또한 알 수 없어 생각보다 잡설이 길어지고 많았다. 시를 읽을 때마다 시의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하고 읽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수능 공부한다고 듣는 인터넷 강의에서는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어, 그 가르침이 각인이 되었음에도, 정작 내게 있는 시집을 읽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읽는 것을 보고 약간 민망해졌다. 한 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 것이기에 최소한 어떠한 시선으로 쓰였는지 배려를 해야 함에도, 몰이해를 드러내는 읽기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읽더라도 어떠한 분위기다는 느낌이 오기 마련인데, 문태준의 시집은 한 없이 흩뿌려지고 말았다. 언어가 탄생이 되자마자 세상 속으로 점점이 흩어져 버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그것은 어쩌면 해설가 이광호님의 말처럼 '문태준 시학의 개별성을 무화시키는 덕목'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을 보아도 깊이 있는 분석을 이해하지 못하는 터라 온전히 이해했다고, 동조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똑같은 시를 읽음에도 이렇게 다른 느낌의 엇갈림이 낯설 뿐이다. 분명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는 한번쯤은 품었을 법한, 또한 내가 발견하지 못한 일상에 대한 소소함이 드러나 있어 공감을 했던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덮고 난 후에는 내게 남아 있는 이미지라든가, 여운이 없어 당황하고 만 것이다. <시월에> 라는 시에서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의 구절을 보고 멈칫 했던 이유도, <빈집의 약속>에서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란 구절이 마음 깊이 와 닿았던 이유가 분명 있었다. 같은 방향은 아닐지라도 삶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하고, 느꼈을 감정을 이토록 고요하게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에 대한 감탄과 다가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인 <가재미>란 시에서도 또한 수많은 다른 시에서도 앞에서 예를 들었던 공감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저자만의 세계에 온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허우적거리다 온 나에게,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그의 시가 어떠했다고 단정 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고,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그의 시에서 무엇이 좋았노라 칭찬할 수 없어도 처음으로 마주한 문태준 시인의 시는 나쁘지 않았다. 여전히 시라는 문학 장르는 나에게 어렵고 흔적을 남겨주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많지만, 시와의 만남을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알지 못하는, 혹은 알고 있음에도 접하지 못한 시인들이 너무나 많고, 시가 난해하더라도 억지스레 써 내려가는 이런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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