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번민이 굉장히 낯설게 다가오던 경험. 지금의 내가 그렇다. 책을 펼치기 전에 들었던 온갖 잡다한 생각과 고민들이 썰물 빠지듯 쑥 빠져나가 버렸다. 마치 몸이 아프기 전에 들었던 자질구레한 삶의 푸념들이, 막상 아프고 나니 건강만 되찾는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순간적인 다짐처럼 또 다른 나를 돌아볼 여유가 아직 없는 것 같다. 무엇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무엇이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해 주었던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면서도 담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가는 한 소년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는 와타루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달랐다. 갈색 머리를 한 외모부터 남달랐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수업시간에 얌전히 있질 못했다. 뛰어나가고 싶어 다리는 근질거렸고, 그런 와타루의 행동을 탐탁하게 여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와타루의 남다름은 그렇게 유치원시절부터 드러났고, 달릴 때에만 숨통이 트이는 듯 해 혼란스럽기는 와타루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소에 다니는 엄마와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자(母子)는 동네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배 도둑, 창녀, 튀기 등 낯부끄러운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와타루는 늘 혼자였다. 자신의 외모가 왜 그렇게 다른지, 왜 아버지는 없는지,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과 물음이 와타루에게는 어릴 적부터 따라다녔음에도 무엇 하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대답은 자신을 낳아준 엄마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모든 것을 감수한 채 와타루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도 아직은 말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가 젊은 시절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의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연구센터에 계셨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엄마의 방에서 발견된 기사를 보고 자신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유학하던 시절 시베리아 빙하에서 1만 2천 년 전의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로 와타루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엄마가 유학하던 시기와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추측을 앞세워, 엄마가 시골에서 자신을 키울 수밖에 없노라고, 그래서 자신은 이렇게 남들과 다른 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와타루가 그 기사를 읽고, 나름대로 추측할 때마다 나 또한 가능성이 없지만은 않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와타루 엄마가 연구원이었다는 사실과, 와타루는 외모부터 내면의 기질까지 다른 아이들과 달랐고(모든 아이들이 같을 수 없음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고, 후에 보통 소년으로 자라나는 와타루를 보게 나로써도 괜히 미안해지는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달리기를 해야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그제야 실마리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런 실마리는 500페이지가 가까운 책의 초반에 드러났고, 만약 와타루가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면 나머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와타루도 자신의 존재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난 뒤, 자신의 기이한 행동과 내면을 어느 정도 다스리며 크로마뇽인 자식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매머드를 사냥하는 상상을 하며, 돌칼과 창을 만드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와타루의 내면에 잠식해 있는 외로움은 어느 정도 걷히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와타루가 성장해감에 따라 이 소설은 한 소년의 태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직감하게 됐다. 그리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는 생각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어릴적 부터 남들과 다르긴 했어도 와타루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소설 속에서 와타루의 솔직하고 담담한 내면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와타루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유쾌하진 않았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우울하게 몰아가지도 않았다. 와타루의 내면을 지켜본 초반에는 와타루가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육상에 뛰어난 자질을 드러냈을 때는 달리기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저지를 거라는 묘한 흥분이 일었다. 그러나 서서히 보통 아이의 모습을 드러내는 와타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좀 특별한 과정일 뿐이라고, 많이 외로우며, 아버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나름대로의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와타루를 지켜보는 것이 점점 마음 아파질 것이 뻔했다.

 

  그런 와타루에게도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고 여기고 동네 산에서 돌칼을 만들던 시절, 동네로 이사 온 사치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사치는 와타루의 외모와 독특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와타루에게 첫 친구가 되어 주었다. 사치의 등장으로 와타루의 학교생활이 조금은 윤택(?)해 진 것도 같았다. 아이들의 놀림에도, 무관심에도, 또한 갑작스런 관심에도 적응할 수 있게 되었고 사치와의 관계도 끊길 듯 말듯 이어지는 것이 단순한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았다(사치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음에도 그들은 연인이 된다). 그 무렵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사냥개 쿠로를 기르고 있었기에 와타루에겐 그간의 삶에서 가장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육상에 소질을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씩 한계를 맞이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듯 보였으나 어떤 것도 와타루의 미래라고 단정 지을 만한 것은 없었다.

 

  체육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좌절되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와타루가 담담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도 와타루의 담담함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와타루의 내면으로 채워진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와타루의 성격과 특이사항을 알게 되었고, 거기다 성장해가는 십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아서 편안하게 와타루의 삶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비로소 밝혀진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들었을 때도, 진짜 아버지와 자신이 믿고 있던 아버지를 찾아 시베리아로 갔을 때도 담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와타루의 내면이야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아프고 아렸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향해서 가는 모습에 되레 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와타루의 평탄치 않은 삶이었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올곧아 가려는 모습과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충만함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와타루는 기사에서 보았던 크로마뇽인(사실은 4500전의 미라로 밝혀진)과 자신의 친 아버지를 찾아 시베리아로 간다. 어차피 엄마를 혼자 일본으로 떠나게 만든 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담담했다. 그러나 어리시절 자신의 아버지로 믿고 있었던 아이스 맨을 향해 향수 짙은 말들을 뱉어낸다. 아버지가 필요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를 갖고 싶었다던 혼자만의 고백이 마음 찡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스 맨을 다시 빙하로 되돌아가게 만들고 싶어, 미라를 훔쳐서 나온 와타루는 자신을 찾아 따라온 사치와 함께 온통 눈뿐인 설원을 향해 나아간다. 와타루의 곁에 사치가 있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예감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힘겨운 성장 과정을 거친 와타루에게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경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성장소설을 좋아하지만, 이 책이 내게 선택된 이유는 순전히 작가 때문이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오로로 콩밭에서 붙잡아서>를 읽고, 좋아서 기억해 두었던 작가인데 이번에 신간이 나와서 읽게 된 것이다. 이 책 또한 내가 좋아하는 성장소설이서 좋았고, 독특한 소재로 자아를 찾아 나가는 와타루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어서 그것 또한 좋았다. 누구나 거치게 되는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광활한 내면의 바다를 통해 독자에게도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65억 인구의 1명뿐인 작은 존재라고 해도,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지구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구성원에 한 몫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반대로 너무 작은 존재여서 쉽게 묻혀 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와타루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신이 향하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란 존재가 지구 안에 맴도는 먼지보다 못한 존재라도 오늘을 맞이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다는 것에 감사가 절로 터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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