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아 -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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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에는 아직 선택되지 못한 책과 작가들이 참 많다. 관심이 있어서, 어느 책에선가 보아서, 다른 사람들의 추천으로 그러모으게 된 책들임에도 다시 나의 관심을 받기란 무척 힘들다. 읽고 싶은 책은 늘어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그 책들을 읽기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간혹 호기심 발동으로 인해 재조명 되는 작가가 있는데, 존 버거가 그랬다. 존 버거의 신간 소설을 한 편 읽은 후, 책장에 숨겨진 그의 책을 꺼냈음은 물론 구입하지 않은 도서들을 샅샅이 찾아 구비했다. 그렇게 책을 갖춰놓고 보니 무척 든든했지만, 읽기가 녹록치 않은 작가라 무척 느린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 존 버거의 글이 넘나드는 장르는 너무나 다양해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것 같다.
 

  <행운아>는 사진가 장 모르와 함께 작업한 영국의 한 시골의사 사샬에 관한 에세이였다. 소재부터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사에 대한 에세이에 왜 사진가가 함께 등장하는지, 어떠한 의사기에 존 버거가 에세이를 쓰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존 버거의 글을 읽어보았다면 내가 가진 의문들이 속 시원히 풀려질 거라 기대하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존 버거는 글에서 그런 내용을 비추긴 했어도,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또렷이 밝혀주지 않았다. 시골의사 사샬을 통해서 그가 하는 일, 더불어 존 버거가 피력하고자 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사샬을 보고 있노라면 시골에서 왜 그렇게 고생을 하는지 틀에 박힌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의사였다. 시골에서 생활하기엔 꽤 괜찮은 의사였고, 그가 담당하는 사람들만 해도 약 2000명에 이르며 밤에도 쉴 새 없이 불려나가며 피곤함이 그득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사샬은 그런 일상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산이든 들판이든 서슴지 않고 달려 나가 치료를 하는 그를 보면서, 도시에서 생활했다면 이런 삶을 만끽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그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존 버거의 말마따나 그 지역 사람들이 사샬 덕분에 얼마나 운이 좋은지도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힘든 일이 있던 지간에 사샬은 그곳에서 계속 시골의사로 일을 계속 할 것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샬은 단순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그들과 교제하며 의사이기 이전에 이웃으로써 인간관계를 맺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책의 시작에는 그가 치료가 필요한 곳에 달려가서 도움을 주는 내용들이 나와 있지만, 뒤로 갈수록 치료가 온전한 목적임이 아님을 피력하는 내용이 짙어진다. 그의 직업이 의사이기에 어떻게 사람에게 다가가고 관계를 맺어 가는지, 삶과 죽음의 연속성상에 있는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끊임없이 성찰하게 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의 시각을 통해 한 단계를 거쳐 독자에게 투영되는 사샬의 모습은 온전히 그의 모습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삶과 내면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도, 의외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수많은 연결고리 앞에서 헤매게 되기 마련이다.

 

  저자도 그런 어려움을 피력하긴 했으나, 글과 사진을 통해서 바라본 사샬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사진이 있었기에 사샬이 어떠한 모습으로 일을 하는지, 어떤 외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긴 했다. 존 버거의 글과 잘 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꾸며지지 않는 장 모르의 사진은, 사샬을 이해하는 데에 보탬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가 시골의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사진 속의 사샬이나 시골 풍경, 그의 환자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가 의사라는 사실보다 저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삶을 살아가는 헬퍼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의사의 권위적인(환자가 전적으로 의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모습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얽혀 들어가는 모습을 한 사람은 글로, 한 사람은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자는 사샬의 이야기를 하다 더 큰 영역으로 뻗어나가는 기지를 발휘해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사샬의 이야기와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좀 난해하긴 해도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것이 정확히 무언인지 알지 못하기에 그의 책을 통해 좀더 알아가려 했는데, 이 책의 옮긴이가 명쾌하게 설명해 주어 잠시 멍해지기도 했다. 옮긴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존 버거를 이야기할 때마다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감정의 움직임을 사회·경제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작가' 라고 말한다고 한다. 내가 가진 생각을 또렷이 수면에 올려 보내지 못하고 의뭉스럽게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렇게 단박에 설명하다니. 존 버거의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기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사샬에 대한 이야기 안에도 그런 능력이 어김없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런 사샬의 내면과 삶, 그리고 저자의 뜻을 내가 간추린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에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남기고 있지만,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이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조차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두껍지 않고, 사진도 많을 뿐더러, 에세이이기에 읽기가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존 버거의 책이 늘 그렇듯(지금껏 몇 권의 책을 읽어왔지만, 녹록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쉽게 간과하며 재빠르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작은 책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한 사람의 삶과 일상을 담은 듯 소소한 것 같아도,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는 독자를 혼란스럽게도 만들며 생각할 여지를 뭉뚱그려 건네주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이해가 느리거나, 포괄적으로 독서를 하지 못한 나 같은 독자에게 존 버거의 글은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그런 어려움이 나를 끌어당겨 그의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은 책에서 보여준 한 시골의사의 삶을 통해 저자의 또 다른 저력을 맛보았음은 물론, 저자와 같은 시선에서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자꾸 그가 남긴 메시지를 좇게 된다. 아마 그것 때문에 존 버거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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