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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우첼로 - 원근법을 사랑한 화가 ㅣ 내 손안의 미술관 7
엘케 폰 라치프스키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파올로 우첼로를 알게 된 것은 존 버거의 글 때문이었다. 존 버거의 책을 읽다 파올로 우첼로의 그림을 비평하는 글을 보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바로 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내 책장에 쌓인 수많은 책들의 운명처럼, 책을 구입한지는 2년이 훨씬 지나 있었다. <카라바조>를 읽고 나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샘솟아 꺼내 들었는데 그 긴 공백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재미나게 읽어 버렸다.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를 두 권을 읽은 상태에서 세 번째로 마주해서인지 독특한 구성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을 통해 파올로 우첼로를 알았다기보다,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흘러가는 가운데 파올로 우첼로를 만났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내 손안의 미술관' 시리즈는 화가가 중심 선상에 있긴 하지만 화가만 콕 집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화가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훑고 지나가면서 어떠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려 나갔는지를 꿰어 맞추듯이 풀어 나간다. 파올로 우첼로에 대해서 온전히 알아가길 원했던 독자라면 이러한 구성에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 있다. 나 역시 이 시리즈를 처음 대했을 때 그랬고, 과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단편적으로 한 인물에 대해서 끌어내기보다 주변 환경과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서 여러 가지를 보여 주는 것은 독특한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화가의 인생 전반에 걸친 많은 것들을 한 권의 책을 읽어도 부족한데, 오히려 조연이 되고 있으니 자칫 방심했다간 화가의 행방을 놓칠 수도 있다.
책의 시작은 파올로 우첼로와 연관성이 있긴 하지만, 그의 등장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의 그림 가운데 유명한 <산로마노 기마전투> 연작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시작한다. 피렌체에서 태어난 우첼로였기에 그 당시의 피렌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거대한 <산로마노기마전투>를 주문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부터 책은 시작된다. 당시 피렌체에서 큰 상인이자 은행가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시에나 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그 상황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전쟁 상황을 사실적으로 남기고 싶어 했던 코시모는 원근법에 뛰어나다고 소문난 우첼로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걸고 싶은 그림의 특징을 쭉 설명해 가면서 그림에 필요한 모든 것에 아낌없는 후원을 하겠다고 말한다. 쟁쟁한 화가들이 많았던 피렌체에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우첼로가 코시모의 눈에 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로 원근법에 의한 화법이 새로운 회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던 때에 원근법을 잘 살린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우첼로는 <산로마노 기마전투>에서 원근법에 의해 그림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술의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근법에 의한 그림을 그린 것이 우첼로가 최초가 아니었음에도 원근법과 기하학을 이용해 실감 있게 그려낸 화가는 우첼로가 독보적이었다. 당시 최고의 조각가였던 기베르티 공방에서 7년 동안 수학한 그는 말이 없고, 고집쟁이였으나 한 번 무언가에 빠지면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 있었다. 우첼로는 원근법에 순식간에 매료되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그림을 그린다. 실전보다 이론에 중점을 둔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원근법과 기하학 등 다양한 이론을 제대로 섭렵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예술가로서 자질 부족을 의미했다. 공방에서 수학하더라도 지금과는 무척 다른 공부가 많았지만(자질구레한 일들만 몇 년씩 거듭하기도 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원근법에 의한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기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우첼로의 그림세계에 대한 많은 설명보다 그 시대를 통째로 끌고 가는 분위기 덕에 원근법과 피렌체, 당시의 예술에 대한 분위기 접근이 더 용이할지도 모른다. 우첼로의 그림보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비교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았고, 15세기 피렌체의 모습을 엿보는 시간도 많았다. 저자는 우첼로의 그림을 보려면 제대로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면서 그림 보는 법, 그림을 읽는 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후에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인상주의에 대한 그림이 드물었기에 주로 인물이나 건축물에 대한 그림이 많았다. 원근법이 새롭게 대두된 만큼 원근법에 자연물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첼로의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중세미술을 어느 정도 답습하고 그 안에 자신의 그림방식을 집어넣긴 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건데 조금은 뻣뻣하고 두루뭉술한 그림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는 내가 15세기의 원근법을 보고 감탄을 터트리기엔 무리가 있으나,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파올로 우첼로가 그린 피렌체의 대성당 벽화인 기마상을 보고 뒷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감탄하며 원근법을 공부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15세기 초와 중부의 미술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우첼로의 그림은 미술사에 또 다른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당시에는 조롱을 받기도 하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원근법을 너무나 사랑한 우첼로의 열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정됐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파올로 우첼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더라도, 우첼로가 살았던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당시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