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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6
질 랑베르 지음, 문경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평점 :
침대에서 하릴없이 뒹굴다 보면 3면이 책으로 둘러싸여서 그런지 온통 책 밖에 안 보이는 방 구조에 늘 흐뭇하다. 그러나 시선이 한정 되어 있어서인지 나의 눈높이가 닿는 책장에만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조만간 책장의 책들 위치를 좀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만날 보는 책만 보고 있으니 안 읽었으면서도 읽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에 반해 자꾸 쳐다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 손을 뻗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기적으로 책장의 책들을 바꿔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의 시선이 자주 가는 책장의 책들은 산문, 미술, 순서를 지켜서 읽어야 할 책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책장에서만 골라보는 책들이 많아졌는데, 오랜만에 미술에 관해 모아둔 책들에 시선을 돌렸다. 오랫동안 미술 장르에 관한 책을 읽지 못해서인지 보는 것만도 반가웠다. 여러 책들을 꺼내서 훑어보다 어느 책에선가 보고 구입한 <카라바조>를 읽기 시작했다.
미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오로지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관련된 책을 잔뜩 구비하고 있다. 세 칸의 책들에 빽빽이 꽂힌 미술에 관한 책들은 주인의 손길을 받지 못하다가, <카라바조>를 시작으로 다시 나의 관심을 받고 있다. <카라바조>를 읽으니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 며칠 동안 열심히 책장을 둘러 봤지만, 역시 꺼내다 넣어다를 반복할 뿐 한 권의 책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미술에 관심을 돌린 것이 내심 반가울 뿐이다. 책도 재미있었고, 오랜만에 그림을 실컷 구경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읽기와 보기를 병행하는 미술 책이 한 권씩 나를 거쳐 갈 때마다 내 안에 쌓인 것은 무엇인지 공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선은 이런 관심 안에서만 만족하기로 하고, 다시 일어난 관심을 좀 더 지켜가기로 했다.
종종 한 사람의 삶을 알아가다 보면 희열보다는 안타까움이 많이 들 때가 있다. 그가 좀 더 나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마음속의 열정을 끝까지 가지고 있었더라면, 자신을 잘 다스렸다면 좋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다. 카라바조 역시 그랬다. 카라바조는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 이름이고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인 그는 당시에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불한당 같은 행동을 많이 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 다른 화가들로부터 질투심을 많이 불러 일으켰다. 거기까지였다면 인간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싸움쟁이에 주정뱅이인 그는 감옥에 갇히는 일이 많았고, 결국 감옥에서 탈출해서 떠돌다 로마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타살일 가능성도 높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못해 역경에 역경이 거듭 그를 둘러싸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만큼 그의 화가로서의 능력도, 그에 관한 기록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도 어쩜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했겠지만, 신비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그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기까지는 3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9세기 말 비평가 로베르토 롱기 덕분이라고 하는데, 발레리의 비서였던 앙드레 버른 조프루아는 "한마디로 말해, 르네상스 직후 카라바조와 더불어 근대 회화가 시작되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어느 시대에 활동을 했든, 어떠한 사연을 가지고 있던 지간에 먼저 그의 그림을 보면 발레리의 비서의 말이 과찬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요즘에야 회화에 대한 사람들이 시각이 많이 넓어지고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의견을 내 놓을 수 있지만, 카라바조가 어떤 시대에 활동했는지 알지 못한 채 그의 그림을 본다면 익숙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롱기는 "그가 없었다면 리베라, 베르메르, 조르주 드라 투르, 그리고 렘브란트는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마네의 그림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뒷날 바로크 예술이라 이름 붙는 시기의 정점인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였던 시대에 활동했던 카라바조는 천재성과 동시에 파문을 몰고 다니는 화가였다.
카라바조의 화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빛의 처리다. 명암법의 효과를 발견하게 해준 인물은 조바니 지롤라모 사볼도라고 추측하는데, 그런 인물과의 만남에 카라바조의 천재성을 덧붙이니 훌륭한 그림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했다. 빛의 화기인 렘브란트의 미래를 점쳐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명암처리가 뚜렷해, 무척 사실적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순탄치 못했던 삶이 너무나 안타깝다. 경제적인 이유, 명예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다 결국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그였기에 그의 그림들은 익숙하면서도 무언지 모를 어둠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리기도 했는데, 아프거나 늙고 지친 자신의 모습이 많았다. 그림 속에 묻히듯이 드러나 있는 자신의 존재를 그만큼 슬프게 그려낸 화가가 있었던가. 카라바조의 화풍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순탄치 못한 삶을 산 그를 보는 시선이 촉촉해 질 수밖에 없다.
그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해서 일어난 파문도 많았지만, 충격적인 그림 때문에 일어난 파문도 많았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의 주선 가운데 교회에 쓰일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그림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도 많아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나의 식견이 짧아서 그림 속에 어떠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 당시의 배경에 어울릴법한 그림인지 아닌지를 설명을 들으면서도 확연히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의 그림이 파격적이라는 생각보다 무척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종교화에는 신성적인 면이 어느 정도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렇게까지 팍팍하게 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카라바조는 그들과의 타협을 잘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점의 종교화 덕에 그의 명성이 더 높아질 때도 있었지만, 그나마 황금기였던 그의 짧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그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한 성장을 보이지만 그는 삶을 빨리 마감하는 쪽으로 인생을 몰아가고 있었다. 무엇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그의 고난은 그칠 줄을 몰랐으며, 따지고 보면 그의 고난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그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좀 더 보살펴 주고, 자신을 다스렸더라면 훌륭한 그림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재조명 되어 그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이후에 나타난 화가들의 발자취를 캐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됨됨이를 알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평가보다, 작품 속에 녹아든 삶에 대한 광기와 치열함, 천재성을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