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ABC 타샤 튜더 클래식 8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기다리는 것만큼 설레는 것이 있을까. 가끔 현존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고전의 향연도 만만치 않지만 동시대에 같이 숨 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쏟아낸 글을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 되어 준다. 그런 작가들이 몇몇 있는데, 그 가운데 좀 독특한 타샤 튜더 할머니도 포함된다. 작년에 고인이 되셨지만, 타샤 할머니가 쓰고 그린 동화책들이 한 권씩 발행이 되면서 또 다른 기다림이 되었다. 타샤 할머니의 삶에 관한 책은 이미 탐독한 터라 동화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내게는 무척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껏 동화책을 구입해 본 적이 없었는데, 타샤 할머니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동화책을 처음으로 구입해 보았고, 읽고 조카를 주기보다 내 책장에 고이 모셔놓고 종종 꺼내 보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타샤 할머니가 알려주는 알파벳 책이 발행되어서 너무 기뻤다. 겉표지도 너무나 예쁜 핑크였고 그 안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화책 가운데서 이렇게 여성스러운 향기를 풍기는 책은 쳐다보지 않던 내가 타샤 할머니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생각하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펼쳐 보니 애너벨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타샤 할머니는 아이들이 인형 애너벨과 노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꼬마 숙녀들만을 위한 알파벳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동화책은 인형을 좋아하는 꼬마 숙녀들에게 최고의 책이 될 것이고, 나처럼 여성스럽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독자라면 담 넘어 불구경 하듯 멀뚱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타샤 할머니의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구경만으로도 충분했다. 애너벨이 어떠한 알파벳을 알려주는지 잠시 제쳐둔 채, 타샤 할머니가 그린 애너벨과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인형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여기에 나온 알파벳이 아주 머리에 쏙쏙 들어올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의 알파벳은 애너벨이 만들어 낸 단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알파벳으로 만들 수 있는 단어가 무수한 만큼, 애너벨이 만들어 낸 단어들은 애너벨의 세계에 적합한 단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생소한 단어가 많았다. 영어 단어에 원래 약한 나여서 이 짧은 알파벳 책을 보면서도 헉헉 댔을 정도여서 잠시 내가 한심해 지기도 했다. 그러나 타샤 할머니의 말처럼 꼬마 숙녀들을 위해 만든 이야기니 단어 몇 개 모른다고 한심해 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나 같은 독자를 위해서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단어를 굳이 모르더라도 타샤 할머니의 그림을 보면 얼추 연결 지어 볼 수 있었다. 그림으로는 알지만 단어의 뜻을 모를 때는 사전에서 찾아보면서 읽었다. 처음에는 타샤 할머니의 그림에 빠져 있다가 타샤 할머니가 언급한 단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단어를 찾아 읽으니 영어 공부도 약간 되는 것 같아 혼자 뿌듯해 했다.

 

  타샤 할머니의 다른 동화책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단어를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해석과 함께 원 단어를 실어 놓아서 단어를 찾아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를 테면 'C는 조심스레 꺼내는 Cloak' 이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Cloak이 무엇인지 그림으로는 알지만 정확한 뜻을 몰라 찾아보게 되었다. 아이들도 나처럼 그림을 보며 단어를 추측해 보며 책을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형식은 타샤 할머니의 다른 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샤 할머니만의 독특한 테두리 그림 안에는 타샤 할머니가 드러내고자 하는 단어의 사물과 함께 원문의 문장이 실려 있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애너벨과 아이들이 함께 사물을 드러내는 그림과 함께 예시를 들었던 해석이 실려 있었다. 그림 속의 애너벨과 아이들은 흑백과 컬러로 나타나기도 하고, 애너벨이 주인공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타샤 할머니가 탄생시킨 애너벨, 그런 애너벨과 함께 노는 아이들, 그 모습을 그리는 타샤 할머니의 모습까지 투영되어 상자에 상자를 열고 계속 꺼내보며 덧입힐 수 있는 모습이 상상 되었다.

 

  그렇게 인형들의 세계에 빠지다 보면 다음 단어가 무엇이 나올까 궁금하면서도, 알파벳의 마지막 단어 'Z'가 나오니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애너벨과 이어주는 타샤 할머니만의 독특한 단어와 그림이 펼쳐진 가운데 애교스러운 문장도 있었다. 알파벳 'X'에서는 'X는 알맞은 말을 못 찾은 글자 X' 라는 문장이 그랬다. 애너벨과 타샤 할머니의 세계에서 현실적인(?) 귀여움을 발견하기도 해서 더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타샤 할머니가 알려주는 알파벳은 이렇게 끝이 나지만, 애너벨과 알파벳의 세계, 그리고 타샤 할머니만의 세계가 펼쳐지므로 언제든 책을 펼치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을 볼 때마다 타샤 할머니의 책을 읽으면서 쌓아 온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렇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늘 감사할 따름이다. 꼬마 숙녀를 위한 동화책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타샤 할머니를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책들이기에 이 만남을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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