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처럼 국내외로 유명 인사들이 숨을 많이 거둔 해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전 대통령 두 분이 돌아가셔서 그런 생각과 허전함이 더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본다고 하지만, 안타까운 죽음이었기에 서민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크리라 생각된다. 그나마 그 분들의 삶의 흔적을 남긴 책들이 출간 되어서 허전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위로가 되어 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서 읽을 정도의 열정이 내게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안타까움이 더해지리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지인이 선물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 한 권이 도착했다. 책을 보기만 해도 안타까움 때문에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을 모두 그려나간 것이 아닌 잠언집이라고 하기에 편안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들기 전 펼친 책이었는데,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정독을 하게 만드는 힘을 만나고 말았다.
 

  잠언집이라고 하기에 구구절절한 한 사람의 삶이 단편적으로 그려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짧은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는 경험이 바탕이 된 깨달음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것처럼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감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견주어 볼 수도 없지만, 내가 다가갈 수 없는 엉겁의 세월을 살아온 흔적 앞에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인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경지는 경험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을 해야만 깨닫고, 타인의 충고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경험으로 인해 알아차린 깨달음이 많았다.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힘겨운 삶의 과정을 거쳐 왔음에도 그때마다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과 출발선이 달랐고, 과정도 달랐기에 굳이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업적을 충분히 알리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우리가 겉으로만 알아온 그 분의 삶이 중심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남달랐다. 삶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 분의 내면을 파고드는 짧은 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펼친 책장의 첫 장부터 나를 멈추게 하고, 그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메모지를 붙이게 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는 말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슴을 울리는 말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진과 인내, 초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회만을 일삼는 내게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단락은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이란 부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그런 만큼 이 책 중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만들어 주었던 단락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현재 품고 있는 고민과 번뇌들을 명쾌하게 일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동질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지낸 분도 이런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용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삶을 바탕으로 일궈낸 경험이 있었기에 무심하게 훑어 내려가며 읽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하고,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너무나 먼 거리의 삶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될 때는 다시 읽어 보기로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짧은 책이었음에도 읽는 시간이 꽤 걸렸다.

 

  단편적인 글들로 깨달음을 응축해 놓은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책들에 대한 생각을 달리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청아한 울림을 받았다. '스스로 믿고, 나를 돌아보며, 하나의 가족으로, 더불어 사는' 의미를 전해 준 글이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본 분이 깨알 같은 메모들을 엮어서인지 더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엮은이도 그 메모를 보며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인생의 진실한 조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한 사람이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기록해 놓은 가까운 깨달음이기에 이 책에 실려 있는 시기와 때에 맞춰서 다시 꺼내 읽어도 느낌이 새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이란 단락에서는 부부에 대한 깨달음이 많았으므로 결혼을 앞뒀을 때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읽어도 좋지만 앞서 살아간 분이 흘려 놓은 삶의 흔적을 좇으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너무나 많은 메모지가 붙어 있어서 그 문구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이 벅찰 정도다. 개인의 삶의 방향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듯이 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자신에 관한 글들이 좋았기에 틈틈이 다시 읽어보며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읽을 때마다 다르고 내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책을 꺼내보며 고인을 생각하며 구절 속에 갇힌 숨은 뜻들을 파악해 보면 나보다 먼저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자의 지혜를 빌려올 수 있을 것 같다. 짧지만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잠언집은,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고 경험이 바탕으로 된 진실한 깨달음에 관한 책임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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