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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의 인터뷰 ㅣ 뱀파이어 연대기 1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뱀파이어 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완독하고,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를 두 권 읽고 보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또한 낯설지 않았다. 먼저 읽은 책의 소재는 같았지만 내용은 달랐기 때문에 뱀파이어 연대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면서도 21권까지 나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거기다 이 책을 읽은 지인에게 듣자하니 내가 읽은 두 종류의 뱀파이어 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두 소설의 원조 격인 <뱀파이어 연대기>는 철학적이고 심오하다고 했다. 그 말에 기대를 하면서도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책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오하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하면 인간의 피를 마시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고,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를 따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읽은 소설들 속에서도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 주요 쟁점이어서 그들의 고뇌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는 인간에서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의 존재감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대부분 뱀파이어가 된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바쁜데 자신의 의지와 달리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한 젊은이가 뱀파이어 루이스의 고백을 녹음하면서 인터뷰하는 식으로 시작이 되는데, 뱀파이어가 된 과정부터 이야기해 나간다. 뉴올리언스 저택에서 어머니와 여동생, 남동생과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던 루이스는 남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다. 삶을 포기한 채 죽음만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뱀파이어인 레스타가 찾아와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린다. 그때부터 루이스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며 끊임없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 자기와 같은 동족은 과연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레스타가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이유는 죽고 싶어 하는 루이스의 나약해진 정신세계와 레스타의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서 루이스의 저택이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레스타는 루이스를 뱀파이어로 만든 후 종 부리듯 대한다. 뱀파이어가 된 후에 인간적인 면을 거의 잃어버린 레스타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적인 생각과 고뇌가 가득한 루이스에게 레스타는 절대 살갑지 않은 존재였다. 레스타가 좀 더 깊이 있는 내면을 가지고 행동하며 자신의 고뇌를 알아주었다면 루이스는 레스타를 증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복수하듯 인간의 피를 마시며, 물질에 욕구를 떨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득의양양한 모습은 루이스에게 절대 호감을 사지 못했다. 그럼에도 피를 마셔야만 생존할 수 있는 뱀파이어이기에 루이스 또한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스는 그런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다른 종족을 만날 수 없어 레스타 곁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의 시초가 어디서부터인지, 신은 과연 뱀파이어의 존재를 생각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 대지만 레스타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 문제부터 늘 레스타와 부딪히던 중 레스타는 어린아이를 뱀파이어로 만들게 된다. 피에 대한 욕구에 혐오감을 느끼고 방황하던 루이스는 죽은 엄마 곁에 울고 있는 아이 클라우디아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마신다. 그런 루이스를 지켜보던 레스타는 루이스에게 보란 듯이 클라우디아를 뱀파이어로 만들고, 루이스도 어느 정도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세 명의 뱀파이어가 함께 했지만 그들의 생활이 평탄할 리가 없었다. 아이의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레스타에 대한 생각이 루이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클라우디아는 좀 더 과감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루이스를 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레스타를 혐오하게 된다. 그러다 레스타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독을 먹인 아이를 유인해 레스타를 죽여 늪에 수장 해 버린다. 그리고 루이스와 클라우디아는 자신들의 동족을 찾아 유럽으로 떠난다. 레스타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클라우디아의 행동을 탐탁지 않았던 루이스도 일이 그렇게 돼버린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다른 뱀파이어를 찾아 헤매는데, 그 과정이 좀 진부하게 이어진다. 영혼 없는 뱀파이어를 만나다 파리에서 드디어 자신과 같은 동족을 만나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생각하고, 그들의 우두머리에 속하는 아르망에게 시원한 답변을 요구하지만 되레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루이스가 늘 고뇌하던 존재의 근원에 대해 아르망도 많은 것을 알지 못했고, 아르망은 루이스를 본 순간 자신과 함께 할 동반자라는 것을 확신할 뿐이었다. 아르망은 클라우디아의 죽음을 예견하고, 클라우디아를 떠나 자신과 함께 하자는 충고를 한다. 그러나 과연 루이스가 클라우디아를 떠날 수 있을지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루이스와 클라우디아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으며, 뱀파이어를 만들어 준 이가 누구인지 숨기고 있었기에 다른 뱀파이어들은 그들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클라우디아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루이스를 놓아주기 위해 자신을 돌봐줄 만한 여인을 뱀파이어로 만든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루이스를 사랑하는 클라우디아는 좀 더 컸을 때 뱀파이어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고 레스타와 루이스를 원만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운명 앞에 다가온 또 다른 죽음을 예비하지 못했다. 바로 레스타가 나타난 것이다. 루이스와 클라우디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다른 뱀파이어를 선동해 레스타는 클라우디아의 목숨을 노렸다. 루이스에게는 돌아오라는 부탁을 하지만 결국 클라우디아와 그녀의 보호자인 신생 뱀파이어는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클라우디아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던 루이스는 다시 뉴올리언스로 돌아가서 레스타를 만난다. 복수를 위해서라기보다 레스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찾아가지만 이미 죽음이 레스타를 점령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모든 이야기, 루이스의 이야기부터 그가 뱀파이어가 된 이후의 삶과 사랑, 고뇌는 끝이 났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청년은 루이스의 이야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루이스는 그 길고도 고통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도 뱀파이어가 되길 원하는 젊은이의 목을 깨물지만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루이스가 다른 연대기에도 등장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좀 더 긴박한 스토리를 원했던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지지부진함을 느꼈다. 줄거리를 잡아내기에도 복잡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루이스와 고뇌와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그 반복되는 고뇌가 독자인 내게는 진부했고, 뱀파이어의 삶을 이렇게 알아갈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인간적인 면을 많이 간직한 루이스란 인물에 어느 정도 기댔으면서도 그의 우유부단함과 방황에 지칠 때가 많았다. 인간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늘 고민하기에 뱀파이어의 고뇌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 루이스는 뱀파이어란 존재에 적응 못한 자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생각한다. 인간들 삶에 동화되어 가려는 다른 뱀파이어 소설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고 존재에 대한 고뇌가 가득했던 소설인 만큼, 루이스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들이 던진 해답 없는 질문을 나 또한 던짐 셈이었다. 그러나 결코 녹록치 않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것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필요한 성찰도 반복되면 피하고 싶어지듯 진부함을 깨고 나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그 뒤에 이어질 뱀파이어 연대기가 조금 더 유쾌해지길 바라며 잠시 떠난 뱀파이어 세계의 여행을 마치려 한다.
오탈자
440쪽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과 솟국치는 연기가 내 감각을 마비시킬 것 같았다. -> 솟구치는
452쪽
그래, 나는 그를 사랑하다. ->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