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마우스 앤드 어글리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5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비룡소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컵라면을 먹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 시간까지 내가 지금 뭐하나 싶어 잠시 낯선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손에 쥐고 있는 책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게 됐다. 초반에는 조금 지지 부지하던 스토리가 흐름을 타더니, 나의 관심을 끌면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어 늦은 시간을 무릎 쓰고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왜 그렇게 배가 고픈지. 저녁을 먹고 11시에 계란 두 개를 삶아 먹고, 책을 읽다 보니 또 배가 고파 결국 컵라면을 새벽 2시에 먹고 말았다. 컵라면을 먹고 마저 책을 읽고 나니 그제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궁금증을 해소 시켰다는 개운함이 밀려와 편히 잠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눈은 안 떠지고 또 배가 고파왔다.
 

  자기 직전에 읽고 잔 책이 여서 그런지 꿈속에 맷과 어슐러가 나온 것 같기도 했다. 비교적 개운하게 눈을 뜨긴 했지만 온 몸이 뻑적지근한 게 어슐러와 농구 한 판이라고 한 것 같은 기분이다(절대 180cm 거구랑 농구할 일이 없지만.). 그러면서도 이제 다 잘 해결 되었으니 괜찮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16살 청소년들이 겪기에는 좀 무게감 있는 사건들이었던 것 같아 되레 내가 한껏 늙어버린 기분이 든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버린 듯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미완성이고 부서지기 쉬운지 맷의 일화를 통해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막 눈뜨기 시작한 청소년들에게 그런 모습을 비춰주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잘 이겨낸 맷과 어슐러에게 장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맷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한 농담을 누군가가 신고해 버려 테러리스트로 몰리게 되었다. 사복 경찰들이 찾아왔고, 아무리 설명해도 맷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어느 누구 하나 변호해 주지 않아 맷은 취조를 당하고 3일 정학까지 당하게 된다. 맷이 한 말들이 분명 농담이라는 것을 다 알았음에도 경찰까지 찾아오자 친구들은 누를 당할까봐 모두 맷을 피해 버린다. 그때 농구부의 주장이자 거구에 못생긴 소녀 어슐러 럭스는 맷이 테러리스트로 몰리는 일이 아주 웃기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지나치다 맷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보았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뉴스와 신문에까지 나오자 어슐러는 맷의 농담이 일파만파 오해된 것에 대해 분노를 터트린다. 맷의 주변의 패거리들은 물론, 교장선생님까지 맷을 변호하기보다 조사 중이라고만 했기에 어슐러가 나서기로 했다. 맷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 진실 앞에서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싫었다. 친구에게 물어 맷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낸 다음 자신이 당시에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증언이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맷은 그야말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맷이기에 대본 이야기를 하다가 장난삼아 말 한 것인데 테러리스트로 몰린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변호하고 나설 줄 알았던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 경찰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었다. 맷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정학을 당한 터라 집에서 답변 없는 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답답함 때문에 미칠 지경이던 맷에게 어슐러의 메일이 도착한다. 어슐러의 메일은 맷에게 구원 같았다. 초등학교 때 같이 학교 다녔지만 얘기를 해 본적도 없었고, 특히나 그녀의 외모가 위압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어슐러가 자신을 변호해 주겠다고 나섰으니 맷으로서는 고마움을 넘어 없던 우정이 샘솟을 정도였다. 어슐러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 맷의 무죄를 말했고 어슐러의 행동에 교장 선생님도 놀라는 눈치였다. 아무도 맷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기에 어슐러의 등장에 멈칫 하면서도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맷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학교와 동네를 시끄럽게 했던 그 사건은 잊힌 듯 했다. 그러나 예전의 맷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가장 빨리 깨달은 사람은 맷이었다. 친구들의 태도에 묘하게 경계가 느껴졌고,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서주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맷은 예전처럼 썰렁한 농담을 일삼는 일도, 클럽 활동을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맷은 상처를 받은 것이다. 평범한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았던 소년이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다시 복귀했음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았다. 유일하게 어슐러만이 자신을 변호해 주고 나서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어슐러도 맷에게 살갑게 굴지 않아 맷은 우울한 아이로 변해갔다.

 

  어슐러에게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고, 부모님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상대로 고소를 했다. 그 뒤로 어슐러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악화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돈만 밝히는 가족이라는 오해가 덧입혀진다. 맷은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이 즐겨 산책하던 곳에 간다. 그곳은 바위투성이 산이었는데 한 순간 맷은 그 아래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절제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어슐러였다. 우연히 산책하러 나온 맷을 발견하고 어슐러는 구원의 손길을 펼쳤다. 그리고 맷은 한 순간 품었던 생각을 떨쳐버린 채 어슐러의 손을 잡고 산을 내려온다. 그리고 그 뒤로 둘은 급속도라 가까워진다. 이메일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산책을 하며, 여러 곳을 함께 다닌다. 학교에서는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둘은 개의치 않았다. 농구를 잘하는 소녀지만 거구에다 못생긴데다 늘 무뚝뚝해서 친구가 없는 어슐러와 쾌활하고 평범한 소년 맷이 친구가 되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게 되었으니 어떠한 친구들보다 애틋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사건이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맷을 신고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진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맷이 아끼던 개 펌프킨이 납치되는 소동이 일어나고, 어슐러와 함께 개를 찾는데 일조한 둘은 잠깐 있었던 오해를 풀게 되며, 맷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또 다시 폭파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추적한 결과 동네에서 인심 사납기로 소문난 목사였고, 그 두 딸이 맷의 대화를 듣고 아빠에게 전해 신고를 하게 된 것이다. 목사는 체포 되었고, 부모님은 고소를 철회하고, 모든 일이 해결된 가운데 맷과 어슐러는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듯 녹록치 않은 사건으로 인해 원만하게 해결이 되긴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고등학생인 맷은 인생의 몇 년을 훌쩍 살아 버린 듯 큰 고통의 과정을 맞이했고, 다행히 어슐러를 통해서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외모로 판단하고 모두들 멀리했던 어슐러나 오해로 비롯된 사건에 언론과 폭력, 왕따가 합세해 궁지에 몰렸던 맷, 어른들의 부조를 쉽게 지나칠 수 없다. 학창시절 누구나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잘못인지도 모른 채 대중을 따라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처지였기에 어슐러와 맷이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실 되게 바라보는 시각을 발견함으로써(주변상황에 굴하지 않고 선뜻 행동에 나선 어슐러가 그랬다.) 그들이 가까워진 만큼 이런 만남이 흔하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건의 단면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저자가 흩뿌려놓은 메시지를 감지하며, 소신껏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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