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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일요일이 몹시 우울해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친구들과 악을 쓰며 놀면서 피하고 싶었던 시기. 흔히 월요병의 전초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좀 성질이 달랐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 사춘기가 가장 심했던 나로서는 일요일의 발광(?)이 늘 지나쳤었다. 그런 기억이 이제는 기억의 언저리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게 신앙이 없었다면, 아직도 일요일의 발광을 이어갔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이제는 일요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그런 마음이 아니기에 잠시 주춤했던 마음을 추스르며 연관 짓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 정도였다.
제목이 <일요일들>인 것처럼 다섯 편의 단편에는 '일요일'이라는 공통 시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도쿄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야기의 끝은 늘 민숭민숭 했다. 현재시점이라는 시각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단편 속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색다른 느낌은 별로 없었다. 한 사람의 모습을 지켜볼라치면 어느새 이야기는 끝이 나 있거나, 주인공들의 행태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왜 이렇게 살아가는지, 왜 그런 행동들을 하면서 독자를 불쾌하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추슬렀던 일요일의 발광과 함께 겹쳐지면서 책 속의 이야기는 우울한 분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만 해도 그랬다. <일요일의 운세>에 나오는 다바타는 뭐 하나 제대로 끝내는 일 없이 주변 여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녔다. 말 한마디만 제대로 했더라면 오해를 살 일도, 타박을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이며 가장 중요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자 친구에 의해 상파울루로 떠나게 되는 그에게 형은 행복하냐고 묻자 태양에 대한 비유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책 속의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이면서도 조금은 뭔가 색다른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일요일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가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는 남자, 여자들의 여행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와 복잡 미묘한 감정들, 부자간의 잊힘에 대한 사연들, 애인에게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까지 인물들만 따져 보자면 결코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안에서 각자 나름대로 느끼는 것들이 있겠지만, 도심 속에 묻힌 몇몇 사람들의 일요일은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한 형제의 이야기였다. 배낭을 메고, 굶주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들은 늘 등장했다가 도망치듯 사라지곤 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는 연속성을 띄다 마지막 단편 <일요일들>에서 베일을 벗고 완성된다. 폭력을 휘두르는 애인에게 시달리다 상담소를 찾은 노리코는 그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 중 형을 만나게 된다. 도쿄를 떠나는 그녀에게 그 형제의 만남은 그녀에게 작은 희망이 되어 주었다. 거기다 저자는 단편 속의 인물들 사연에 비슷하게 얽혀 들어가게 길을 만들고 있었다. 주인공이 이삿짐 센터에서 일을 했다면, 다른 단편에서는 똑같은 일을 하는 다른 인물이 그려지며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고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미묘한 연관성에 저자만의 독특한 구성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특별하지도 않고, 평범하다는(헷갈릴 정도로) 이미지를 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맞이하거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일요일은 뿌연 안개처럼 답답함을 안고 있었다.
내게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일요일을 대입시키다 보니 탁 트인 시야로 책을 읽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치부해도 될 이야기에 짜증을 많이 보탠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거기다 현실을 피하고 싶어 일삼는 나의 도피성 독서에서, 현실을 드러내는 소설을 만났기에 때문에 불쾌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현대인의 모습을 잘 담아놨다고 해도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사람들을 묘사한 것과 동시에, 보편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는 이중성을 담고 있어 갈피를 못 잡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시의 치열함, 일요일에 대한 기억, 사랑의 얽힘이 빠지지 않고 등장함에도 무엇 하나 기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마음이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요일을 다른 의미로 들려주려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부여에 동조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쉽지만, 내 나름대로의 일요일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므로 좀 더 풍요로운 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일요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요일, 한 달, 일 년, 일생을 바라볼 수 있는 꿈을 가진 채 현재에 충실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