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람이 몹시 불더니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져 버렸다. 낮에는 그다지 큰 차이를 못 느꼈는데 해가 떨어지고 나니 일교차가 확연히 느껴진다. 더운 날씨를 힘겨워하는 나로서는 잘 된 일이지만, 왠지 여름다운 여름을 맞이하지 못하고 보내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급변할지 몰라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의 날씨가 무척 좋다. 이불을 포근히 덮으며 잘 수 있고, 풀벌레 소리 들으며 깊은 밤에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초가을 향기가 나는 이 시기에 가장 읽기 좋은 장르를 맘껏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수필, 시, 산문 등은 내가 맞이하고 있는 현재를 한껏 느끼기에는 그만이기에 더 설레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장르별로 분류를 했는데, 위에서 말한 장르의 책이 꽤 많은 것에 놀랐다. 소설을 좋아하기에 대부분 전집이나 시리즈가 즐비한 책장에서도 가을에 읽기 좋은 책들이 많아 괜히 뿌듯했다. 그 가운데서 내 입맛에 따라 기분에 따라 골라 읽는 재미가 있으니, 잠시 책장에 쌓인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압박감을 잊을 수 있다. 그 책들 중에 간택될 가능성이 높은 책은 수필인데, 고(故)장영희 교수님 책은 0순위로 봐도 무관할 정도로 최근에 매력에 빠진 저자이다. 한 작가가 좋으면 책을 모으면서 쭉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 한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전작하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죽음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나 같은 독자에게도 읽을 기회를 주어서 참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많은 감정들을 꼼꼼히 짚어주며 위로해주는 그녀의 글. 이 책도 입소문만 들어도 읽고 싶을 정도로 칭찬이 끊이질 않아 무척 궁금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미루는 내게 말하듯, 그녀는 서문에서 "못한다고 아예 시작도 안하고, 잘 못한다고 중간에서 포기했다면 지금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라고 말했다. 철저히 나를 향한 말인 것 같아 순간적으로 든 부끄러움도 잠시 제쳐두었건만 한없이 자신감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언제쯤 나는 무언가를 해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얼른 그 마음을 접어 버리고, " '글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글들은 바로 나다.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나다." 고 말한 그녀의 '나' 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에서 그녀의 내면의 많은 부분을 보았지만, 이곳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나다'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왜 그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고 덤덤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란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두드러졌던 점은 자신의 불편한 다리와 아버지 이야기였다. 다른 책에서 본 것처럼 일상 이야기, 학교 이야기, 학생들 이야기도 많았지만 내가 말한 두 이야기가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다. 이미 불편한 몸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그런 불편함을 읽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편안함에 놀랐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거르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버려 당황스러웠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당했던 온갖 오해와 수모들을 알아가고 있노라면, '나도 저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부끄러움 보다 정신을 놓기 일쑤였다.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읽었지?'라고 반문하게 되는 적나라함. 그 안에는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에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꼬물꼬물 올라왔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 중 몸도 불편하고 옷도 허름한데, 그 사람이 박사에다 교수라면 나의 시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단박에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실수임에도, 내면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로 인해 알아 버렸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글들은 참 마음이 찡했다. 특히 영어교과서 공동 집필을 하시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아버지에 대한 추억, 마무리 작업을 했던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나 평범한 딸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 같아 많은 공감이 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떠한 분인지 몰랐던 나에게는 그 분의 업적을 알게 된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그늘이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보다 장왕록 교수의 딸로 불려도 행복했던 그녀였기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많이 그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런 아버지 곁에서 편히 있겠지만, 그녀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저 그곳에서도 이 글 속의 그녀 모습 그대로 지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녀의 많은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어도 역시 자신과 가족의 소중함을 드러내는 그들 앞에서는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늘 내 자신의 눈을 기준삼아 세상을 바라보곤 하지만 그런 기준을 무너뜨려주는 것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과 얽혀 들어갈 때에 식견을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선 자신의 이야기는 많았다. 자신이 하게 된 실수, 잘못된 시선으로 인한 오해, 일에 대한 회의감, 누구나 갖게 되는 보편적인 마음들을 하나하나 드러냈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나라면 절대 저렇게 고백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치부가 많은 나이고,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기에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왕좌왕 할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글을 읽고만 있어도 나의 마음이 정화된 느낌이 들었다. 더러운 생각과 찌꺼기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한 기분이 들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나의 내면을 에워쌌다. 허상된 것에 대한 희망을 주기보다 현재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그녀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부터 그녀의 글이 읽을게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지만, 어느 정도 찾아 읽다가 없으면 그녀가 번역해 놓은 소설, 그녀의 아버지가 번역해 놓은 소설까지 찾아 읽어 보려 한다. 번역을 하실 때 '독자가 얼마나 무서운데'의 원칙을 철칙으로 여기셨다는 선친이셨기에, 또 그런 아버지에게 배웠기에 번역한 책도 맘 놓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무서운 독자'가 아닌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 재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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