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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een_포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무실에 매일 매일 책을 들고 다니는 나로서는 갑작스런 시간을 때울 읽을 책이 없으면 당황스럽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기보다 대부분 리뷰를 쓰는 터라, 종종 읽을 책을 빠트리고 올 때가 많다. 그래봤자 늘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리뷰를 써야 할 책만이라도 소화해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늘 예기치 못한 복병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어제 갑자기 사무실 인터넷이 고장 나 버렸다. 인터넷이 안 된다는 것은 리뷰를 쓸 수도 없고(한글 프로그램에 쓸 수 있지만, 블로그에 써야 익숙하다.), 자질구레한 검색은 물론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읽을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낭패 중에 낭패다. 한참 무엇을 할까 당황하다 책상 서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미니 북 '4teen'이 떠올랐다. 2년 전에 온라인 서점 이벤트로 받은 미니 북인데, 설마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혹시 몰라 사무실에 가져다 놨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참 구구절절하다 싶지만, 그렇게 읽게 된 '4teen'은 오랜만에 이시다 이라와 조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사랑하고(?) 싶지 않은 작가라 더 기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14살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서 그 동안의 편견을 좀 내려놓고 싶었건만. 잊힌 이시다 이라의 분위기가 그대로 되살아나 버렸다. 한적했던 소쇄원에 앉아 <렌트>를 읽던 이질감. 그때의 낯섦이 스멀스멀 올라와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낯선 분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더라면 이 책을 마저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14살 소년들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생각하자 오히려 저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같은 학교 친구 인 나오토, 준, 다이, 기타가와는 늘 뭉쳐 다닌다. 그들이 뭉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포르노 잡지 덕이었다. 조로증에 걸린 나오토,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준, 뚱땡이 다이, 모든 게 보통인 기타가와(책 속의 나)는 각자의 캐릭터대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을 뿜어내기 바빴다. 포르노 잡지를 본다는 공통점으로 뭉친 만큼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성(性)의 호기심에 맞춰져 있다. 옮긴이는 이들이 '발정'의 시기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여자인 내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의 내면을 순수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이상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발정기의 분산 방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어떤 식으로 발산하는지 몰라도, 일본이라는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이 갖는(포르노 잡지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특수한 상황이므로, 이 아이들로 인해 모두 다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에) 생각과 행동들이 충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첫 이야기가 병원에 입원한 나오토를 위해 특별한 생일 선물을 준비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용돈을 모아 원조교제를 하도록 만들어준다. 그것도 병원에서 하게끔 만들고, 친구들은 핸드폰을 통해 친구의 첫 경험을 엿보려 한다. 그러나 나오토의 질병으로 섹스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조용히(배려의 마음이 있었다.) 핸드폰을 닫는다. 이런 식으로 14살 소년의 이야기는 그들의 호기심을 이해할 정도의 수준을 가지면서도 도를 넘는 소재들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거기다 14살의 소년들이 당면하기엔 좀 벅찬 내용들도 종종 보였다. 매 맞는 유부녀를 구출(?)하는 준의 이야기, 거식증 소녀와 사귀게 되는 기타가와, 임신한 여고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다이, 그들의 비밀 여행의 경로들이 과연 이들이 14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가 갖고 있는 틀(편협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에서 많이 벗어났다. 책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보다 이들이 이런 곳에만 시선을 두지 않기를 바랐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저자는 14살 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고충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고충이라는 것이 버거워 보이기는 해도 아직은 소년의 마음을 잊지 않아 아주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의사를 만나 인생의 단편을 느끼며, 학교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그랬다. 또 자전거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타가와가 '변한다는 게 무섭다.'는 말처럼, 지금의 모습과 마음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있었다. 모두들 평범해 보이는 외적인 시선 속에서도 되레 평범하기가 더 힘든 각자의 고충을 안고 있었기에, 그들의 마지막 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조로증 때문에 수명이 짧은 나오토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아버지의 죽음으로 유치장에 갇힌 다이를 향한 뜨거운 우정의 비춤이 있어 그들의 세상을 향한 뿜어냄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청소년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소년보다 어른이 되어 그 시절 갖았던 내면을 고백하지 못한 이들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쉬우나 그것을 고백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이런 고백이 건강한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른이 되고, 생각이 바뀌면서 기타가와가 말했던 '변함'을 느끼고 회의가 들지라도 이때의 경험이 현재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여성인 내가 온전히 그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발정'의 시기를 공감할 수 없었지만, 어른이건 아이이건 내면 속에 자리한 근본적인 생각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이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네 명의 아이들의 내면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거침없이 드러내는 그들의 욕망 앞에서 속수무책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내면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탈자
미니북 20 페이지
마치 페퍼민트 검을 씹는 듯한 기분이었다. -> 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