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타락천사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A. M. 젠킨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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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겉표지의 섬뜩한 소년과 책 제목은 나를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읽을까 말까를 몇 번 망설이다 책이 내게로 왔음에도 쉽게 손길이 가지 않았다. 내면에 있는 타락함을 그렸게니 생각해봐도 혹시나 우울하게 만들어 버릴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망설이다 책을 집어 들었건만, 너무나 흡인력 있게 다가오고 전혀 우울하지 않는 내용에 잠시 멍해졌다. 이런 내용이었다면 진작 읽었을 텐데, 오히려 겉표지와 책 제목이 거리감을 두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반대로 인간의 타락을 만끽(?) 하려 책을 펼쳤다면, 역시나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 이야기를 타락이라고 할 수 있을지 쉽게 결론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락천사 키리엘은 십대 소년인 숀의 육체를 훔쳤다. 훔쳤다고 표현이 적절한 것은 교통사고로 영혼이 빠져나간 그 사이에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들어오면서 진짜 숀의 영혼은 떠나갔지만(그것을 숀의 죽음이라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육체는 그대로 남아 겉의 숀은 여전히 존재했다. 물론 키리엘의 행동은 그들 세계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지옥에서 감독을 해야 하는 키리엘이 인간 세계로 내려온 것도 그렇고, 육체 탈환을 한 것도 그랬다. 키리엘의 목적 또한 불순했기에 나의 섣부른 짐작으로 결코 고운 시선을 던질 수 없는 내용들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론상으론 모든 것을 알지만 경험이 부족한 키리엘에겐 인간세계는 그야말로 호기심을 맘껏 충족할 수 있는 세계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깨달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갔다.

 

  키리엘은 십대인 소년의 육체에 들어온 만큼 그 나이 대에 생각할 수 있는 불순한 것들을 생각하고 실행해 보기로 한다. 섹스를 하고 싶어 하고, 자위를 경험하며,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십대인 만큼 숀의 관심사는 성적인 것들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는데, 키리엘 또한 경험해 본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그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키리엘이 하는 행동들과 생각들이 숀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느끼는 생리욕구라든가 자연스레 갖게 되는 다양한 인간의 조건들이 오로지 키리엘의 의지대로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숀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숀은 평상시와는 좀 달라 보일 뿐, 숀 이외의 존재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없었다. 고양이 피너츠와 숀을 좋아하는 레인 정도가 숀의 변화를 감지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키리엘의 불손했던 마음들을 하나하나 실행시키기 위해 숀의 육체를 빌어 계획을 하나씩 세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키리엘이 가장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은 섹스였는데, 자신을 좋아하는 같은 학교 학생인 레인에게 접근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는다. 오히려 레인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인간세계에서 시간마다 느끼는 모든 경험들을 만끽하는 것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옷의 느낌, 시각, 음식의 맛 등 키리엘은 인간에게 적응하기보다 이론상으론 빠삭한 것들을 경험해보는 데에 더 치중했다. 그러나 키리엘의 내면은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자신의 신분은 타락천사이고, 자신을 분명 데리러 '보스(타락천사의 우두머리)'가 나타날 것이며, 영원히 숀의 육체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숀의 육체에서 하루를 보내도 자신에게 복귀하라는 명령도, 숀이 아니라는 비난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키리엘은 숀이 살아왔던 세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숀은 함께 살고 있는 엄마와 남동생 제이슨,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베일리와 자신을 좋아하는 레인에게 초점을 맞춰 생활해 간다. 이 책은 키리엘이 숀의 몸을 빌려 3일 동안 체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정말 인간세계로 내려온 적이 없는 것 같은 타락천사가 적응해 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세했다. 또한 인간에게 느껴지는 감정에도 충실했다. 숀의 원래 모습은 그다지 살갑지도 않고, 동생과 잘 지내지 못하며,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친구라곤 베일리뿐인 평범하지만 별 특징 없는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의 몸에 키리엘이 들어갔으니, 키리엘의 인격과 습관들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숀과는 전혀 다른 행동과 생각들로 키리엘은 인간세계에서의 3일을 빠듯하게 보낸다. 3일이라는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화 되어 가는 키리엘을 보는 것은 그만큼 흥미로웠다.

 

  숀의 변화는 인간관계에서 바로 나타났다. 평상시에 잘 지내지 못했던 제이슨과 엄마를 마음 써 주며, 불순한 마음으로 접근했지만 정말 레인을 좋아하고, 학교의 말썽쟁이에게 훈계를 하는 등 평소의 숀 답지 않은 행동들을 한다. 오히려 그런 키리엘을 지켜보면서, 타락천사가 아닌 원래의 숀보다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원래의 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들어왔을 때는 몸의 주인보다 더 나쁜 행실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숀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상대방을 배려하고, 충고하고, 조금씩 정이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육체를 잃어버린 숀에 대한 안타까움은 들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키리엘이 계속 내면에 머물러 그렇게 주위 사람들과 성실하게 얽혀가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고, 불법을 저지른 채 인간세계로 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키리엘이 보여준 모습과 행동들은 10대 소년이 가질법한 것들이면서, 추락천사인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신에게 관심 받고 싶어 하며, 불평하고, 비난하고 힐난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세계에서 느끼는 작은 것들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신에 대한 감탄 일 수도 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책의 제목을 '내 안의 타락천사'(악행을 저지르는 존재가 아닌 숀 안에 자리한 키리엘 자체로도 볼 수 있지만)가 아닌 '타락천사의 인간세상 체험기' 정도로 바꿔도 될 정도로 긍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체험한 인간세계는 3일에 불과했고(3일이라는 시간이 부활과 연관 있어 보였다. 누구의 부활일까.), 처음 먹었던 불순한 마음들을 실행하지 못한 채 숀의 육체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가 숀의 육체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숀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렸는데, 천사가 나타나 숀의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려 했다. 키리엘이 숀의 육체에 들어왔던 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키리엘의 인간 세계 체험기를 끝내려 했다.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들려주지 않은 채 책은 끝이 나지만, 키리엘이 경험하고 생각한 모든 것에서 과정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하므로 결론에 와서 큰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그러나 키리엘이 '타락천사'가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세계를 살아가 주었으면 하는 갈망은 여전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숀의 정체성은 잃어버린 채, 키리엘이 들어와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자리(삶)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내 안에 들어와 평상시의 나보다 더 잘 살아간다면, 질투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기에 그것만으로 특별하므로 여전히 '나'여야 했다. 그런 것들을 따져본다면 키리엘이 경험했던 인간세계의 3일의 소중함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조금은 진부한 깨달음이 나를 지배했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현재도 내게는 무척 과분한 시간임을 감사해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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