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하룻밤의 지식여행 53
지아우딘 사르다르 지음, 이보나 에이브럼스 그림,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최근에 나로 우주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나마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워서 근처에 갈 일이 있어 겸사겸사 방문을 했는데, 역시나 흥미를 끌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고 지루했던 기억만 난다. 관심의 차이라 해도 서점을 방문한 것처럼 폴짝거리며 뛰어다닐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주에 관한 다양한 전시가 되어있음에도 담너머 불구경 하듯이 눈도장도 못 찍고 왔으면서 책장에서 빼낸 책이 '카오스'라니. 정신이 혼미해서 책장에서 책을 잘못 꺼냈나 싶을 정도로 나와는 어색한 조우였다.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하는 것이(아주 미미한 건드림에 지나지 않는 독서지만.) 즐거운 것임을 앎에도 내가 이런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과학에 '과'자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뿐더러(이런 말은 새로운 장르가 나올 때마다 내가 즐겨 들먹이는 말이다.), 과학은 학창시절에 전혀 흥미가 없었던 과목 중 하나였다. 조금씩 일상생활에서도 과학의 흥미로움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고 생각을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런 책을 보면 별 세계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나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늘 인정하게 된다.

 

  나 같은 독자를 위해서인지 이 책은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었다. 어차피 깊이 들어간다 해도 내가 이해하기는 불가능 하니 가볍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부담이 덜어졌다. 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왜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를 나조차도 알 수 없었으므로, 하룻밤에 어떠한 효과를 볼 수 있는지 가늠해 보기로 했다. 카오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라는 기본적인 뜻 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으므로 아무리 '하룻밤의 지식여행'이라고 해도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음에 멍해지고 말았다.

 

  이 책의 구성은 좀 독특했다. 카오스에 관련된 소제목과 간략한 글이 있고, 그 아래 그림이 있다. 대부분 사진에 다른 그림이 따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림 자체가 독특했다. 카오스에 관한 여러 가지를 소개하다 보니 그랬으려니 싶어도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림 안에는 말풍선이 있어 소제목에 대한 설명을 돕기도 한다. 하지만 이질감이 가득했고, 카오스에 대한 소제목에 합당한 부가설명인지 의심이 가기도 했다. 워낙 아는 것이 없어서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말풍선을 보아도 그것들을 내 머릿속에 들여 놓기란 쉽지 않았다. 카오스 현상이 흥미롭긴 하지만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발견이어서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명한 과학자들조차 그저 환상적인 이야기로 여겼다고 한다. 카오스 이론은 단순성과 복잡성, 질서와 무작위성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일상 경험을 자연의 법칙과 연결해 준다고 한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과학자들의 흥미를 끓어 들일 테지만 나 같은 문외한들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너무 많은 지식의 방대함 때문인지 카오스 이론은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미미하게나마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찾아내거나 어떠한 현상 속에서 발견해 내기란 쉽지 않았다. 책에서는 카오스 이론은 간단하게 결정론적 계 안에서 비주기적이고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속한 현재에서 카오스 현상과 연결 지을 만한 것들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나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책은 다양한 현상과 파생되는 여러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복잡하고 깊게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 하지만,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음에도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지식을 다양하게 나열한 구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체가 지닌 울퉁불퉁함이나 끊어짐, 불규칙성의 정도처럼 달리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속성을 측정하는 방법인 프랙탈부터, 카오스 경제학까지 뻗어 나가는 방대함에 기가 눌릴 지경이었다.

 

  두껍지 않은 한 권을 책을 읽었음에도(그림이 더 많았는데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내 눈앞에서 스쳐간 기분이다.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겉핥기만 했는데도 정작 내가 건져낼 수 있는 것들은 없었다. 워낙 문외한이기도 했거니와 나의 이해력이 느려 카오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다. 카오스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정리하는 식으로 읽어본다면 좋을지는 몰라도, 나처럼 전혀 발을 들여놓지 않은 분야의 책을 꺼낸 사람들은 낭패감을 맛볼 수도 있다. 선호하지 않은 장르라고 해도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나에게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이런 책은 나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제격이므로, 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인에게 어서 넘겨주고 무거운 짐을 털어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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